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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며 천둥번개가 친다. 요즘 비 내리는 것을 보면 아열대지역에서 나타나는 스콜현상을 보는 듯하다. 20여분 쏟아붓던 비가 멈추자 햇살이 드러난다.
▲ 소낙비 갑자기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며 천둥번개가 친다. 요즘 비 내리는 것을 보면 아열대지역에서 나타나는 스콜현상을 보는 듯하다. 20여분 쏟아붓던 비가 멈추자 햇살이 드러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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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밀려오는가 싶더니만,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류 사진을 찍을까 싶어 나선 길, 꼬마물떼새를 쫓아다니다 허탕을 치고, 계곡가 다리 밑에서 그를 기다립니다.

비를 피할 다리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내 그것조차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게다가 이내 흙탕물이 되어 계곡으로 밀려드는데 겁도 살짝 납니다.

할 수 없이 얼마전에 시골로 이사한 친구 집으로 향했습니다.
점심도 얻어먹고, 점심값으로 친구가 가꾸는 텃밭 잡초를 뽑아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비 온뒤의 선물이다. 소낙비는 비이슬뿐 아니라,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어 잡초를 뽑기에 알맞은 밭을 만들어 주었다.
▲ 산수국 비 온뒤의 선물이다. 소낙비는 비이슬뿐 아니라,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어 잡초를 뽑기에 알맞은 밭을 만들어 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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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인동초도 소낙비에 시원해 하는 듯 하다.
▲ 인동초 늦둥이 인동초도 소낙비에 시원해 하는 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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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변덕입니다.
어느새 그친 비,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까지 비칩니다.
풀들마다 비이슬을 달고 목을 실컷 축인듯 신나라 합니다.

사흘 전에도 친구집 근처에 소낙비가 흠뻑 내린지라, 오늘 텃밭에 있는 잡초를 뽑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잡초를 뽑기 전 소나기,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비이슬에 아름다워진 것들을 담습니다. 친구는 밥부터 먹고 하자며, 점심상을 차리고 텃밭에서 따온 오이와 가지, 고추를 토종된장과 함께 내어놓습니다.

사실 오늘 오전엔 새 사진을 찍고,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고, 오후에 친구 텃밭을 손봐줄 요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낙비 덕분에 일찍 도착하게 된 것이지요. 소낙비 덕분에 점심도 해결하고, 비이슬 사진도 찍고, 흙도 만지며 자연과 가까워지고, 친구도 만나고... 그런 선물들이지요.

소낙비에 톱풀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세차게 내렸는지 소낙비를 마주할 수 없었나 보다.
▲ 톱풀 소낙비에 톱풀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세차게 내렸는지 소낙비를 마주할 수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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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꽃풀도 고개를 숙였지만, 햇살이 비추자 곧 벌들이 찾아들었다.
▲ 층꽃풀(원예종) 층꽃풀도 고개를 숙였지만, 햇살이 비추자 곧 벌들이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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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나무의 꽃에 비이슬이 걸렸다.
▲ 안개나무 안개나무의 꽃에 비이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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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가만 바라보면 신비스러운 세상이지요.

비가 온 뒤라 땅도 고슬고슬합니다.
잡초가 쑥쑥 잘도 뽑힙니다. 물론, 온 몸이 흙범벅이 되긴합니다. 그래도 메마른 땅에서 김을 메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합니다.

귀농 1년차라 농사를 몰라서 텃밭은 아예 잡초밭입니다.
태평농법이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제가 보기엔 농사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귀농을 했다고 농사일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농사에 전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세 시간 정도 잡초와 씨름을 했더니 제법 밭모양이 나옵니다.
잡초 사이에서 생존경쟁을 벌였던 농작물들도 하나 둘씩 자기들의 밭의 주인임을 알아갑니다.

사초, 여우구슬, 메꽃, 피, 명아주, 비름, 쇠비름, 개망초, 환삼덩굴, 중대가리풀, 달맞이꽃, 강아지풀... 이런 것들이 뽑혀나갔습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면서도 밭에 난 것들은 농사짓는 사람이 심지 않은 것은 이름이 있어도 '잡초'일 수밖에 없다며, 미안하지만 깔끔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다행히 밭이 크지 않아서 친구 부부는 파모종을 내고, 나는 토란밭과 고구마 밭의 김을 세 시간 정도 매고 나니 어느정도 작업이 끝났습니다.

실잠자리가 습지에서 짝짓기를 하며 물 속에 알을 낳고 있다.
▲ 실잠자리 실잠자리가 습지에서 짝짓기를 하며 물 속에 알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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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를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알낳는 장소를 옮기려는 모양이다.
▲ 실잠자리 짝짓기를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알낳는 장소를 옮기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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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습지공원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실잠자리가 짝짓기를 하며 물 속에 알을 낳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생명의 신비, 그 자체입니다.

직장에 매여있을 때에는 볼 수 없었을 풍광들과 엄두도 못냈을 하루의 일과가 내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진작에 이렇게 살것을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뭔가에 매여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직장 생활은 참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빠른 잠자리다.
▲ 밀잠자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빠른 잠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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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뭘까 싶습니다.
소박하게 살더라도, 조금 불편하게 살더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그래서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더니만, 전혀 다른 하루하루가 내게 다가옵니다. 게으름으로 충만했던 하루인 것 같아도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해보면,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많은 의미를 내 삶에 새깁니다.

농사짓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흙을 한껏 만지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 농사 농사짓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흙을 한껏 만지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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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밭 정리를 하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아, 저 정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감탄이 나온 것은, 옥수수 때문입니다. 벌써 옥수수가 열리기 시작했고, 햇옥수수가 나왔는데 친구네 텃밭에 심긴 옥수수는 언제나 꽃대가 올라올지 감감합니다.

국도변에서 파는 햇옥수수 삶은 것을 한 봉지 샀습니다.
햇옥수수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을 보니 직장생활 할 때 퇴근 시간과 얼추 맞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시간에 한 일들을 돌아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거기에 목숨걸고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일, 의미있는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따라간다고 내게 잡히는 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 철이 없어서? 아니면, 아직 배가 불러서? 아닙니다. 이제 남은 생은 나를 위해서 살아도 좋을 것 같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선물로 주어도 좋은 시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거나, 남의 지시가 아닌 내 의지를 따라 살아가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참 잘한 것 같습니다.


태그:#소낙비, #잡초, #비이슬, #실잠자리,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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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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