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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노동일기에 쓴 대로 한옥 목수의 '배고픈 자부심'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당분간 한옥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출퇴근 가능한 한옥 현장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개월 가량을 아파트 현장에서 거푸집을 짜게 됐고, 한옥 일판에서 한발짝 벗어나 보니 안에서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노동일기를 적었다. 그런데 삶은 생각처럼 되지는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나 보다. 선배 목수에게 인천에 있는 한옥 현장에서 목수를 구하고 있으니 통화해 보라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버스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였고, 현장 분위기도 좋다는 뒷말이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출근했다가 돌아오면 저녁 8시인 생활에 지쳤기 때문인지, 공종이고 뭐고 '가까운 현장'이 최고라는 마음이었다. 형틀 팀장에게 어렵게 그만두게 됐다고 말을 꺼냈다. 고맙게도 팀장은 인천에서의 일이 끝나면 언제든지 다시 와서 일하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해서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대패밥 먹는 생활이 시작됐다.

남들 등산할때 지붕에 올라야 했지만, 나무 그늘 밑 작업은 휴가 온 느낌이었다.
▲ 산속한옥작업 남들 등산할때 지붕에 올라야 했지만, 나무 그늘 밑 작업은 휴가 온 느낌이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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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작업할 때, 나는 행복하다

나무를 다듬는 치목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할 경우 햇빛을 피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나무먼지는 더 많이 먹게 된다. 방진 마스크를 쓰고 먼지를 뒤집어 써가며 일하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져 갈 즈음 또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어느 산자락 작은 한옥의 지붕일을 일 주일 일정으로 하게 된 것이다.

등산로에 접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먼지 때문에 고생하던 코가 바로 반응을 했다. 말 그대로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붕작업을 하는 곳도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바로 옆으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쯤되면 일이 아닌 휴가를 온 것 같았다. 물론 등산객이 많은 주말에도 산이 아닌 지붕을 타야 했지만.

목수라는 직업이 나와 궁합이 맞는지 여전히 확신은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산에 있는 사찰에서 작업을 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목수가 되기 전에는 야근이 일상화된 생활이었다. 그러다 주말에 산에 갔다 오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거짓말처럼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한마디씩 했다.

평소의 내가 그만큼 일에 찌든 표정이었을 것이고, 그런 찌듦을 풀어주는 것이 산이었다. 그랬던 내가 산에서 일하고 심지어 산에서 살기까지 하는 목수 일을 할 때 표정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청련사 요사채 지붕작업 하면서 바라본 영축산 풍경
▲ 미루나무가 있는 풍경 청련사 요사채 지붕작업 하면서 바라본 영축산 풍경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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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에 경남 창녕 영축산에 있는 사찰의 요사채 짓는 일에 참여했다. 봄빛은 산천지에 푸르름을 주고 있었고, 일하다 고개만 들면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해부터 지는해까지 저마다의 빛깔에 물드는 영축산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일반 등산객이나 참배객이었으면 보지 못할 지붕에서 바라다 보는 영축산은 고된 노동의 고됨을 잠시 잊게 만들어줬다.

집짓는 목수가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

2011년 가을에는 고창의 문수사에서 일했다. 이때는 숙식도 사찰 안에서 해결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실제로 평생 동안 할 단풍놀이를 한 달 동안 압축해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명한 곳이니 만큼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다. 그런데 '목수만 볼 수 있는 풍경'은 관람객이 돌아가고, 하루 일과가 끝난 뒤부터 시작됐다. 일과가 끝나고 매일매일 단풍나무길을 거쳐 근처 마을까지 갔다오는 산책을 했다. 달빛을 받은 단풍나무 숲을 걸으며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문수사 단풍나무숲의 낮과 밤
▲ 단풍나무숲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문수사 단풍나무숲의 낮과 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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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도 일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도 일했지만, 그 중 으뜸은 경북 봉화의 유명할 것 없는 한적한 마을의 비닐 하우스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작년 3월 한옥학교 동기 다섯이 경북 봉화에 모였다. 동기 부모님이 귀농하면서 살 집을 짓기 위해서였다. 흙부대 집에 한옥 목조를 가미했다.

그동안 일하면서도 내집 짓는 마음으로 지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우리집'이었다. 작업 환경은 안 좋았다. 집지을 땅 한쪽에 비닐 하우스를 세워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집짓기 시작한 3월의 밤은 서로의 체온이 없으면 안 될 만큼 추웠고, 작업이 끝난 6월의 낮은 찜질방같았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집을 짓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집 짓는 방법부터 작업 환경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이야기됐고, 곧바로 시도해 보았다. 협동조합의 정신을 살려 동등한 자격으로 일했고, 나눴다.

음악이 있는 현장,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 좋은 집을 짓고자 하는 고민과 시도가 넘쳐나는 현장, 집짓는 목수가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gertie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옥목수, #한옥, #노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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