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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08년은 '촛불'의 해로 기록되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타오른 촛불이었다. 당시 집회 참가 인원은 엄청났다. 서울중앙지검이 발간한 '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 시위사건' 수사백서에 따르면, 그해 5월2일부터 8월15일까지 106일 동안 전국에서 촛불집회가 2398회 열렸고, 연인원 93만2000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8799명이 참가한 셈이다.

 

검찰로 하여금 백서까지 만들게 한 그 '수많은 사람의 무리(대중)'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촛불을 켜 든 것일까. <대중의 계보학>에 따르면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남들 따라 집회에 나선 것도 아니다.

 

저자는 2008년 촛불 집회의 배경을 2002년을 기점으로 발생한 여러 사건, 곧 오노 사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활동, 길거리 응원전, 미선이 효순이 촛불 집회, 이라크전 반대와 파병 반대 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 등에서 찾는다. 이들은 기존 대중과는 다른 새로운 결집 방식과 자율적 실천을 통해 촛불 집회를 주도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로 정점을 찍은 여러 사건들이 갖는 특이성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이 사건들을 주도한 대중은 계급과 계층,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영상 세대라고 할 10대 청소년부터 청년 실업에 가위눌려 지낸 20대의 청년 세대, 민주화의 주역인 386세대와 절대 빈곤을 타개한 산업 역군인 40대와 50대를 포괄한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소통하며 집단 지성을 형성한 네티즌도 있다. (9쪽)

 

저자가 보기에 새로운 대중의 시대는 2002년이 기점이다. 그해 초에 일어난 오노 사건이 계기였다. 그때까지 무질서와 폭력, 극심한 조울증, 이성의 마비로 규정되던 대중은 자율적으로 질서와 규범을 만들고 차이를 인정하며 집단행동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구성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8년 촛불 집회의 원류를 2002년으로 잡는 저자의 시각은 계보학적 연구 관점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긴다. 2002년의 대중은 그 이전 시기의 대중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2002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대중의 시대'가 열렸으니 그 이전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대중을 형성하고 있었을까.

 

저자가 설정한 계보학적 시대 구분법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대중이 형성되는 과정은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개발독재 시기, 민주화와 세계화 시기 등의 세 단계로 나뉜다. 이들 세 시기의 대중은 각각 소비 주체, 동원 대상, 저항 주체 등으로 명명된다. 2002년 오노 사건 이후의 대중은  '집단 지성을 가지며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참여하는 군중'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들 중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의 소비 주체로서의 대중을 좀 더 살펴보자.

 

저자는 근대적 대중의 시초 격으로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제시한다. 이때의 '모던'은 지향해야 할 절실한 미래가 아니라 경박하고 자유분방하며 천박한 유행을 의미했다. 그래서 저자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소비 문화에 깔린 유행, 허세, 과시 등의 풍조가 그 뒤 소비 사회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하는 1960~70년대 소비 대중이 보인 행태와 정서의 밑거름이 됐다고 분석한다.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의 근대화 프로젝트와 그 결과에 대한 고찰도 흥미롭다. 저자는 (학교 교육을 통한-기자주) 부국강병이라는 근대화 프로젝트가 개발독재 시대에도 유효한 국가 목표가 된 동시에 강력한 저항 운동의 주체가 될 씨앗을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되었다고 말한다. 동학농민전쟁을, 집강소를 통해 민중 권력의 자치 능력을 가늠하게 한 사건으로 보거나, 만민공동회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한국판 아고라를 구축한 계기로 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중의 역사적 계보를 이해하는 데는 저자가 구별한 '근대적 대중'과 '탈근대적 대중'이라는 개념이 큰 도움이 된다. 근대의 대중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약 관계나 익명성, 공통의 생활 감각과 집합 의식을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반면 탈근대적 대중은 포드주의에서 포스트 포드주의로의 이행과 같은 물적 생산 방식의 변화, 법을 통한 외적 구속에서 벗어나 내면 세계를 감시하는 포섭 과정이 확대되는 식의 정치적 지배 방식의 변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차이의 배경을 여섯 가지의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한다. 대중 형성의 계기, 집단행동의 표출 방식, 집단행동의 성격, 대중 조직의 형성, 집단 의식의 성격, 대중의 성향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주체는 일시적이거나 무매개적으로 형성된 폭력적 군중이 아니며, 여론과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는 수동적 대중은 더더욱 아니다. 근대인이 인간 개조 프로젝트를 통해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면, 탈근대인은 자기 자신을 주체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근대적 주체는 '영리한 대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영리하다'라는 말은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지성화할 능력을 갖춘 자율적 주체라는 의미다. (41쪽)

 

저자에게 대중 연구는 시류에 편승한 지적 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대중의 삶을 짓누르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정치적 기획이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의 의의를 '새로운 변혁 주체의 계보학'(319쪽)과 같은 식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늘 '영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개똥녀' 사건이나 황우석 사태, 영화 <디워 > 논쟁 등을 상기해 보자. 이들 사건에는 공통적으로 인터넷 마녀사냥이나 편협한 애국심, 배타적 민족주의, 약자의 정서 같은 쏠림 현상을 통해 드러난 왜곡된 포퓰리즘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건의 주인공은 '멍청한' 대중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왜곡된 포퓰리즘이 대중 스스로 만들어낸 산물이며, 적대 관계가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능은 사회의 비판 세력으로 진화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중 자신을 겨냥한 집단적 마녀사냥의 주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326쪽)

 

저자에 따르면 왜곡된 포퓰리즘은 무한 경쟁의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엄연한 구별과 차별 때문에 삶의 안전성이 파괴된 현실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무한 경쟁 체제가 가져온 승자독식 사회가 배경이라는 것.

 

저자는 승자독식 사회의 폐해를 '노예' 비유로 설명한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이기기 위해 동원된 성공 비결은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교본 구실을 한다. 성공 신화는 모든 사회적 삶의 차이를 하나로 획일화한다. 능력과 소질의 다양함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로 왜곡되면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삶이 하나로 통합되거나 배제된다.

 

자신의 삶이 그것 자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 모델을 따라야 하는 상황은 사람들을 더욱더 '노예'로 만든다. ··· 노예로서 자긍심을 상실한 대중은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강력한 주인을 요청하는데, 이때 국가가 주인으로 등장한다. 국가는 한편으로 엄한 아버지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자상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신비화하며 대중 위에 군림한다. (322쪽)

 

일간베스트(일베)라는 곳이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5월 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그것이 알고싶다>의 '일베와 행게이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편에 대한 시청 소감을 올렸다고 한다.

 

그 글에서 진 교수는 "어떤 게이(게시판 이용자)가 '일부심(일간베스트 자부심)' 말하는 대목에서 뿜었다"며 "'자아'를 스스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라며 "정확히 말하면 '자'부심을 가질 건덕지가 없는 아이들이 가상으로 만들어 느끼는 '타'부심"이라고 썼다.

 

"노예로서 자긍심을 상실한 대중"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줄 강력한 주인"으로서 국가를 요청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읽으며 일베를 떠올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몇 '일베충'(일베 회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내란 수괴였던 전두환을 '전땅크'라며 트레이드 마크처럼 앞세우는 것도 이와 관련되지 않을까.

 

물론 일베의 반대편에는 세월호 참사 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을 켜든 수많은 '영리한' 대중들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영리한' 대중의 계보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2002년 이후 대규모로 결집하고 있는 대중의 분출구가 대중 파시즘을 향한 곳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로 끝나지 않을까. 일베의 수십만 회원 수를 고려하면, 일베를 향한 진 교수 류의 '조롱'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대중의 계보학>(김성일 (지은이) /이매진 / 2014-05-07 /18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대중의 계보학 - 모던 걸에서 촛불 소녀까지, 대중 실천의 역사와 새로운 대중의 시대

김성일 지음, 이매진(2014)


태그:#<대중의 계보학>, #김성일, #이매진, #진중권,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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