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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조문한 뒤 떠나고 있다.
▲ 경호원 보호 받으며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조문한 뒤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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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등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5공화국 핵심인물들이 25일 오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979년 12.12 반란 당시 전두환을 도왔던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77, 1980년 육군 준장 예편)의 장례식장에서다.

이 전 처장은 지난 24일 새벽 폐암으로 사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씨, 5공화국 인물들과 다음 날 오후 2시 30분께 곧바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일찍 전 전 대통령의 조문계획을 통보받은 상태였다.

 ☞ 관련기사 : [단독] 전두환, '1250억' 어쩔 거냐는 질문에...

[도착 전] 유족에게 조문 계획 미리 알려... 전직 군인들 빈소 방문

<오마이뉴스> 기자가 오전 9시에 도착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의 이 전 처장 빈소는 한산한 편이었다. 한때 정권을 주물렀던 핵심인물의 장례라 보기엔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당초 이 전 처장의 빈소는 64평 규모의 12호실이었지만, 이날 새벽에 82평 규모의 15호실로 옮겼다. 그러나 빈소에는 유족 5~6명을 제외하고 15명 내외의 조문객이 있었다. 반면 일반인 빈소인 14호실(64평 규모)에는 30~40여명의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경,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도착했다. 뒤를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국방부장관 김관진'이라 적힌 띠를 두른 화환이 택배기사의 손에 들려 빈소로 들어왔다.

이 전 처장은 이날 새벽 3시 경 사망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 전 처장의 부고기사를 한 줄도 내지 않다가 이날 오후 들어서야 전 전 대통령 조문을 앞두고 언론사에 부고를 알렸다. 장례식장 관계자도 빈소의 분위기가 예상 밖이라고 귀띔했다.

"고인의 명성에 비하면 여긴 굉장히 썰렁한 거죠. 원래 이런 빈소는 휴일에 제일 바글바글해야 하는데, 여기는…. 처음에는 부고 알리는 것도 원치 않더라고요. 전두환 오는 것에 대해서도 '복잡하기만 하다, 좀 그렇다'고 하는 반응이었어요."

전 전 대통령 도착 전(오후 2시 30분)까지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300여 명. 이 중 약 70%가 5공 관계자 또는 전직 군인이라고 장례식장 쪽은 전했다. 실제로 빈소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60~70대 남성들이 "저는 17기 ㅇㅇㅇ입니다"라는 식으로 인사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도착 임박] 한산하던 빈소가 술렁... "준비하다 자연스레 인사하라"

전 전 대통령 도착 2시간 전인 오후 1시 30분. 한산하던 빈소가 다소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60~70대 남성들 10여 명이 빈소 앞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서성였다. 빈소 앞 소파에 앉아 있던 백발의 한 남성은 옆 사람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금 분당 어디쯤이래, 2시 20분쯤 도착하면 사인 줄 거야"라고 소곤거렸다. 다들 조용하지만, 빠르게 전 전 대통령의 조문 소식을 전파하거나 공유하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그와 재회할 순간을 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성은 옆 사람에게 "각하께서 이따 자네를 보시길 원할 테니까, 준비하고 있다가 오시면 자연스럽게 인사하라"고 언질을 줬다.

곧 이어 장세동 전 3공수특전여단장이 나타났다. 12.12 군사반란의 핵심인물이다. 소파에 앉은 장 전 단장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지인들에게 귀띔했다.

"오전에 (전 전 대통령의) 신경이 약간 곤두서는 일이 있으셨다고 안에서 연락이 왔어. 출발하셨다고 하니 곧 도착하셔서 조용히 한 20분 정도 조문하고 가실 거야."

전 전 대통령의 도착 30분 전. 귀 뒤에 튜브 이어폰을 꽂은 남성들이 빈소 주변을 서성였다. 전 전 대통령의 경호원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경호팀은 아래(지하 1층)에서 모시고 육사팀은 위에서(1층) 각각 대기하고 있다"고 말하며 동선을 체크했다. 장세동 전 단장 등 5공 관계자 10여 명도 장례식장 로비로 걸음을 옮겨 그들의 '각하'를 기다렸다.

[도착] 12·12 반란 인물들의 재회... 여전히 '각하'라 불러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왼쪽)와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도착하고 있다.
▲ 굳은 표정의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왼쪽)와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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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도착하고 있다.
▲ 군사반란 측근 빈소 찾은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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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0분, 마침내 검은 정장 차림의 전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대통령 주변에는 15~16명 정도의 경호원이 따라 붙었고, 이들은 장례식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5~6명의 경호원과 함께 전 전 대통령을 둘러쌌다. 빈소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을 맞은 5공 관계자들은 일제히 미소를 지으며 전 전 대통령 부부에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35년 전 반란을 일으켰던 젊은 군인들이 주름과 검버섯 핀 장년의 모습으로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군복 대신 검은 정장을 입은 5공 관계자들은 여전히 그를 향해 '충성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 부부를 위시해 지하 1층 빈소로 내려간 이들 5공 관계자는 경호원들과 함께 취재진의 접근을 막는 데 적극 나섰다. 취재진이 사진을 찍으면 "어딜 감히…"라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처진 입을 굳게 닫은 전 전 대통령은 유족에게 먼저 가 짧게 인사를 나눴다. 곧바로 빈소 안으로 들어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정호용 전 국방장관 등 5공화국 핵심관계자들과 함께 담소를 이어갔다.

전직 군인으로 보이는 조문객 20여 명은 밖에서 선 채 기다렸다. "각하와 악수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 조문객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라며 소파에 앉은 지인들에게 일어서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빈소에 들어간 지 20분이 지나도 전 전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빈소에서 나온 5공 관계자들은 "각하가 (이학봉 전 처장의) 죽음을 너무 안타까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 전 처장은 2년 동안 폐 질환을 앓다가 전 전 대통령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조문 후] 추징금 덜 낸 전두환... "정해지면 알려주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조문한 뒤 떠나고 있다.
▲ 이학봉 빈소 조문 마친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에 조문한 뒤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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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동안 빈소에 머물던 전 전 대통령은 오후 3시 30분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빈소 앞에 줄지어 선 전직 군인 등의 조문객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경호원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전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경호원들이 기자를 밀쳐냈다. 전 전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다른 취재기자가 없어서, 혼자 있던 기자는 힘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 경호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전 전 대통령에게 접근을 시도했고, 어렵게 던진 질문이 "남은 미납 추징금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기자를 한 번 쳐다볼 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1997년 4월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복권됐다. 이후 추징금을 내지 않다가 지난해부터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955억 원이 환수됐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다시 경호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제서야 전 전 대통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기자를 바라보며 "나중에 정해지면 그때 알려줄게요"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 로비로 이동했다. 5공 관계자들도 발걸음에 속도를 내 계단으로 올라갔고, 기자도 이들을 따라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이미 전 전 대통령은 차에 타 떠나는 순간이었고, 5공 관계자들이 허리 숙여 인사하며 배웅하고 있었다.

한 시대를 같이 호령했던 동료, 그러나 이제는 '군사반란'의 주동자로 남은 고인의 쓸쓸한 죽음을 보며 전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 전 대통령은 여전히 5공화국 당시 측근들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비공개 회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4년 5월 현재,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은 1250여억 원에 달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이 전 처장의 빈소에는 한 때 군가가 울려 퍼졌다. 오후 5시 30분경 빈소에서 식사를 하던 60~70대 백발노인 20여명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박자에 맞춰 절도 있게 합창을 하던 군가는 한 차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지만, 더 이상 쩌렁쩌렁 울리지 않았다. 35년 전 함께 불렀을 그 군가가 오욕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간 옛 전우의 마지막 가는 길에 쓸쓸히 흐르고 있었다.


태그:#전두환, #이학봉, #장세동,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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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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