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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탐욕이 부른 예고된 인재, 피해를 키운 무능한 대처, 오보와 왜곡, 망언으로 점철된 언론의 민낯은 피해 가족의 가슴에 매일같이 비수를 꽂는다. "치유를 말하기 전에 상처부터 주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오마이뉴스>는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는 피해 가족들의 아픔을 생생히 기록하는 한편, 진정한 치유 방안을 고민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고 30일째이자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단원고 학생 유가족과 실종자 어머니가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이날 유가족은 "엄마 품으로 빨리 와 줘서 고맙다"며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라고 울먹였다.
▲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 세월호 침몰사고 30일째이자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단원고 학생 유가족과 실종자 어머니가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이날 유가족은 "엄마 품으로 빨리 와 줘서 고맙다"며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라고 울먹였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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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에 다니던 자녀를 잃은 A씨. 참사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사고 이후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워져서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을 두고 소근 대거나 괜히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게 듣기 싫어 회사에 나가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다. 일도 재밌고 친한 직장 동료도 많아 이직은 원치 않는다. 다만 자식을 잃은 충격과 두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쉬길 바랄 뿐이다.

#. 세월호 사고 유가족 어머니인 B씨는 집안일을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다. 남은 아이가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밥도 해먹여야 하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죽은 아이 생각에 하루 종일 잠도 못 자고 멍하니 앉아있다. 무기력증이 심해 약물치료 중인 그는 누군가를 챙길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엄마로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의무감이 B씨를 더욱 힘들게 한다.

두 사례는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방문 상담 과정에서 파악한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의 실제 사연이다. 사고 수습과정이 길어지면서 남은 가족들이 점점 생계 문제로 시름에 빠진다는 것이다. 특히 희생자 가족들이 아직 슬픔을 추스르지 못한 채 일터와 가정일로 내몰려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고 센터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희생자 가족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장기적인 생계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지원시스템에서 소외되는 가족이 없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슬픔 잊기도 전에 직장 걱정... "출근해도 일이 손에 안 잡혀"

남은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닥치는 생계 문제는 직장이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먹고 사는 걱정에 내몰린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4일 희생자 가족들이 다니는 사업장에 특별 유급휴가 사용을 요청했다. 그러나 수색 장기화 과정에서 휴가일수를 다 써버려 출근이냐 무급휴직이냐 퇴사냐를 놓고 고민하는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용직이나 자영업자는 아예 해당사항이 없어 일을 못할수록 생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세월호 사고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딸을 잃은 김아무개씨는 장례를 치르자마자 직장에 다시 나갔다. 장비 개발 업무를 맡은 그는 "일을 쉴 수 없는 부서에 있어 추가로 휴직신청을 못하고 있다"며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나이가 있다 보니 나중에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회사의 배려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아래 가족대책위) 활동과 직장 업무를 병행한다는 김씨는 "사고가 현재 진행형이다 보니 하루 종일 아이 생각만 한다"며 "회사에 출근해도 일이 손에 안 잡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가사·노인 돌봄 지원하지만... 이용 안 하는 유가족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9일 새벽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한 부모가 잠들어 있다.
▲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9일 새벽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한 부모가 잠들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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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대책위 쪽은 유가족 대다수가 직장 문제로 겹시름에 놓였다고 전한다. 유족의 60~70%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공단에서 일하는 한 부모님은 아이 생각에 맨날 기계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고 들었다"며 "자칫 2차·3차 피해가 발생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8일 유가족의 휴가·휴직 사용을 지원해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업장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수준이라 강제력이 없다는 게 유족들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가족은 "정부가 협조 공문을 보낸다고 해서 회사가 무조건 내용을 수용하란 법은 없다"며 "몇 달치 월급을 손해 보면서 기다려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집안일을 돌보는 것도 유가족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사고 이후 신체적·정서적으로 불안한 유족은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집안일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집이라 해도, 반찬을 만드는 정도의 정상적인 가사까지는 힘든 상황이라고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는 전했다.

경기도 합동대책본부는 정부 정책에 따라 1:1 돌봄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공무원이 한 가정을 도맡아 집에 있는 아이나 노인을 돌보고 가사를 돕는 사업이다. 하지만 일부 유족들은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부담스러워 이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유급휴가 연장' '생계비 지원', 장기적으로 보장해야

가족대책위는 정부가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 남은 가족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권오현 가족대책위 총무는 "정부가 발표한 '가족 지원 서비스'안은 대부분 단발적인 성격이 강하다"며 "차라리 그 비용으로 직장 유급휴가와 생계 지원을 장기적으로 보장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위의 휴가·휴직 사용 지원을 포함한 '가족 지원 서비스' 안을 내놓은 바 있다. 생활안정자금 1회 지급·지방세 납부 기한 연장·통신비 감면 등이 주요 골자로, 장기적·고정적 생계 지원은 없다. 유가족들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정혜신 정신과 박사·조원철 방재안전관리연구센터장 등의 전문가들은 "유족들이 보통 6개월 이상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겪는 만큼 반년 이상 지속되는 생계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돌봄서비스 등의 생계지원망에서 벗어나는 가족이 없도록 신경 쓰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관리팀장은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자체를 꺼리는 유가족들도 많다"며 "근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유대감을 쌓아가며 천천히 가정 돌봄 등의 지원에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하나의 가족 지원 방안을 모든 유가족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며 "개별 가족의 상황을 판단해 그에 맞는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세월호, #세월호침몰사고, #유가족, #유급휴가, #세월호 가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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