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송현동 부지에 호텔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고 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송현동 부지에 호텔이 들어서는 걸 반대하고 있다.
ⓒ 경실련

관련사진보기


서울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대로를 따라 경복궁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길고 높은 돌담이 있다. 이 돌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최근 그 돌담 너머에 넓은 벌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이곳에 7성급 호텔 건립을 시도중이다.

서울 중심에 이 넓은 부지가 왜 여태껏 벌판으로 있었을까?

역사를 살펴보니 이 부지에는 조선왕조의 외척, 일제, 미국, 재벌로 이어지는 한반도 권력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순종의 장인이었던 윤덕영의 형이 이 땅을 소유했다가 일본 식산은행에 팔아넘겼다. 해방 후에는 미군이 들어와 부지를 점령해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가 이곳에 있었다. 이후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다가 삼성생명으로 다시 주인이 바뀐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에게 이 부지를 사들였다.

삼성생명과 대한항공이 지금까지 이 송현동 부지를 그냥 둔 건 역사·문화적 가치 때문이었다. 이 부지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바로 옆이자 서울 시내 최대 문화벨트 한가운데에 있다. 경복궁, 북촌마을,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지고 인사동과 삼청동을 잇는 역사·문화의 중심지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규제완화

사실 과거에 삼성생명은 이곳에 복합문화시설을, 대한항공은 2010년에 호텔 건립을 시도했다. 하지만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곳에 사익을 추구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여러 시민단체의 반말로 저지됐다.

뿐만 아니라 송현동 부지 근처에는 풍문여고, 덕성 여중·고 등의 학교가 있다. 호텔이 들어서면 풍문여고 정문과는 불과 약 200m 거리다. 교육권 침해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은 호텔 불허 결정을 내렸고, 대한항공은 2010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2012년 6월 대법원 또한 대한항공의 학교 근처 호텔 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관광 진흥과 고용창출을 이유로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을 지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해시설이 없는 호텔'은 학교 근처에도 건립할 수 있게끔 관광진흥법을 개정하고 교육부 훈령을 제정하는 등 규제개선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규제완화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정부와 재계는 "관광객 증가에 비해 호텔 객실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객실 부족하다더니... 공급과잉 우려되는 상황

2012년 서울 호텔이용률.
 2012년 서울 호텔이용률.
ⓒ 경실련

관련사진보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자료와 서울시 자료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의 호텔이용률은 78.9%에 그쳐 실제로 호텔 객실은 부족하지 않다.

역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호텔 선호율은 74% 정도다. 호텔 외의 대체 숙박시설(레지던스, 게스트하우스, 여관, 홈스테이, 외국인도시민박, 한옥체험업, 친구집, 콘도, 펜션 등)까지 고려하면 숙박시설의 여유는 더욱 높아진다.

성수기와 비수기를 고려해도 호텔이용률의 변화가 크지 않다. 최저 호텔이용률은 1월로 68.9%이고 최고 호텔이용률을 보이는 10월에도 84.2%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텔객실 등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논리로 학교 주변에서도 호텔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2013년 말 기준, 신규 사업계획이 승인된 호텔이 모두 지어지면 현재 서울의 호텔은 192개에서 293개로 크게 는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공급과잉도 우려된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오세형 간사는 "서울시내 호텔 공급이 부족하다는 거짓 통계 자료와 주장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호텔 건립을 밀어붙이는 건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친재벌 행태"라며 "이제라도 정부는 재벌 특혜주기를 멈추고 송현동 부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학교와 가까운 곳에도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지난 16일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다음 국회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한동안 논란은 잦아들겠지만,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태그:#대한항공 7성급호텔, #송현동 부지, #학교주변 호텔건립, #재벌특혜, #대한항공호텔사업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