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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 후 풀잎에 맺힌 비이슬이 완벽한 물방울보석을 만들어 냈다.
▲ 비이슬 봄비가 내린 후 풀잎에 맺힌 비이슬이 완벽한 물방울보석을 만들어 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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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봄비가 내렸습니다.

아침에도 아주 약간의 봄비가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며 신선한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초록생명의 이파리에 비이슬이 맺혔습니다. 완벽한 물방울 보석입니다.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싹을 내서 봄을 알려주더니만, 이렇게 이른 봄에 물방울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선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봄을 맞이한 잡초에게 준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는데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 제비꽃 어제까지만 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는데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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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뜰을 서성거리며 봄이 어디쯤 왔을까 늘 관심있게 보곤 했는데 어제까지도 제비꽃의 존재를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어느사이에 꽃을 피웠습니다.
봄비가 부린 마술, 눈속임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이젠 나무꽃도 하나둘 자기 안의 색깔을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 명자나무 이젠 나무꽃도 하나둘 자기 안의 색깔을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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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풀꽃만이 아니라 나무꽃들도 자기 안에 간직한 색깔들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명자나무의 붉은 빛, 진달래의 분홍빛, 개나리의 노란빛, 목련의 하얀빛. 그렇게 봄이 오면 제 안에 숨긴 것 더는 감출수 없다고 피어납니다.

감출 것 없이 속내 다 드러내어도 아름다운 그들처럼 내 마음 깊은 곳도 그렇게 가꿔가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의 속내를 깊이 알면알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도록 속내를 가꿔야 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잘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꽃을 품고있는 라일락의 이파리가 꽃만큼 아름답다.
▲ 라일락 꽃을 품고있는 라일락의 이파리가 꽃만큼 아름답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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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이파리는 마치 소중한 선물을 정성껏 포장한듯, 꽃망울을 그 속에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포장이야 허세가 담겨있다면, 그들의 포장엔 따스한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배려인 셈이지요.

추위를 든든히 막아주는 배려, 아주 조금씩 포장을 벗겨가면서 안에 들어있는 꽃들이 추위에 단련될 수 있도록, 그리고 온전히 그들이 이겨낼 수 있을 즈음이면 활짝 피어나게 하는 그런 배려를 라일락의 이파리에서 봅니다.

옹기종기 모여 송글송글 비이슬, 물방울보석을 맺고 있다.
▲ 비비추 옹기종기 모여 송글송글 비이슬, 물방울보석을 맺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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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추도 싹을 냈습니다.

비비추의 싹은 꽃대를 아주 깊은 곳에 감추고 있습니다. 봄이 다가고 여름이 와야 겨우 꽃대를 내고, 가을이 올 무렵에 꽃을 피우니 말입니다.

가을에 꽃 피는데 조금 더 쉬다가 피어나도 될 것 같은데, 그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봄이 와서 꽃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겨울 속에 봄이 들어있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꽃이든 일년 365일 온 힘을 다해야 피어나는 법입니다. 단 하루를 피는 꽃도 백일을 피어있는 꽃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일년 내내 준비하고 또 기다리는 것이지요.

비비추와 찔레의 싹
▲ 찔레 비비추와 찔레의 싹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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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의 새순도 비비추와 함께 올라왔습니다. 찔레는 아주 생명력이 좋은 친구죠. 찔레순의 쌉싸름함이 꽃의 향기와 다르지 않아서 5월, 하얀 찔레꽃이 한창 피어날 즈음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쌉싸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칩니다.

그때쯤이면 '아, 이제 봄의 끝자락이구나, 곧 여름이 오겠구나!'아는 것이죠.

옛어르신들은 꽃이 피고지는 시기에 따라 파종을 하고, 꽃을 보면서 때를 알았습니다. 몇 월며칠 보다는 '어떤 꽃이 필 무렵'이라는 말을 더 많이 하셨지요. 그런데, 이젠 인간의 욕심으로 꽃들의 시간이 뒤죽박죽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요즘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계절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결과입니다. 시간의 향기가 없는 인간의 시간, 시간의 향기가 있는 자연의 시간, 그 중에서 우리는 인간의 시간을 택한 것입니다.

솜털마다 맺힌 비이슬, 어제 내린 봄비는 보슬보슬 내렸다는 증거입니다.
▲ 할미꽃 솜털마다 맺힌 비이슬, 어제 내린 봄비는 보슬보슬 내렸다는 증거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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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얼마나 보슬보슬 사뿐사뿐 내렸으면 할미꽃 솜털마다 비이슬이 맺혔을까 싶습니다. 조심조심 피어나는 꽃들 솜털하나 다치지 않게 내린 봄비, 그들도 싹을 내고 난생처음으로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것,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밖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더불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퇴근길 살짝 봄비가 오는가 싶었고, 아침 출근할 때에도 살짝 봄비가 오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봄비가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만들었다니 신비스럽습니다. 이 봄, 촉촉한 봄을 좀 오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봄처럼 짧은 계절도 없지요. 오는 봄 보지 못하면, 가는 봄은 볼 겨를도 없을 것입니다.

천천히 왔다가 쏜살같이 뛰어가는 봄, 그 봄이 막 우리 곁에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서울 하늘에서 오늘(3월 18일) 담은 사진입니다.



태그:#제비꽃, #비이슬, #라일락, #비비추,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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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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