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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김, 당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

차 안에서 자고, 먹는 여행을 시작한 지 아마 석 달이 채 안 됐던 시점이었다. 테네시의 녹스빌(Knoxville)이라는 도시를 지나치면서 60대 초반쯤으로 보였던 한 백인 남성한테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다.

"프랑스 출신의 젊은 남자가 당신처럼 여행하다가, 플로리다에서 변을 당했다"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고속도로 쉼터나 길가, 숲 속, 공터 같은 곳에서 차를 세워두고 잠을 잔다고 했더니 들려준 말이었다. 

초로의 백인 남성은 그 자신 또한 유랑자였다. 캘리포니아 북부 출신으로 한 도시에서 서너 개월 일해 돈을 벌면, 다른 도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돈이 생기면 다시 어디론가로 향하는 생활을 쉼 없이 수년 째 계속해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잠자리 안전 문제에 촉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객사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받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그 남자 말이 다 맞았다. 마약 살 돈이 필요했던 젊은이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북미 대륙을 여행하던 한 프랑스 남성을 총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자다가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부터는 밤이 찾아오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전까지는 시쳇말로 '동가식서가숙' 하는 생활이 룰루랄라 자유롭고 너무도 즐거웠는데 하루 아침에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밤 시간이 불안했지만,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룻밤에 아무리 싸도 30~40달러는 숙박비로 지출해야 했는데, 그럴 여력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여행을 중도에 그만둬야 되는데, 죽어도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결론은 뻔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취침시간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나름 짜낸 꾀는 이런 거였다. 저녁 밥을 먹는 곳, 저녁 칫솔질을 하는 장소와는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잠을 잔다. 차로 두세 시간씩 달려야 하는 전혀 다른 고장에서 잠자리를 찾으면, 내 뒤를 밟지 않을 바에야 내가 홀로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자곤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 나만의 노하우

잠 잘 만한 곳, 예를 들어 공터나 주차장 같은 곳을 찾으면, 차를 세운 뒤 즉각 자동차 전면과 후면에 커튼을 친다. 커튼은 피크닉 매트를 사용했고, 빨래 집게로 차 안에서 매트를 고정시켰다. 이렇게 하면 밖에서는 차 안에 누가, 또 몇 사람이 있는지를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요컨대, 한밤중에 내 차를 급습하려는 일당이 있다면, '상대방의 전력'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차 옆 유리창은 안쪽에 두꺼운 검은색 도화지를 붙여 놓은 상태여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 할 정도였다. 또 내 차는 세차 한 번 하지 않은데다, 제법 연식이 돼서 돈 있는 사람이 타고 다닐 만한 인상을 주지 못 하는 상태였다.

얕은 꾀였지만 작전은 주효했다. 애리조나 투산(Tucson) 근처의 10번 주간고속도로에서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새벽 한두 시쯤 됐을까, 누가 부서질 듯이 차를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들려 온 소리가 "오픈 더 도어"였다. 문을 열라는 외침이었다. 검정 도화지를 슬쩍 내리고 그 틈으로 창밖을 보니 경찰이었다.

운전석 쪽 문을 열었다. 한 명은 진압용으로도 활용하는, 무지막지하게 큰 플래시로 내 얼굴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고, 또 다른 경찰관은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두 손으로 권총을 내게 겨누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리며 항복 자세를 취했다.

양팔을 든 채 나는 차 밖으로 나왔고, 경관 한 명이 플래시 불빛을 차 안으로 비추며 사람이 더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뭐하냐고 물으면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여행하는데 피곤해서 잠을 자는 중이라고 했더니, "이런 데서 자는 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며 떠났다.

미국에서 빈곤한 사람들, 예를 들면 일부 히스패닉이나 흑인들 같은 경우 정원을 훨씬 초과해 차량에 사람들이 탑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차가 없는 사람도 있고, 경비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9인승쯤 되는 승합차에서 열댓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미네소타 근처에서는 작은 승용차에서 흑인 5명이 한 겨울에 차 안에서 꼬박 밤을 세우고 걸어 나오는 걸 본적도 있다. 이런 경우 차는 대부분 낡은 것이기 마련이다.

북미 대륙을 홀로 여행하면서 쓴 내 차는 출고된 지 7년이 지난 8인승 승합차였다. 이런 류의 차량을 대상으로 밤중에 차 안에 몇 명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강도질을 벌이려 한다면 간이 상당히 큰 사람 혹은 집단이어야 한다. 무기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반격을 당할 염려도 있다. 북미 대륙에서는 장거리 여행이나 이동중에도 총기 등을 소지하는 사람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철통 보안
 철통 보안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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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륙 여행하면서 이런 곳에서도 잤다

북미 대륙을 홀로 여행할 때 꾸며놨던 차 안의 잠자리. 승합차 뒤쪽 2열의 의자를 뜯어내고, 합판을 깐 뒤 그 위에서 침낭을 뒤집어 쓰거나 깔고 잤다. 차창 쪽에는 두터운 검은색 도화지를 발라, 잠잘 때 조명이 차 안으로 새어 들어오지 않게 했다. 앞 유리와 뒤쪽 유리는 피크닉 매트로 커튼을 쳐 밖에서 차 안을 볼 수 없게 했다.

숙박지
 숙박지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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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밤을 보낸 전형적인 장소들. 오리건 주 태평양 해안 쪽의 시골 도로 갓길(왼쪽). 몬태나 주와 와이오밍 주를 잇는 15번 주간고속도로 쉼터(오른쪽 위). 잠자리에 들 때는 몰랐는데, 자고 났더니 눈이 내려 있었다.

텍사스 주 남부의 월마트 주차장(오른쪽 아래). 월마트 주차장 가운데 극히 일부는 야간에 공짜로 차를 세우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허용한다. 주차 비용을 줄이려는 레저 차량(RV)도 내 건너편에서 밤을 났다.

객사
 객사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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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캐롤라이나의 길가에서 본, 차에 치인 흑곰. 사람보다 훨씬 무게가 더 나갈 것 같은 큰 곰이었다. 다람쥐 등 덩치가 작은 동물과는 달리 곰처럼 큰 동물의 로드 킬은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 내가 고속도로 쉼터에서 자다가 강도를 만나 사망했다면 이 곰의 신세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유랑자들
 유랑자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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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없이 차를 생활터전으로 삼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부류의 차량은 낡은 게 특징이다. 차 안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별의별 게 다 있고, 냄새도 좀 난다. 길가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밤을 나다 보면, 번듯한 주택가는 아니지만 RV파크와 같은 합법적인 공간(가운데 사진)에 주차시키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의 조여사의 촌철살인도 읽을만 합니다.



태그:#객사, #숙박,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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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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