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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주변 바다는 방사성 물질로 오염되었습니다. 그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들 또한 방사성 물질에 오염 됐을 게 뻔합니다. 후쿠시마 원근해에서 잡히는 생선,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생선을 어떤 사람이 먹었을 때, 그 사람의 10대 후손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걸 어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300년(1대를 30년으로 가늠) 후에나 일어날 결과(영향)를 미리 검증해 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300년이라는 연구 기간도 만만치 않지만, 10대를 걸치는 혈통을 추적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기를 몇 번이나 달리하는 동안 또 다른 어떤 인자가 유전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떤 사람에 버금가는 조건으로 방사선에 노출시킨 초파리를 대상으로 하여 10대를 추적 연구하면 300년쯤은 걸려야 얻을 수 있는 결과를 1년쯤으로 단축시켜서 그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조건을 유지시킴으로 결과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 불특정 인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방사선에 따른 영향만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겁니다.   

초파리가 생물학과 유전학에 등장하기까지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초파리>┃지은이 마틴브룩스┃옮긴이 이충호┃펴낸곳 도서출판 갈매나무┃2013.12.27┃1만 4000원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초파리>┃지은이 마틴브룩스┃옮긴이 이충호┃펴낸곳 도서출판 갈매나무┃2013.12.27┃1만 4000원
ⓒ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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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초파리>(지은이 마틴브룩스, 옮긴이 이충호, 펴낸곳 도서출판 갈매나무)는 초파리가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까지의 여정이자 초파리가 생물학과 유전학 역사에 기여한 결과들을 일목요연하게 갈무리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책은 초파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토머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이 100여 년 전에 초파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초파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열 가지'를 들려주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대개의 연구결과들이 그러하듯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우연과 우여곡절, 시행착오와 반복으로 이어지는 노력의 점철이 낳은 산물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어떤 연구자가 어떤 연구를 어떻게 했으며, 그 연구로 얻은 결과가 무엇인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초파리를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으로 명명하고 있는 책 제목에 저절로 실감하며 동의하게 합니다.

따라서 장수를 위한 최선의 답은 성적 접촉을 싹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초파리가 보여 주었듯이 금욕 생활은 수명에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교미를 전혀 하지 못한 초파리는 마음대로 교미를 하며 사는 초파리보다 더 오래 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와 똑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사람에게도 통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평생 동안 아이를 전혀 낳지 않고 산 남자나 여자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지는 않는다. 금욕 생활을 하는 수도승이나 수녀 역시 마찬가지다.

섹스와 상관없이 수명을 늘리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은 많다. 섹스를 절제하는 대신에 음식 섭취량을 줄여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초파리를 비롯해 많은 동물이 음식 섭취량을 줄임으로써 수명을 3분의 1까지 늘릴 수 있다. -본문 231쪽-

초파리는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게 해 주었고, 생체 리듬에 대한 수수께끼에도 답을 주었습니다. 모든 동물에게는 보편적인 학습과 기억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알려 주었고, 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답해 주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인간 역사 이래 한시도 끊이지 않았을 성생활과 장수비결, 노화를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실루엣 같은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주장에는 동의 못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잔인합니다. 생물이나 유전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초파리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고민하게는 연속입니다. 연구라는 미명하에 강제하고, 억압하고, 자르고, 죽이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인간 우선으로 판단하는 연구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알 수 있는 적나라한 과정입니다.

사육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해당 동물에게 잔인한 삶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초파리의 의견을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야생 초파리는 태어나서 열흘만 살아도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이에 비해 실험실에서는 수십 일을 더 살 수 있다. -본문 211쪽-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묻고 싶습니다. '인간들 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어떤 (외계인)집단이, 사람들이 초파리를 취급하듯 당신을 초파리처럼 취급할 때, 누군가가 당신에게 그런 취급에 만족하냐고 물어 봤을 때, 당신은 뭐라고 답할 건지'를 묻고 싶습니다.

살 가능성이 열흘밖에 되지 않는 초파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를 한다는 이유로 가두고, 강제하고, 자르고, 방사선을 쐬고, 거세까지 시켜가면서 살려두는 걸 두고 초파리 의견 운운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사고가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너무너무 하찮은 곤충일지라도 곤충에게도 생명은 있습니다. 초파리들이 고통을 감지한다는 걸 연구결과로 제시하면서 이런 억지를 주장하는 건 이기심을 넘어선 파렴치함이라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게 합니다. 초파리가 생물학과 유전학 발전에 기여한 결과를 알려 주면서 생물학과 유전학의 현주소를 알게 해줌과 동시에 미래지향적 가능성을 가늠하게 합니다. 그리고 연구를 구실로 자행하고 있는 무수한 살생을 실감하게 하면서 삭막해진 본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한 마리의 초파리가 낳는 결과는 보잘 것 없이 미미할 수도 있습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태풍이 되고, 무수히 희생당한 초파리들이 낳는 결과는 생물학과 유전학 역사를 바꿀 만큼 위대합니다. 항상 주인공인 인간들의 노고와 공은 별도로 남겨줍니다.

덧붙이는 글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초파리>┃지은이 마틴브룩스┃옮긴이 이충호┃펴낸곳 도서출판 갈매나무┃2013.12.27┃1만 4000원



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갈매나무(2013)


태그:#초파리, #이충호, #갈매나무, #생물학, #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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