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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오마이북) 책 표지
 <마을의 귀환>(오마이북)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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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쪽방촌 독거 노인,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까지 불사하는 사람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관심조차 둘 수 없는 각박한 현실. 회색빛 도시에서 파편화된 사람의 삶은 외롭고 위태롭다.

아무리 먹고 살기 바쁘다지만 지금보다 더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사람 사는 '정'이라는 게 있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웃과 서로 나누고 협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물자는 넘쳐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망은 끊어지고 '공동체'는 어렴풋한 유산으로 기억될 뿐이다.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민낯'을 드러내며 생존을 위협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대안적 삶에 대한 갈구.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관에서도 마을만들기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철학의 부재와 일방통행식,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 아까운 혈세를 낭비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는 부작용도 있지만, 어쨌거나 '마을'이 대세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집단을 싫어하죠. 소비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하고 개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요. 반대로 마을은 뭉쳐야 살 수 있죠. 예전에는 재능이 있어도 일터에서 돈 받고 팔았지, 마을에서 이웃과 나누진 못했어요. 하지만 마을에서 사진, 풍물, 목공 기술을 나누기 시작하니까 '나도 이런 일 할 줄 아는데' 하면서 다양한 인적 자원이 나오게 된 거죠. 원래 다 갖고 있던 거dP요. '있다'의 받침 쌍시옷 중 '사람(人)'이 나와서 '잇다'로 관계를 만든 것 뿐이에요." (29쪽)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엮은 <마을의 귀환>은 서울과 잉글랜드의 주목할 만한 17곳의 마을공동체를 취재한 현장 보고서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돌봄공동체로 시작해서 대안학교를 만들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생애주기형 공동체, '원전 하나 줄이기'를 목표로 절전운동, 에너지 축제 등을 벌이는 에너지 자립 공동체, 밀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니라 오래된 주거 지역을 고치고 단장해서 다시 쓰는 대안개발 공동체, '콘크리트 숲' 아파트에서 함게 텃밭을 가꾸고 먹을거리를 나누는 아파트 공동체, 지역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을 통해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장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마을기업 등(6쪽, 프롤로그) 다양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마을공동체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음을 이 공동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21세기 '마을' 개념의 변화... 마을이 움직인다?

21세기에 부활하는 '마을'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적인 마을의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을이라는 개념이 잡힐 듯 잘 잡히지 않는 이유다. 시간과 공간을 오랫동안 함께 하며 사람들이 맺어온 관계의 총체를 마을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마을공동체 특히 도시공동체의 모습은 분명 이와 다른 특색이 있다.

"사람들이 개인의 사적인 삶을 지키려고 하다보니까 외롭고 쓸쓸해졌잖아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자'고 하는 움직임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옛날처럼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자고 하면 불편한 공동체로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사적인 부분을 지키면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있는 삶, 도시와 시골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 그게 제가 생각하는 '도시골'적인 삶이예요." (213쪽)

옛날이야 누구 집 개가 똥을 쌌는지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될 정도로 공동체의 연결망이 촘촘했지만, 구속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삶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느슨한 관계'를 선호한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의무를 포함하는 '공동체'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때문에 21세기의 마을은 다각화된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재창조되고 변화한다.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과 옛날 시골의 정서를 결합하는 방식, 성북구의 예술공동체 '정릉생명평화마을' 김국희씨는 이를 '도시골'적인 삶이라고 정의한다. 마을은 생활의 문제와 요구를 연대와 협동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이다.

이러한 마을 개념의 변화는 흡사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한다. 만났다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이 유연하고 탄력적이라는 점에서 도시공동체는 '촛불집회'와 유사한 틀을 보인다. 특히 한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청년 계층의 마을 만들기는 하나의 공간에 고정되기를 고집하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활력을 유지한다.

구로구의 청년공동체인 '구로는예술대학'은 지도에 없는 마을을 추구하며 경계없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마을의 실험을 보여준다. 자칫 마을 만들기의 주변부에 머무를 수 있는 청년들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사례다. 물리적인 밀착도보다는 가치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 호혜와 연대 협력이라는 '공동체' 본연의 가치를 발현시키면서도 현대인의 생활방식 변화를 반영한 느슨한 관계 맺기의 결합. 21세기에 재탄생된 마을은 움직이고 있다.

도시공동체,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서울시는 2017년까지 975개의 마을계획 수립, 마을활동가 3180명 양성, 돌봄공동체 70곳에 56억 원 지원, 1080개의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풀뿌리 방식으로 주민들을 주인으로 세워나간다면 도시공동체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다. 1000개의 주민 요구를 수렴한 1000개의 마을이 1000개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마을과 마을간의 네트워크와 상호협동이 이루어지는 도시. 어쩌면 자본보다 인간성이 우위에 선 다른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 주거, 문화예술, 먹거리, 미디어, 대안개발 등 마을 만들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여전히 과제는 있다. 경쟁적인 마을 만들기 열풍속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을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문제다. 이 대목에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을 지적한다.

"마을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에 가장 필요해요. 애들 키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끼리끼리 걱정하다가 우리끼리 해보자면서 시작한 게 마을이죠. 물론 농촌부락을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마을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자는 전제를 갖고 있어요. 이 필요는 저소득층, 장애인, 결손 가정에서 가장 절실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마을 만들기를 하기는 힘들죠. 그나마 여유가 있어야 의논도 하잖아요. 사회적 약자 일수록 협동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요. 모순이 있죠. 마을 사업을 신청할 때 저소득층은 단체나 기관과 연계해서 해요. 중산층은 만만하게 생각하고 주민 모임으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고요. 저소득층에게는 철저히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전략으로 대응해야 해요. 마중물을 부어야 하죠." (345쪽)

거칠게 표현해 도시공동체가 '동호회' 수준 이상의 기능을 하려면 사회경제적으로 마을이 '절실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쪽방촌 단칸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마을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이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복지정책일 테니 말이다.

때문에 마을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되고 '루저'로 전락한 이들이 연대하고 협동의 힘으로 삶을 재생시켜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국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며 시혜적인 떡고물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치와 자립의 힘으로 관계지향적이고 대면적인 복지전달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신뢰와 연대, 호혜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나눔과 돌봄이 일상화해야 한다. 마을이 주민들의 '복원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거점으로 될 때, 마을은 한철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에 튼튼히 뿌리 내릴 수 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반세기전 간디의 외침은 21세기에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할 패러다임 대전환의 선언이 되었다. 마을공동체는 자본주의 세계화 전략에 맞선 지역화 전략의 거점이자 상호연대와 호혜협동의 원리로 삶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자본주의 경쟁 논리와의 싸움을 동반하는 마을의 부활은 화려한 귀환이 아닌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쉽지 않은 여정일지 모른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다양한 시도와 도전 끝에 옥석은 가려질 것이다. 협동은 번거롭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마을, #마을공동체, #도시공동체, #협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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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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