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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합니다. 네모난 깡통에서 불꽃이 올라옵니다. 따뜻한 기운이 밀려옵니다. 아이들이 차가워진 손을 불꽃에 가져갑니다.
▲ 화톳불 날씨가 쌀쌀합니다. 네모난 깡통에서 불꽃이 올라옵니다. 따뜻한 기운이 밀려옵니다. 아이들이 차가워진 손을 불꽃에 가져갑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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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흰 냄비에 붉은 생선을 넣습니다. 큰애가 동생들이 성질대로 자른 무를 생선위에 던집니다. 비린내는 고추와 생강으로 잡습니다. 아내가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냄비에 물 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깁니다. 매운탕이 끓기 시작합니다. 아파트 거실이 북적입니다. 여덟 명이 모두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군침 삼키며 뜨거운 눈으로 냄비를 바라봅니다. 지인 가족과 새벽에 어시장 다녀왔습니다. 시장에서 사온 생선으로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잘 끓인 매운탕을 상에 올렸더니 번듯한 '조찬모임' 부럽지 않네요. 매운탕 끓는 동안 살짝 데친 꼬막 내놓았는데 금세 바닥을 봤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6시,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따뜻한 이불을 확 걷어냅니다. 아내의 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립니다. 준영이네와 시장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눈이 번쩍 뜨입니다. 평소 시장과 담쌓고 살던 아내가 느닷없이 장보러 가자고 합니다. 별일입니다. 그것도 새벽시장입니다.

두말 않고 일어났습니다. 헌데, 아이들과 함께 가야한답니다. 오늘은 이웃과 함께 새벽시장 들러 아침 먹는 날입니다. 조금 황당했지만 묻지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시장에 간다잖아요. 하여, 서둘러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헌데, 이 녀석들 눈치가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오뚝이 인형 같은 아이들 깨워 새벽시장으로...

전남 여수 교동시장이 새벽을 깨우고 있습니다.
▲ 교동시장 전남 여수 교동시장이 새벽을 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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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밝아옵니다. 시장이 더욱 분주해집니다.
▲ 새벽시장 날이 점점 밝아옵니다. 시장이 더욱 분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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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입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삶에 대한 열정은 더욱 더 타오릅니다.
▲ 새벽 새벽을 여는 사람들입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삶에 대한 열정은 더욱 더 타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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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와 둘째를 깨운 뒤 막내를 일으켜 세우니 두 녀석이 픽 쓰러집니다. 두 녀석을 다시 깨웠더니 이번엔 막내가 방바닥에 들러붙습니다. 애들이 오뚝이 인형처럼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합니다. 몇 차례 힘을 쓴 뒤 애들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준영이네와 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소리를 듣고 큰애가 벌떡 일어납니다. 이윽고 둘째와 막내도 형의 뒤를 쫓아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습니다. 역시, 또래 친구가 잠보다 더 좋은가 봅니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거리는 여전히 어둡고 춥습니다. 겨울이 시작됐습니다. 여수 교동시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시장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싱싱한 생선을 바구니에 가지런히 놓는 아주머니, 네모난 깡통에 나무토막을 넣고 불을 지피는 할머니, 리어카 가득 배추를 실어 옮기는 아저씨들 그리고 새벽 장에 찬거리 마련하러 나온 사람들까지, 시끌벅적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시장은 활기찹니다.

하지만 세 아들은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몸이 굳었습니다. 시장 입구에 있는 화톳불 주위를 떠나지 않네요. 그곳에서 잠시 몸을 녹이니 준영이네가 도착합니다. 아이들이 반가워서 소리를 지릅니다. 이어, 왁자지껄한 인사 마치자 아내와 준영엄마가 아이들 끌고 복잡한 시장 속으로 뛰어듭니다. 길 걷는 동안 막내 눈이 커집니다. 곤히 잘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니 신기한 게지요.

구워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갈치입니다.
▲ 갈치 구워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는 갈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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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의 대명사 물메기입니다.
▲ 물메기 해장국의 대명사 물메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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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제 맛 내는 꼬막이 흙 묻은 채 그대로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아내가 선뜻 지갑을 엽니다. 아내가 꼬막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와 흥정을 합니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 흥정 찬바람 불면 제 맛 내는 꼬막이 흙 묻은 채 그대로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아내가 선뜻 지갑을 엽니다. 아내가 꼬막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와 흥정을 합니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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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제 맛 내는 '꼬막'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닥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집을 지나 어물전에 접어들었습니다. 갈치와 병어가 맛있게 누워있습니다. 해장국의 대명사 물메기도 보입니다. 찬바람 불면 제 맛 내는 꼬막이 흙 묻은 채 그대로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일행 모두 꼬막 파는 곳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내가 선뜻 지갑을 엽니다.

아내는 살짝 데치면 쫄깃해지는 꼬막 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꼬막 사는데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꼬막을 앞에 두고 아주머니와 흥정을 합니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서로 원하는 값이 정해졌습니다. 아주머니가 꼬막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아내 손에 건넵니다.

맛있는 꼬막 받아든 아내가 걸음을 옮기려하자 큰애가 검은 봉지를 낚아챕니다. 기특한 녀석입니다. 아내가 살짝 미소를 띠며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조찬모임'에 올릴 생선을 찾고 있습니다. 아내는 '닥대'라 불리는 생선을 살 모양입니다. 무와 함께 끓이면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생선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성대'라고도 부릅니다. 아내가 어물전 이곳저곳을 예리한 눈으로 둘러보더니 한 곳을 바라봅니다. 그곳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닥대를 다듬고 있습니다. 생선가게 아주머니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아내가 흥정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이 신기한 지 또다시 쪼르르 쫓아가 엿듣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집을 지나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애들 좋아하는 떡을 샀습니다.
▲ 떡집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집을 지나갑니다. 돌아오는 길에 애들 좋아하는 떡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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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입니다. 지금이 제철입니다. 살짝 데치면 쫄깃합니다.
▲ 꼬막 꼬막입니다. 지금이 제철입니다. 살짝 데치면 쫄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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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꼬막을 먹습니다. 쫄깃한 맛, 오래도록 기억하겠죠? 더불어 새벽시장 풍경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 쫄깃한 맛 막내가 꼬막을 먹습니다. 쫄깃한 맛, 오래도록 기억하겠죠? 더불어 새벽시장 풍경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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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대매운탕을 끓입니다. 모두들 손에손에 숟가락을 들고 뜨거운 시선으로 냄비를 바라봅니다.
▲ 매운탕 닥대매운탕을 끓입니다. 모두들 손에손에 숟가락을 들고 뜨거운 시선으로 냄비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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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담 쌓은 아내의 놀라운 변화, 쭉 이어질까요?

잠시 뒤, 닥대 열 두마리와 만 원을 맞바꾼 아내가 의기양양하게 비닐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이제 맛있는 매운탕과 쫄깃한 꼬막을 맛볼 차례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 마음이 바쁩니다. 빨리 음식을 준비해 조찬모임에 초대한 손님을 맞아야지요. 아내가 차 안에서 각자 할 일을 정해줍니다.

저와 큰애는 널브러진 이불을 개야합니다. 둘째와 막내는 온 방에 흩어진 옷가지들 숨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각자 할 일을 머리에 새기며 아파트에 도착하니 준영이네가 가족을 반기네요. 약간 당황한 아내가 현관문을 엽니다. 그리고 아내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집안을 대충 정리합니다.

뒤따라 들어온 아이들이 음식 장만에 손을 보탭니다. 아이들이 무 자르기에 나섰습니다. 잘라낸 무 모양이 각자 성질대로 생겼네요. 그렇게 요란하게 아침상을 준비해 준영이네와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닥대 매운탕'을 한 숟가락 입속에 넣으니 맛이 기가 막힙니다.

쫄깃한 꼬막도 잊지 못할 맛입니다. 달콤한 새벽잠 털어내며 시장에 다녀왔더니 맛있는 아침상을 받습니다. 역시, 사람은 부지런을 떨어야 입에 뭔가가 들어오는 행운을 만나게 됩니다. 여수 교동시장에서 새벽 찬바람 맞으며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이들도 부지런 떨면 어떤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깨달았겠지요? 그나저나 앞으로 종종 아내가 조찬모임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시장과 담 쌓은 아내의 놀라운 변화가 쭉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태그:#여수교동시장, #닥대, #새벽시장, #꼬막, #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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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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