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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0일, 남쪽 지방인 마산의 날씨는 아주 좋았다. 말 그대로 높고 푸른 하늘. 아이들도 신이 나서 끼를 주체 못하고 벌써부터 뛰어 논다.

"시우야, 시연아. 날씨 너무 좋다. 그치?"
"네!!! 아빠 우리 나가 놀아요."
"그럴까? 아빠랑 나가 놀까?"

사실 이때부터 나는 '마산의 명산인 무학산에 올라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아내는 몸이 무척 아팠다.

"여보. 몸이 너무 아프지?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가서 놀고 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
"괜찮겠어? 혼자서 둘이 보려면 힘들 텐데."
"아니야, 내가 잘 놀고 올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쉬고 있어. 알겠지?"
"응, 고마워. 잘 다녀와."

우리 셋은 등산용 스틱을 하나씩 들고 씩씩하게 무학산으로 향했다.

무학산 입구에서... 언제나 미소 잃지 않고 건강히 자라기를.
 무학산 입구에서... 언제나 미소 잃지 않고 건강히 자라기를.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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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좋았다. 남쪽 단풍은 그리 수려하진 않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산뜻한 산바람이 시원하게 지나갔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입구에서 사마귀 선생을 만났다.

"앗! 아빠. 여기 봐요."
"응 왜 그러냐?"
"여기 사마귀가 있어요. 사마귀예요!"

시우와 시연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안 그래도 요즘 사마귀가 보고 싶다며 노래를 하던 터였다.

"이야. 진짜 사마귀네. 큰놈인데. 이봐, 앞다리를 들고 서 있어. 공격하려나?"
"오빠야 나나라. 오빠야가 공격하면 사마귀가 확 덤비면 어짤래. 나나라."

시우도 머뭇머뭇한다.

"그래 시연이 말이 맞아. 곤충들은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아무 탈이 없어. 사람보다 곤충이 훨씬 겁이 날 거야."
"네 아빠. 저도 공격할 생각은 없었어요. 사마귀 진짜 크다. 맞죠?"
"응 멋진데."

우리는 한참 사마귀를 관찰하고 길가에서 풀숲으로 안전하게 귀가(?)시키고 길을 계속 갔다.

산을 오르는 남매...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의젓한 오빠
 산을 오르는 남매...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의젓한 오빠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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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야, 시연아. 산을 오를 때는 만나는 어른들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거야. 물론 모르는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지. 인사는 아주 중요한 거야. 잘 할 수 있겠니?"
"네. 전 인사 잘해요."

시우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나도 인사 잘해요."

시연이도 지지 않고 대답한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라니 행복하다. 그나저나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오르다 쉬었다, 오르다 쉬었다를 반복하며 다른 등산객들에게 아이들은 인사를 참 많이도 했다. 내려오시는 분마다 신통한 눈으로 "니가 몇 살인데 이렇게 산을 오르노, 신기하다, 참 씩씩하네"라시며 한 말씀씩 하셨다. 시우는 8살이라 괜찮은데 시연이는 5살에다가 덩치도 또래에 비해 좀 작은 편이다. 시우와 시연인 어른들의 이런 격려가 싫지 않은 듯했다.

"아빠 아빠! 저 밑에 우리 집이 보여요."
"맞아요. 장난감 집 같아요."
"그럼 우리는 장남감 집에 사는 장난감이겠네?"

우리는 "와~" 하고 다 같이 크게 웃었다.

어느 덧 산 중턱. 힘들만도 했지만 아이들은 이리저리 구경하며 유쾌하게 산에 올랐다. 벤치가 있으면 쉬었다 가고, 약수터가 있으면 물도 한 모금씩 하고, 새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서서 새소리를 들어가며 천천히 올랐다.

"아빠, 도토리가 있어요."
"아빠, 밤송이가 있어요."
"아빠, 이건 뭐예요?"
"아빠, 저건 뭐예요?"

끊임없이 계속되는 질문과 감탄들. 물론 모든 정답을 말해 줄 수는 없으나 아이들의 질문에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다. 높은 하늘의 푸르름만큼 마음도 한층 더 산뜻해졌다. 행복했다.

무학산 중턱에서 찍은 마산만
 무학산 중턱에서 찍은 마산만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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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른 지 두 시간 쯤 됐을 때, 우린 드디어 정상을 발견했다.

"시우야 시연아. 저기야 저기 안테나 같은 것이 보이지?"
"네, 아빠."
"바로 저기가 정상이야. 우리 벌써 정상까지 온 거야. 정말 대단해. 저기까지 갈 수 있겠어?"
"네!"

아이들은 마치 짜고 한 듯 똑같이 크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올랐다. 물론 아이들 뒤에 서서 아이들을 보며 올랐지만, 짬짬이 산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혼자 왔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이래서 '산을 빨리 오르는 것은 그 산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드! 디! 어! 정상에 올랐다.

"야호! 아빠 정상이예요."

시우가 소리쳤다.

"아빠. 나도 할 수 있다고 했죠. 맞죠?"

뒤따라 시연이도 말했다.

"정말이네. 시우와 시연이가 정말로 무학산 정상에 올랐어. 아빠는 너무 감격스럽구나. 훌륭해. 아빤 시우 시연이가 너무 자랑스럽구나."

나는 아이들을 힘차게 안았다. 정상까지 참고 올라온 마음도 예뻤지만, 힘들어도 내려가자는 말없이 아빠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고 웃으며 올라온 남매가 너무 고마웠다. 어느새 시우는 아빠 마음을 배려하는 든든한 사내가 돼 있었다.

"자 사진 한 판 찍을까?"

무학산 정상에 선 남매
 무학산 정상에 선 남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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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의 멋진 풍경을 눈으로 맘껏 담으며 한참을 놀았다. 가져간 초콜릿도 먹고 사탕도 나눠먹었다. 남매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해 보였다.

"아빠, 저기 보세요. 갈대가 너무 멋져요."
"아빠, 여기 돌이 너무 커요. 이거 공룡 발자국 아니예요?"
"아빠, 바람이 정말 시원해요."
"아빠, 저기 바다 위에 저게 뭐예요?"

나는 몸이 조금 지치긴 했지만 참새 새끼처럼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느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아빠는 시우랑 시연이랑 함께 있으니 너무 행복해. 고마워. 아빠와 끝까지 함께해줘서."
"아니에요. 아빠. 너무 재미있어요."
"나도 너무 재미있어요. 아빠. 유치원가서 친구들한테도 말할 거예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했었다. 이제 곧 세상이 망할 것처럼 고민이 많았었다. 아이들을 보고, 산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산은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아이들은 스스로 즐겁게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모든 걱정은 단지 나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머릿속의 고민이 아니라 나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예쁜 산과 예쁜 아이들이 있는 것만 해도 난 참 행복한 사람 같았다. 지면을 빌어 말씀 드리고 싶다. 힘들다고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 한번쯤은 그곳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휴식을 가지시는 건 어떠실지. 배부른 욕심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 추천 드린다.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보다 지금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의식을 못했을 뿐 가을은 서서히 젖어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가을에 무학산 산행을 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한 최초의 산행이었습니다. 걱정이 반이었지만 너무도 무사히 잘 해내었습니다. 가을 산과 가족애를 너무 감동스럽게 느꼈기에 기사화 하게 되었습니다.



태그:#무학산, #가을산행, #김용만, #김시우,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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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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