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3일 대법원은 유기죄로 기소된 한국철도공사 서울역 직원 박아무개(47)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2011도9675)했다.

서울역 역무과장으로 근무하던 박아무개는 2010년 1월 오전 7시께 서울역 순찰을 돌다 2층 대합실 물품보관함 앞에서 쓰러져 있던 노숙인 장아무개를 발견했다. 그 노숙인은 갈비뼈가 부러진데다 술에 만취해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박아무개는 다친 장아무개를 보호하지 않고, 혹한 속에 서울역사 밖으로 옮기고 그를 방치했다. 혹한 속에 버려진 장아무개는 그날 정오 무렵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검찰은 박아무개에 대해서 법률상 구조의무를 저버리고 장씨를 유기했다면서, 형법상 유기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서울역 직원이 노숙인을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가 없어서 '현행 형법에서 유기죄를 적용할 순 없다'고 판시하였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 이를 처벌하도록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법(the Good Samaritan Law)'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윤리적인 의무를 법제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0년도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규정을 도입하고자하는 형법 개정(안)이 다음과 같이 발의되었다.'제275조의2(구조불이행) ① 긴급한 사정으로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당하여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하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형법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경도돼 있다.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공동체 연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에게 아무 피해가 없는데도 그냥 지나친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이 필요하다'는 찬성 주장과 반대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범죄로 만드는 것, 범죄 성립 요건을 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반대 주장이 제기되었다. 결국 발의된 형법은 국회논의 과정에서 폐기되었다.

형법의 본질적 기능은 개인 생명·신체·재산과 같은 개인적 법익의 보호에 그 제1차적 목표가 있다. 사회 도덕을 강제하거나 고양하는 것을 직접적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도덕적 비난받을 수 있는 행위를 전부 형벌로서 다스린다면 형법만능주의에 빠지게 되어 국가는 윤리 도덕의 보호를 빙자해서 필요 이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반도덕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일정영역은 윤리·도덕·사회여론·평판에서 규율하는 분야로 남겨두는 것이 타당하다(89헌마82).

우리 사회에서 이웃이 위험이나 범죄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는 현상을 형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찾는 방안은 필요하다. 최소한 윤리성과 사회연대성을 복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덧붙이는 글 | 여경수 기자는 헌법연구가입니다. 지은 책으로 생활 헌법(좋은땅, 2013)이 있습니다.



태그:#헌법재판소, #선한 사마리아인법, #비범죄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