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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度寒山閣                           강은 겨울 산 누각 옆을 지나고
城高絕塞樓                           성은 높아 변방의 보루에 우뚝하다
翠屏宜晚對                           푸른 병풍 같은 산 늦도록 마주할만하고
白谷會深遊                           하얀 계곡은 모여 오래 놀기 좋아라
急急能鳴雁                           급하게 울음 우는 기러기
輕輕不下鷗                           가볍게 내려오지 않는 갈매기
彝陵春色起                           이릉에는 봄빛이 시작되니
漸擬放扁舟                           차차 작은 배나 띄워볼까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다. 바로 병산서원 '만대루' 이름의 출처다. 만대루와 나의 인연은 벌써 20년 세월을 두고 있다. 역사교육을 전공한 터라 대학 재학 때부터 한 학기에 한 번씩 답사를 다녔다. 그때는 워낙 살림이 궁했다. 답사비를 내지 못해 답사에 참가하지 못한 때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영남 유교문화를 주제로 답사를 갈 때도 함께 하지 못했다.

병산서원, 처음 만난 것은 교직 6년차 때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대루를 찍은 모습. 늦도록 마주할 만대루 현판의 글씨가 손님을 푸근하게 맞아들인다.
▲ 만대루 건물 모습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대루를 찍은 모습. 늦도록 마주할 만대루 현판의 글씨가 손님을 푸근하게 맞아들인다.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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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처음 만난 것은 교직 6년차쯤 되었을 때다. 학년에서 의논하여 수학여행지를 영남의 유교와 불교문화권으로 정했다. 속리산이나 설악산을 주로 가던 시절이었지만, 유흥 위주의 여행을 지양하고 조상들의 정신세계와 미(美)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체험이 되도록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답사 장소에 맞는 주제를 주어 학생들 스스로 미리 공부할 시간을 주었다. 다녀온 후 보고서 과제도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진지한 자세로 답사하였다.

병산서원도 그 중 한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 길이 좁았다. 2~3km 되는 길을 한 학년 전체가 퉁퉁거리면서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조선시대 학생들이 걸어갔던 통학길을 체험해 본 것이다.

그렇게 병산서원, 그리고 만대루와 만났다. 햇볕 따가운 긴 길을 걸어 만대루에 올라선 순간, 온몸의 세포가 마당에 핀 백일홍처럼 활짝 열렸다. 시야도 강과 산을 향해 넓게 열렸다. 사방이 열린 건물이었다. 기둥만으로도 우뚝했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기둥을 액자삼은 산수화가 드리워져 있었다.

건축학자 승효상씨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저서에서 병산서원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축의 특징을 알려주고 싶을 때, 그가 시간만 있다면 나는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으로 안내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거의 반드시 그들은 이 놀라운 공간과의 조우로 깊은 사유에 들어간다."

나도 그랬다. 병산서원에 도착하여 만대루에 오르는 순간 시공간을 잊은 채 하염없이 앞만 바라보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 몸은 만대루가 아닌 우주의 넓은 공간에 떠있는 것 같았다.

임진왜란은 조선 건국 후 최대 위기였다. 일본이라는 외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림 내부 동인과 서인의 갈등,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갈등은 외침(外侵)의 큰 파도 앞에서도 사그라들 줄 몰랐다. 격랑(激浪)의 난세를 치우지지 않는 균형감각으로 현명하게 헤쳐 온 분이 계시다.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이다.

정계 은퇴 후, 낙향한 그가 후학들을 위해 세운 곳이 바로 여기다. 낙동강 흐르는 화산을 병풍처럼 드리운 병산서원이다. 그리고 그는 하회마을을 휘감는 강 건너 산자락의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의 교훈을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병산서원은 성리학 전성기에 학문과 현실 참여를 동시에 이룬 유성룡의 기개와 포부, 후손들에 대한 서원(誓願)이 고루 어린 곳이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황이 명종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아니하고 학문과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시대의 부름에 응하여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그들이 몸담았던 공간에서도 분위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황의 도산서원은 꼬불꼬불 돌아 들어간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에 비해 병산서원은 비록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해자(垓子)를 둘러치긴 했지만 모래벌에 당당히 나선 헌헌장부의 기상을 지녔다. 만대루에 서서 큰소리로 글을 읽으면 마주선 화산이 절벽 끝으로 감아올려 하늘에 계신 성현께 이을 듯하고, 시를 지어 낭랑한 목소리로 읊으면 낙동강 흰 물새가 이를 물어 온 세상에 고할 것 같다. 그 뿐 아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 만대루에 올라 슬피 탄식하면 병산이 함께 울어주고, 절세가인이 곡조 한 자락을 펼치면 강물도 아낙네의 푸른 치마를 풀어 너울너울 화답할 것 같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건강과 향유 위해 지어진 건축물

만대루와 백일홍꽃. 사진은 사진작가 '비바라기' 네이버 블로그(http://djkkll1233.blog.me/60197051212 )의 양해를 얻어 싣습니다.
 만대루와 백일홍꽃. 사진은 사진작가 '비바라기' 네이버 블로그(http://djkkll1233.blog.me/60197051212 )의 양해를 얻어 싣습니다.
ⓒ 비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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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건축은 무릇 그 곳에 사는 자의 것이다. 물론 봉건 사회에서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한계는 있지만, 밖에서 보는 자의 즐거운 시선을 위한 것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건강과 향유를 위해 지어졌다. 병산서원도 마찬가지다. 안에서 하루라도 기거해볼 때 서원이 지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서 만대루를 보면 만대루의 비워진 공간이, 풍경화 걸린 벽임을 실감할 수 있다. 만대루가 병산서원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옆으로 기다랗게 지어진 연유도 깨달을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우리의 건축 문화재를 일 년에 단 며칠이라도 개방하여 당대에 그렇게 쓰였던 것처럼 기거해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적극 찬성하는 편이다. 건물은 사람의 숨결을 먹고 산다는 말이 헛말이 아닌 것이다.

병산서원을 처음 가본 후 그곳을 잊을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유학자처럼 그 곳에서 지내보고 싶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우리 큰 애와 함께 3박 4일 체험프로그램을 병산서원에서 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는 내가 느끼는 것만큼 병산서원의 가치를 모를지도 모른다. 또래들과 실컷 장난만 쳐서 담당선생님을 누구보다 힘들게 한 나흘이었지만, 아이의 먼먼 추억에서 그 풍광은 사진처럼 또렷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백일홍을 아리땁게 처음 만난 곳도 병산서원이다.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가짐을 일깨운다는 선비의 꽃이다. 더운 여름날 지친 푸름 속에서 도드라진 진분홍 빛깔로 활력을 돋아주는 백일홍이 나이 먹을수록 일신우일신으로 좋아져간다. 흰 가지가 사슴뿔처럼 펼쳐진 병산서원 바깥마당의 백일홍은 내 마음 속에 처음 피었던 백일홍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구태(舊態)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지만 유교 내지 성리학은 우리에게 귀한 정신적 보루임을 잊어선 안 된다. 병산서원을 통해서 청빈낙도(淸貧樂道)했던 조상들의 맑은 검소함에 다가갈 수 있다. 만대루에 앉으면 끝없는 채움의 강박을 한여름 매미 허물처럼 벗을 수 있다.

만대루(晩對樓)에 올라

만대루에 오른다.
두툼한 통나무계단 디뎌 오른다.
사방 열린 벽, 들어오는 바람
담뿍 안으며 오른다.

만대루에 섰다.
병산(屛山) 마주보며 섰다.
강 위로 손 뻗으면
오랜 친구 어깨라도 잡을 듯하다.

만대루에 앉는다.
강물 위 흰 새처럼 사뿐히 앉는다.
초가을 햇살, 빛나는 모래
소쿠리 담아 옆에 끼고 너르게 앉는다.

만대루를 걷는다.
세월이 쓸어놓은 결 거친 마루
수백 년 바람 흔적 골 지은 기둥 부비며
마루 끝에서 이어진 하늘 따라 걷는다.

그 옛날 만대루에 앉아
낭랑히 글 읽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았을 푸른 시선들
발자욱처럼 찍혀 있는 하늘 걷는다.


태그:#역사, #명승지, #만대루, #병산서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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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자스민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여행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보는 ssuk02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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