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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더운 나머지 아메리카 인디언의 어느 부족이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이라 칭했다던 8월이 마침내 떠나갔다. 이어 들어선 9월의 햇살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자전거 핸들을 잡은 팔뚝에 닿는 햇살에서 여름날의 따가움이 아닌 가을날의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햇살도 종류가 있다면 둥근 햇살이다.

이제 곧 추수를 해야 하는 농부님들처럼 도시인들도 부지런해야 하는 계절이다. 해가 갈수록 짧아져만 가는 가을(그마저도 올해는 가장 짧은 가을이 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전언이다)의 정경과 운치를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 어느 계절보다 달리기 좋은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마찬가지.

쪽빛, 진파랑, 비취색, 코발트 블루··· 해변에 따라 파아란 바다색감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동해 바닷가. 유난히 뜨거운 여름 햇볕이 부담스러워 미루었던 동해바닷가 자전거 여행, 지난 주말(9월 1일) 애마 자전거와 함께 정동진에서 헌화로, 옥계, 망상해변을 지나 묵호항까지 짙푸른 바닷가를 실컷 달려갔다.

바다와 가까워 기네스북에 오른 기차역 정동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바닷가에서 가까운 정동진 기차역.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바닷가에서 가까운 정동진 기차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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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한적한 해변, 바다도 사람도 여유로워 보인다.
 9월의 한적한 해변, 바다도 사람도 여유로워 보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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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역에서 5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강원도 강릉행 무궁화호 기차에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타는 건 태반이 정동진역 덕분이다. 기차여행의 낭만도 시들해지고 심신이 지칠 무렵 사람들의 크고 작은 탄성과 함께 짙푸른 동해바다가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다. 철마속에서 오랜 시간 달려온 여독이 풀리는 순간이다.

좌석을 못 구해 정동진까지 열차 카페 칸 휴게실 바닥과 객차 사이 공간에서 널브러져 있던 남녀 학생들이 환호를 지르며 기차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니, 내 스무 살 시절의 고생스런 추억과 당시의 친구들이 떠오르고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세대 간에 같은 추억을 공유하게 해주는 것이 강릉행 무궁화호 기차다.         

정동진역은 바다와 가까운 것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하더니 정말 바닷가 기차역이다.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정동진역에서 입장료 500원을 내고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 해변을 감상할 정도다. 역 내에 있는 소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바닷가 철길 위로 오가는 알록달록 칠을 한 기차와 작고 아담한 시골역 같은 정동진역을 오가는 사람들, 푸르른 동해바다를 감상하자니 절로 여행의 운치가 배어난다.

여름휴가시즌이 끝난 동해 바다는 쪽빛을 더욱 진하게 발하며 쉬는 듯 하고, 해변을 걷는 사람들도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퇴역한 기차를 활용하여 만들어 놓은 길쭉한 박물관 구경도 하고 길고 푹신한 모래사장를 걷기도 하며 심곡항 방면의 해안을 따라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몇 분도 못가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야했다. 커다란 리조트 시설이 해안을 가로막고 있는데다 이어진 해안도로가 없어 그 옆의 경사진 언덕 도로를 넘어가야 했다.    

비취빛 바다의 해안가, 헌화로

대문없는 정다운 마을, 강릉 심곡리.
 대문없는 정다운 마을, 강릉 심곡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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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닷가는 해변마다 바다의 색감이 다르게 느껴져 신기하다.
 동해 바닷가는 해변마다 바다의 색감이 다르게 느껴져 신기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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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자전거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 급한 오르막길은 다행히 짧아서 끌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간다는 자전거 용어)를 하며 가뿐히 올랐다. 해안도로가 없는 대신 2차선 언덕도로 양옆에 새로 만들었음직한 보행로 겸 자전거도로가 널찍하게 이어져 있어 안전하게 오르고 내리막을 달려 심곡항이 있는 심곡리 마을에 도착했다.

'망치'라는 특이한 이름의 물고기 매운탕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심곡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담장은 있지만 정작 대문이 아예 없어 여행자를 놀라게 한다. 대문 없는 마당으로 햇볕을 쪼이고 있는 빨간 고추와 닭 우는 소리, 어깨높이의 돌담이 정다워 사진을 찍으며 집 앞을 서성이다 이웃집에서 나오는 아저씨와 마주쳤다.

대문이 아예 없는 집은 제주도에서 보고 처음 본다고 하자, 싱긋 웃으시며 지금은 차길이 나있지만 예전엔 하도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도둑은 커녕 6. 25전쟁 때도 별 일없던 곳이었단다. 마을 이름 '심곡리'에서 느껴지듯 심곡(深谷)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마을 앞에 작은 항구 심곡항과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는 심곡리 해안도로에서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헌화로'가 이어져 있어 주말이면 심곡리 마을에도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헌화로 바닷가에도 분단의 상징 철책이 둘러서 있다.
 아름다운 헌화로 바닷가에도 분단의 상징 철책이 둘러서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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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로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며 청명한 동해 바다를 직면할 수 있는 헌화로는 자동차로 휙 지나가며 감상하기엔 아까운 곳이다. 자전거 페달을 최대한 천천히 밟으며 울퉁불퉁 바위 사이로 찰랑거리는 때깔 고운 동해바다를 감상하다가 문득 지나온 정동진 해변과 바다색깔이 다르게 느껴졌다.

정동진 앞바다가 짙푸른 쪽빛 바다라면 이곳은 고려청자가 연상되는 비취빛 바다다. 선조들이 고려시대 청자를 만들 때 헌화로 부근의 동해 바다색에서 영감을 얻었을 듯싶다. 어떤 이는 강릉 경포대 앞의 동해 바다를 '코발트 블루(청색)'라고 표현하던데 정말 푸른 동해 바다는 그 색감을 조금씩 달리 부를만하다.

비취빛 바다에 물고기도 잘 잡히는지 차도와 보행로에 한쪽씩 차를 걸쳐 주차해놓고 낚시를 하러 온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수렵 본능에 푹 빠진 낚시꾼 아저씨들은 정말 못 말린다. 주말의 헌화로는 표지석의 홍보 문구처럼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아니라 최고의 피싱(Fishing) 코스로 보인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더없는 안구정화를 하게 해주었던 헌화로 바닷가에도 분단의 상징 흉물스러운 철책과 더불어 민간인 출입금지 해변이 있어 놀랬다. 동해안 절경 곳곳에는 이런 군부대의 철책이 생뚱맞게 출현하곤 한다. <택리지(擇里志)> (1751년 완성, 영조 27)에서 "백두대간을 등에 업고 동해바다를 끌어안은 강원도 영동의 경승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라고 말했다던 학자 이중환 선생이 이 철책을 보았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마도 천혜의 동해안 절경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며 못난 후손들을 꾸짖었을 듯하다. 아니, 언제까지 이런 흉한 철책을 아름다운 바닷가에 두르고 살 거냐고 마구 혼내 주셨으면 좋겠다. 작은 어선 두 척이 들어서 있는 '금진 조선소'라 써있는 작은 조선소가 눈길을 끄는 금진 해변을 지나면 비로소 헌화로 길이 끝난다.  

바닷가의 청정 쉼터, 옥계 해송 숲

옥계 해변 뒤로 펼쳐진 해송림, 바람과 그늘이 참 좋다.
 옥계 해변 뒤로 펼쳐진 해송림, 바람과 그늘이 참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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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화물기차역이 된 옥계역, 여행자를 반겨주는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젠 화물기차역이 된 옥계역, 여행자를 반겨주는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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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동네 한 가운데로 맑은 물이 흐를 것 같은 옥계면엔 너른 해변이 있다. 탁 트인 해변만큼이나 인상적인 게 뒤로 펼쳐져 있는데 바로 해송 숲. 해풍을 막으려 심어놓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어울려 잎이 엷은 침엽수임에도 나무 그늘이 햇볕을 잘 가려준다. 그런데 해송 숲의 아름드리나무마다 밑 둥 쪽에 나무속까지 깊게 패인 큰 상처가 똑같이 나있는 게 시선을 붙잡는다. 숲속을 산책중인 어느 할아버지께 여쭤보니 놀랍게도 일제 강점기 때 송진을 얻으려고 저런 생채기를 낸 것이란다. 

1941년 미국은 자국에서 수출한 석유가 일본의 동남아 침공용 군수물자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유수출을 금지하였다. 이에 일본은 턱없이 부족한 화석연료(석유 등)를 대체하기 위해 일본 본토는 물론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도 주민들을 동원하여전국적으로 송진을 강제 채취하였다.

채취된 송진은 테레빈유와 로진으로 정제하여 사용했고, 테레빈유는 가솔린을 대신하여 항공기 연료 등으로 썼고 로진은 방수포, 인쇄잉크를 만드는 데 활용되었다. 소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인 테레빈유를 송유라고 한다. 큰 흉터를 안고서 살아가는 옥계 해송 숲 소나무들이 마치 사람처럼 느껴져 브이(V)자로 패인 어느 소나무에 잠시 손을 올려 놓고 온기를 전해 주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등받이가 있는 벤치에 누우니 불어오는 바닷 바람에 낮잠이 솔솔 몰려온다. 아직은 더 달리고 싶어 잠에 빠지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하늘을 보다가 소나무 가지 위의 까만 청설모와 눈이 마주쳤다. 주민은 물론 여행자에게도 최고의 숲속 쉼터다.

백로들이 노니는 풋풋하고 깨끗한 개천(주수천)이 동네 옆을 지나 동해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옥계면의 항구엔 포항에서나 봄직한 거대한 시멘트, 제철소 공장이 들어서서 해변길을 막아서고 있다. 몸집을 더 불리고 있는 옥계면 산업단지 앞 길가에 과거 동네 주민들이 오갔을 기차역 옥계역이 보인다. 간식을 사먹었던 옥계면의 '꽃사슴 마트' 주인장 아주머니가 이젠 역에 기차가 서지 않는다고 말해주어 폐역이 됐겠거니 했는데, 근무 중인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 천천히 구경하고 가라며 반겨준다. 현재 화물용 기차역으로 쓰이고 있단다.    

동해 바다를 보며 등대까지 걸어 오르는 묵호동 언덕동네.
 동해 바다를 보며 등대까지 걸어 오르는 묵호동 언덕동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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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아침과 달리 한가롭기만한 늦은 오후의 묵호항.
 분주한 아침과 달리 한가롭기만한 늦은 오후의 묵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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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의 철책으로 길게 둘러쳐져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도직 해변을 지나 큰 캠핑장이 있는 유명한 해수욕장 망상 해변과 이름도 정겨운 어달항, 어달해변을 언덕길 하나 없이 편안하게 달려 지나면 높은 언덕동네 위로 흰 등대가 서있는 묵호항이 나타난다. 도시에 달동네가 있다면 묵호동 언덕동네는 해가 뜨는 바다를 바라보며 있는 해동네다.

묵호등대마을의 역사는 묵호항이 열린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험한 뱃일이나 모진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 묵호항이 가까운 언덕배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하면부터다. 자전거를 잠시 묶어두고 언덕동네 위 묵호 등대를 향해 '논골담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보았다.

이채로운 출렁다리를 건너 언덕 동네의 돌계단 길을 안방 드나들듯 손쉽게 돌아다니는 귀여운 견공을 따라 오르다 마주치는 집 담벼락의 벽화들이 정답다. 언제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바라보여서인지 오르막 걸음 걸음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동해 바다가 발 아래로 펼쳐지는 언덕길 어느 집 앞에 써있는 무명인의 시가 가슴을 알알하게 한다.

바람의 언덕

바람 앞에 내어준 삶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을 살려 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 주요 자전거 여행 코스 ; 정동진역 - 심곡항 - 금진해변 - 옥계해변, 옥계면 - 망상해변 - 묵호항 - 묵호역

덧붙이는 글 | 묵호항 부근에 기차역 묵호역외에 동해버스터미널이 있다.



태그:#자전거여행, #정동진, #헌화로, #옥계, #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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