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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를 떠나는 차들이 줄을 지었습니다.
 피서를 떠나는 차들이 줄을 지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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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텐트 안에서 자면 안 추워요? 아빠, 텐트 칠 줄 아세요? 아빠 텐트 치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어렵대요."

15일 아침에 그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1박 2일 피서를 떠났습니다. 비록 우리 가족만 가는 것이 아니라 기독시민단체 수련회라 조금 섭섭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피서 장소는 지리산 자락입니다. 계곡에서 물놀이도 합니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텐트에서 하룻밤 자는 것을 무척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는 아이들의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보입니다. 가는 길 내내 텐트에 관한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입니다. 15일쯤 되면 피서를 대부분 다녀왔을 것인데, 지리산 자락은 사정이 다릅니다. 차로 이어진 줄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차가 많이 막히네. 차가 밀릴 리가 없는데."
"사고 난 모양이에요. 경찰차처럼 생긴 차가 불빛을 내고 있어요."
"사고가 나면 경찰차만 아니라 119도 가잖아."
"그럼 사고가 아닌 모양이에요."
"사고도 아니면, 아직도 피서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아빠 저기 보세요. 차가 정말 줄을 섰어요."

다행히 교통 체증은 금방 풀렸습니다. 휴가지에 도착하니 다른 분들이 벌써 와 있었습니다.  이제 할 일은 텐트를 치는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직접 텐트를 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텐트에서 자는 것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텐트도 동생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도움을 텐트를 치고 있습니다. 텐트 안에 잔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딸 아이는 텐트 안에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 도움을 텐트를 치고 있습니다. 텐트 안에 잔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딸 아이는 텐트 안에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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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른들 도움을 받아 텐트를 치고 있습니다. 텐트 주인은 가만히 있고, 다른 분들이 열심이 쳤습니다. 이런 아빠를 한 두 번 본 아이들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도 열심입니다. 텐트 안에 잔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나 봅니다.

"아빠 오늘 밤 텐트에서 자니까. 정말 좋아요."
"아빠도 좋아. 막둥이 텐트 안에서 자 본 적 있지?"
"응! 지난해 중항교회 성경학교 때 잤어요?"
"텐트 안에서 자니까. 재미있지?"
"정말 재미있었어요."
"서헌이는?"
"나도 진짜 재미있어요. 오늘 텐트에서 자니까. 정말 좋아요. 신기할 것 같아요."

텐트를 치고, 근처 계곡으로 올라가 물놀이를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이후 처음입니다.

물놀이가 마냥 좋은 막둥이
 물놀이가 마냥 좋은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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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물에 들어오세요."
"아빠는 싫어."
"정말 재미있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물이 너무 없어."
"그래도 재미있어요. 다른 분들은 들어오셨잖아요."
"아빠는 물이 조금 더 많으면 좋겠다."

물이 별로 없는데도 막둥이는 신 나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조금 시무룩합니다.

"왜 그러니 재미없어?"
"아니. 신발에 모래가 많이 들어와요."
"발가락이 많이 아파?"
"발가락은 안 아픈데. 자꾸 모래가 들어오니까. 불편해요."
"그럼 조심해서 물놀이를 하렴. 조금 있으면 숙소로 들어갈 거야. 저녁에 어른들이 토론할 때 너희들은 바비큐 파티를 할 거야."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요."

무엇이든 잘 먹는 딸아이는 바비큐 파티를 한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2층에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하고 있는 데 큰 아이가 들어와서 딸아이의 귀에 벌레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있고,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습니다.

"아빠, 서헌이 귀에 벌레가 들어갔는데 울고 있어요."

"벌레가 들어갔다고 울어?"
"그렇다니까요. 엄마가 빨리 아빠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요."
"병원까지?"
"응, 119 불러요?"
"119? 벌레 들어갔는데 119까지 불러?"
"서헌이가 토하고 있어요?"

급하게 아이에게 다가가니 얼굴은 눈물 반, 콧물 반입니다. 온몸은 땀으로 가득 찼습니다. 귀 안에서 벌레가 움직일 때마다 아이가 울었습니다. 불빛을 비추면 벌레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랜턴으로 비췄지만 조금 기어 나오는 듯 하더니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빠, 너무 아파요. 엄마, 너무 아파요. 벌레가 움직이고 있어요.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해요."
"조금 있으면 119가 올 거야."
"아빠, 아파요. 또 움직여요. 아야~ 아야~"
"조금만 참아. 119 올 거야."

처음에는 벌레가 뭐기에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했지만 귀에서 벌레가 움직일 적마다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니 참 힘들었습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돼 다시 집회에 들어갔습니다.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왜 그렇게 안 가는지. 드디어 119가 왔습니다. 아이와 엄마는 119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었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1시간 이상 지났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산골에는 이비인후과와 응급실이 없어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갔다고 합니다. 무려 50km를 달려간 것입니다. 한 마리 벌레 때문에 119는  왕복 100km를 달렸습니다. 벌레보다 훨씬 응급환자가 많을 것인데.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119 대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모든 분들도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딸 아이의 귀에 들어간 벌레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벌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귀 안에 들어가서 들락거렸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가 봅니다. 텐트 안에서 함께 자지 못한 것을 제일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딸 아이 귀 안에서 나온 벌레. 이 녀석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딸 아이 귀 안에서 나온 벌레. 이 녀석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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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게 저 귀에 들어갔던 벌레였어요. 지금도 벌레가 귀 안에 기어 다니는 것 같아요."
"그래? 귀는 괜찮아?"
"응."
"어떻게 이 녀석이 들어갔어?"
"나도 모르겠어요. 가만히 있었는데 귀 안에서 무엇이 움직였어요."
"텐트 안에서 못 잤는데, 아쉽지 않아."
"다음에 가면 돼요. 오빠하고, 체헌이는 텐트 안에서 자니까. 좋았어?"
"응 재미있어. 하지만 누나가 없어서 쓸쓸했어."
"내년에는 진짜 텐트에서 자면 좋겠다."
"엄마도 함께 가야지."'

엄나와 여동생(누나)가 없는 텐트 안은 쓸쓸합니다. 딸 아이는 텐트에 그렇게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습니다.
 엄나와 여동생(누나)가 없는 텐트 안은 쓸쓸합니다. 딸 아이는 텐트에 그렇게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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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야(野)한 이야기' 응모



태그:#피서, #물놀이 ,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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