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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달려 있는 방범창들. 말 그대로 도둑의 침입이나 위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다. 보호의 목적으로 설치됐다 하더라도 철장에 둘러싸여 살면서 안정감보다 삭막함이나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범죄를 저질러 철장 안에 갇혀 사는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철장에 갇힌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Cage. 케이지의 사전적 의미는 명사로 쇠창살이나 철사로 만든 짐승의 우리나 새장을 말하며, 동사로는 우리(새장)에 가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 인간이 이용하는 케이지는 어떤 대상을 보호하려는 목적보다는 가두기 위해 사용한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게 공장식 산란계 농장의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다.

새를 새장에 키우지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배터리 케이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새장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A4 용지 반절 크기. 바로 그 면적이 배터리 케이지 안에서 암탉 한 마리가 평생 알을 낳으며 사는 공간이다.

닭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A4 용지 크기 비교 사진
 닭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A4 용지 크기 비교 사진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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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트 진열대에 위생적으로 포장되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제품 홍보만을 보고 달걀을 선택해 구매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달걀이 상하지 않은 이상, 어떤 달걀을 먹어도 큰 차이나 문제를 느끼기란 어렵다. 달걀 선택 시 직접 눈에 보이는 것은 상품 이미지와 가격이기에 암탉이 평생 좁은 케이지에서 알만 낳는 현실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기란 힘들다.

여러분의 달걀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달걀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요?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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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고, 암탉이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현실을 모른다 해도 변치 않는 명확한 사실이 있다. 바로 동물들의 고통이다. 유럽연합이 2012년 암탉의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법적으로 금지한 과학적 근거도 바로 케이지 자체가 동물 복지에 근본적으로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EU Scientific Veterinary Committee, 1996). 

먹이를 찾기 위해 땅을 쪼고 탐색하고, 횃대에 올라앉고, 알을 낳기 전 둥지를 트는 것은 닭이 가진 타고난 본능이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은 이런 습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옆에 있는 닭을 공격하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다른 닭의 깃털이나 살점을 쪼아 먹는 행동 질환)을 보인다.

농장주는 이로 인해 닭이 죽는 것을 방지하려고 병아리가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자른다. 병아리의 목을 잡고, 불로 달군 뜨거운 날이 달린 기계에 부리를 넣어 자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한 번에 많은 수의 병아리 부리를 잘라야 하기에 정교하게 부리를 자르기란 어렵다. 부리가 잘못 잘려 염증이나 부정교합이 생기기 일쑤며, 기형이 된 부리는 평생 먹이를 먹거나 깃털을 다듬는 등의 기본적 행위를 힘겹게 만든다.

배터리 케이지에 일단 들어가면 산란능력이 떨어져 도살장에 가는 날까지 나올 수 없다.  평생 철망 바닥 위에 서있는 암탉의 발톱은 기형적으로 자라고,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서 있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이런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알만 낳는 암탉의 30~35%가 골다공증으로 죽음을 맞는다.

도살장에 가기 위해 사람 손에 의해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극도로 약해진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바람이나 햇빛을 막는 설비조차 없는 운송차량에 배터리 케이지보다 더 작은 케이지에 다른 닭들과 머리가 나온 채 실리고, 그 상태로 도로를 달려 도살장으로 간다.  

일렬로 층층이 쌓인 케이지는 아래쪽으로 분변이 쌓여 청결을 유지하기 힘든 구조다. 비위생적인 환경은 또한 닭들이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 배터리 케이지에 사육되는 닭의 모습 일렬로 층층이 쌓인 케이지는 아래쪽으로 분변이 쌓여 청결을 유지하기 힘든 구조다. 비위생적인 환경은 또한 닭들이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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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케이지가 동물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과 질병을 야기하는지 연구 결과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배터리 케이지는 가장 기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 그것도 단지 몸을 돌리거나 날갯짓을 하거나 걸을 수 있는 것조차 허락지 않는 사육 시스템이며, 이는 닭의 복지를 최악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닭의 현실을 알게 된다면, 달걀 구매 시 선택 기준이 예전과 같을까? 최악의 상태에서 사육되는 닭이 낳은 달걀을 먹고 싶은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동물복지를 개선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축산물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동물복지를 개선할 수 있다.

국내 인구보다도 많은 암탉 전부를 케이지에서 당장 해방시킬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동물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 지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논의를 촉구하는 것은 절대 이른 일이 아니다.

케이지 면적을 늘리거나, 닭의 본능을 펼칠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하거나, 단계적으로 케이지를 없애는 방법을 대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최소한 닭이 덜 고통스럽도록 현재 최악의 상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를 먼저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먹는 달걀을 낳는 암탉이 넓은 초원도, 넓은 닭장도 아닌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만으로도 동물복지를 개선하는 도약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동물복지 인증 마크
 동물복지 인증 마크
ⓒ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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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 케이지 종식을 위해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는 것 외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인증하는 동물복지 달걀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기준은 케이지 사육 금지뿐 아니라 동물이 가진 최소한의 본성을 충족시키는 요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동물복지 달걀을 구매하는 것, 우리가 암탉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태그:#배터리 케이지, #암탉, # 산란계 , #달걀,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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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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