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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사 어귀 원통문
 구룡사 어귀 원통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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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첫 번째 여인

노년에는 한의사도, 양의사도 한결같이 많이 걷는 게 건강에 가장 좋다고 권했다. 서울생활을 접고 강원도로 내려온 뒤로 나는 매일 한 차례씩 산책을 한다. 나의 산책로는 안흥 산골마을에 살 때는 세 코스로 송한리 가는 길, 동네 오솔길을 한 바퀴 도는 길, 주천강 강둑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나는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하는데, 그 세 길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 좋았다.

이태전 원주 시내로 거주지를 옮긴 뒤에도 거의 매일 산책을 하는데, 이곳에서 단골 산책길은 네 코스다. 첫 번째는 동네 매봉산 오솔길이요, 두 번째는 구룡사 가는 길이요, 세 번째는 치악산 남쪽인 금대계곡이나 자연휴양림, 또는 신림 방면의 상원사 가는 길이요. 네 번째는 매지리 연세대 캠퍼스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도 발길 닿는 대로 그날 기분에 따라, 또는 먼저 오는 버스에 따라 코스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구룡사 들머리 산책길이다. 이곳은 경치도 가장 좋거니와 이즈음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별도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만들었기에 그 길을 걷는 발바닥 촉감이 여간 사뿐치 않다.

어제 오후 우체국에 볼 일이 있어 예사 날 산책 때와는 달리 콤비에 구두를 신고 외출했다가 그 차림으로 곧장 구룡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버스 종점에 내리자 며칠 사이지만 녹음도 한결 더 우거진 듯하고,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잠시 한차례 소나기가 쏟은 탓으로 구룡사로 가는 산책로 언저리가 더욱 풋풋하고 상큼했다.

예사 날과 마찬가지로 매표소를 지나 산책로인 널빤지 나무 길을 걷는데 30대 전후의 한 여인이 휠체어를 밀며 산책로를 앞서가고 있었다. 곧 내가 앞지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이 밀고 있는 휠체어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정네가 앉아 있었다. 얼핏 보니 그 남정네는 지체장애인 같았다. 남정네는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밀고 여인도 뒤에서 밀면서 언저리 경치를 두리번거리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구룡사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뒤로 한 채 계곡의 물소리와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눈은 싱그러운 녹음을 즐기면서 뚜벅뚜벅 원통문(圓通門)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는 이즈음 한창 새로 산책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신사화를 신었기에 더 이상 오르기는 단념하고 원통문 계단에 손수건을 깔고 앉아 멧새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원통문

산의 공기는 상큼함을 넘어 간장까지 시원케 한다. 이즈음 나는 가을에 나올 책을 집필한다고 하루 열 시간 이상 방안에 갇혀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목과 어깨도 아프고, 머리도 열을 받기 마련이다. 그 가장 좋은 치료는 바로 산책이다.

내가 심호흡을 하며 멧새들의 노래를 공짜로 마냥 즐기고 있는데 조금 전의 그 여인이 휠체어를 밀고는 원통문 쪽 오름길을 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여간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이 내가 앉은 원통문에 이르고는 거기서부터 공사 중인지라 그들도 더 이상 오르기를 포기한 듯 멈췄다. 나는 문득 그들 사이가 궁금했다.

"실례지만 두 분 사이가 어떻게 됩니까?"
"부부예요."

사내가 싱긋 웃으며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 네. 보기에 참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 주셔서. 작년 가을에 결혼했습니다."

여인도 나에게 목례를 보내며 활짝 웃었다.

"여기 문 현판 글씨를 어떻게 읽습니까?"
"원통문입니다. '원통(圓通)'이란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으로, 송강의 관동별곡에서 나오지요. '원통골 가는 길로 ….'이라고요."
"학교 선생님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 부부의 아름다운 인연에 매료되어 왠지 나도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내가 하는 일과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사내는 스마트 폰을 꺼내 두드리더니 곧 질문이 쏟아졌다.

 제주 서귀포 앞바다 외돌괴
 제주 서귀포 앞바다 외돌괴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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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다

"다방면의 책도 내셨네요. 제가 요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정말 반갑습니다. 어
떤 제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졸업한 지 3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따르는 한 제자가 있지요. 날씨가 춥다고 또는 덥다고… 계절이 바꿔 꽃이 피면 꽃소식을 전하는 등 무시로 문안인사를 하는 제자지요."

"아, 네에. 두 분이 부럽습니다."
"그 제자는 나와 미주 대륙을 횡단하는 게 꿈으로, 지난해 가려고 했다가 그만 내 사정이 여의치 못해 떠나지 못했습니다."

"네? 미주 횡단을 요?"
"그럼요, 그것도 약 50일간 미국대륙 남쪽 길과 북쪽 길을 왕복하는 스케줄로 잡았답니다."
"꼭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금강산 구룡폭포
 금강산 구룡폭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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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서 손 전화를 누르자 이 아무개 제자가 반갑게 받았다. 내가 사연을 말하고 전화를 건네자 두 사람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수원에 있는 ㅅ전자 신제품개발팀에 근무하고 있는데 부인도 같은 회사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 커플이었다고 했다. 그의 질문은 호기심 많은 학생이 선생에게 온갖 것을 묻듯이 쏟아졌다.

"선생님 다녀보신 나라 중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어디였습니까?"
"우리나라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였습니까?"
"바다는 서귀포 앞바다가, 산은 금강산이었습니다."
"아, 네."

그들 부부는 원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족과 만나기로 하였다면서 휠체어를 돌렸다. 나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함께 하산했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눈을 감고 그들 앞날에 기도를 드렸다. 그는 결혼하기로 작정하는 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대단한 용기와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의 기도는 그 용기와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 부부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디 해로하기를 하늘을 향해 빌었다.

Ⅱ. 두 번째 여인

몇 해 전, 내가 안흥 산골마을에 살 때였다. 그해 늦가을 우리 부부는 단풍구경에 나섰다. 단풍이 고울 때는 사람에 지칠 것 같아 설악산 일대 단풍철이 조금 지난 때에 나섰다. 남설악 오색에서 일박하며 주전골 계곡의 철 지난 단풍을 감상했다. 다음 여정은 한계령을 넘어 백담사로, 거기서 다시 미시령을 넘으면서 설악의 울산바위를 주차간산(走車看山)할 예정으로 한계령 길을 올랐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기에 늘 아내 차 신세를 지는데, 아내는 참 갑갑하고 답답하도록 교통법규를 준수한지라 늘 마음이 편안하다.

아내는 주변머리 없는 남편을 만나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딸아이가 고교생이 된 뒤 어느 늦은 밤 소나기를 쫄딱 맞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혼자만 비를 맞고 걸어왔다는 울부짖음에 이튿날부터 아내는 운전교습을 받았다. 그 뒤 승용차를 사려고 하는데 나는 프라이드 이상은 안 된다고 하여 그 차를 10년 넘게 타고 다녔다.
 늦가을 남설악
 늦가을 남설악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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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한계령 비탈길을 오르면서 이제는 차를 바꿀 때가 되었나 보다고, 강원 산골에서도 가장 후진 차를 몰고 다닌다는 푸념을 했다.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차창 밖의 늦가을 경치에 두리번거리는데 앞차는 경차로 아내보다 더 느리게 가고 있었다. 곧 앞차는 뒤따르는 우리 차를 보고 미안했음인지 갓길로 달리면서 추월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핸들을 잡았다면 벌써 추월했을 텐데 아내는 추월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천천히 앞차의 뒤를 따랐다.

우리 내외는 느긋하게 앞차를 따르면서 문득 누가 운전을 하는지 궁금했다. 급커브 길에서 보니 핸들을 잡은 이는 아내와 비슷한 또래의 여인으로, 그 옆에는 젊은 남자가 타고 있었다. 한 10여 분 달리자 휴게소가 나왔다. 앞차는 거기로 빠졌다. 아내도 휴게소로 핸들을 돌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앞차에서 핸들을 잡은 여인이 차에서 내려 앞장서고 곁에 앉은 젊은이가 뒤를 따르는데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들은 모자 사이였다. 거기서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 가는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들 모자는 우리 내외처럼 단풍놀이를 왔던 것이다. 어머니는 핸들을 잡고 언저리 단풍 경치를 아들에게 얘기하면, 아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로 설악의 단풍을 즐기는 듯했다. 나는 그 광경에 돌부처처럼 서서 그들 모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세상이 각박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살만 한 것은 아내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이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한 인류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내 눈에는 이들 두 여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세상은 살만 한 곳, 아름다운 사람이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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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