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책표지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책표지
ⓒ 오마이북

관련사진보기

2012년 세계적인 석학 7명과 대담한 내용이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오마이북)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였다.

2012년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거의 동시다발 치러진 선거, 그 전후로 발생했던 일련의 사건들, '아랍의 봄', 미 심장부에서 울린 '오큐파이 운동', 한국에서의 '희망버스', '안철수 현상' 등이 저자 안희경의 눈에는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였던 것 같다. 안희경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진보성향의 세계 석학들의 안목과 통찰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석학들은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패권에 대한 저항여론의 중심에 서 온 MIT 대학의 놈 촘스키(Noam Chomsky), 서구에 티베트불교를 알려온 컬럼비아 대학교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 한국에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널리 알려진 프레임 이론의 선구자 버클리 대학의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 몰입이론으로 행복과 창의력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kiszentmihaly), 공생의 파트너로서 동물권 개념을 제기한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 하버드대 종신교수에서 열성적인 대외 활동으로 뉴욕유니언 신학교로 자리를 옮긴 신학자이자 민중 지도자인 코넬 웨스트(Cornel West), 마지막으로 인도의 사상가이자 식량주권 보호, 생태적 환경운동을 주도하는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등 7명이다.

이 대담집은 7명의 석학들로부터 시대 조류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의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석학들의 기대와 달리 지난해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 후보였다. 적지 않은 진보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은 충격과 절망으로 소위 '멘붕'에 빠진 듯했고, 저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대담에 참여했던 석학들의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에서 '힐링'의 힘을 발견한 저자는 대담집 앞뒤의 프롤로그·에필로그는 물론 각 대담 사이를 연결해주는 인터뷰 후기에 그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정성스런 노력을 기울였다. 최재천 의원의 추천사처럼 "새 시대를 열망했던 많은 분들에게 다시 일어서야 하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희망의 근거"를 제공하는 진보를 위한 힐링서로 거듭난 느낌이다. 대선 결과로 멘붕에 빠진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이 책이 그런 용도로만 쓰인다면 나는 이 글을 쓸 자격이 없는 듯하다.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며, 대선 결과에 대한 멘붕의 공감대도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진보진영의 힐링 서적이 아닌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요, 솔루션 찾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접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진보 진영은 자기성찰의 시간과 이론적 자원을 얻고, 중도나 보수층은 현시대의 문제 진단과 솔루션에 대한 진보진영 내부의 다양한 시각과 해법의 편차를 접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힐링이 아닌 18대 대선 결과를 되짚어보는 기회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솔루션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통해 본 18대 대선

조지 레이코프 교수.
 조지 레이코프 교수.
ⓒ 안희경

관련사진보기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로 유명한 레이코프 교수의 대담은 기존의 이분법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이론적 자원을 준다. 나는 레이코프 교수의 책을 직접 읽지 않았지만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에 몸담고 있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귀에 익게 됐다. 필자가 기존 이분법 프레임에서 벗어난 유권자들이 늘고 있고, 민주당의 좌향좌 노선 전환이나 네거티브 정권심판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을 하면 어김없이 반비판의 논거로 '레이코프의 코끼리'가 언급됐다. 대담집에 그 논리가 정리돼 있다.

"중앙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왼쪽으로 옮겨가지 않아요... 같은 보수의 언어를 쓰거나 보수의 언어에 걸려 협상을 한다면 별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본문 114쪽)

이러한 레이코프의 입장은 보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좌향좌 정책 포지션으로의 이동을 정당화하는 근거이자, 정권심판론이라는 네거티브 캠페인에의 안주를 합리화하는 논리였다. 그러나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에 담긴 레이코프의 이야기는 그들이 바라본 레이코프와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중앙이 없고, 보수의 프레임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게 정책 포지션에서의 중도전략 무용론의 근거가 아니다. 레이코프 교수는 내 주변과는 반대로 국민 개개인을 진보 대 보수라는 양자택일의 이분법적인 틀로 구분하지 않았다. 진보프레임과 보수프레임이 공존하고 있으며(소위 최근 태도이론에서 주장하는 앰비발란스 개념) 정치인들의 메시지가 어떤 프레임을 활성화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선호와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기존의 진보 대 보수를 공존할 수 없는 제로섬 관계로 파악하는 이분법적인 태도 이론에서는 진보의 부정은 보수이며, 보수의 부정은 진보가 된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먹히면 자기 진영에는 이득이 되기 때문에 어렵게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입증하기 보다는 상대를 공격하는 손쉬운 전략을 선택하게 한다.

우리가 18대 대선에서의 프레임 전쟁을 이 책에 소개된 레이코프 교수의 논리로 평가한다면 그의 주장을 세 가지로 압축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람의 뇌 속에는 수많은 차원 의 프레임들이 산재해 있고, 진보적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식구조 내에는 진보의 프레임과 보수의 프레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최근 인지과학이 입증한 사실이다. 과거의 이분법의 틀에서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사람은 '개념 없는' '무식한 유권자(ignorant voter)'로 불렸다. 그러나 레이코프의 보수-진보프레임이 공존한다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둘째, 레이코프에 따르면 정치에서는 '도덕적 프레임'이 최상위의 위치를 점하고, 그 하위에 정책·이슈 등 하위 프레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하위의 프레임들은 상위 프레임의 맥락 하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달리 표현하면 선거 분석에서 정책 포지션을 둘러싼 좌향좌·우향우 논쟁의 승패는 논리의 정교함이 아니라 얼마나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셋째, 레이코프는 '상대방에 네거티브 공격은 공격한 쪽의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받은 대상의 프레임을 활성화한다'고 주장한다. 즉 보수심판론은 진보의 프레임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의 프레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입장이 없는 유권자를 자신의 지지자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상위의 정치 프레임인 도덕성 프레임을 상대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만들어내고(도덕적으로 정당화),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보다 자신의 가치를 일관되게 전달하면서 구체적인 정책과 캠페인과 연결시켜나가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수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거나 둘 중 한 가지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둘 다 약간씩 가지고 있죠. 이 말은 같은 뇌 속에서 두 가지 도덕적 시스템이 있으며 정치인들은 둘 중 하나가 활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109쪽)
"...(한국에서 4·11 총선 패배는) 정책이 없어서가 아닐 거예요. 도덕적 가치 속에서 정책을 설명했어야 합니다. 우리 진영이 왜 옳고 가치 있는 지 말해야지, 원래 우리는 옳다고 가정해버리고 정책을 설명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본문 93쪽)

지난 대선에서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한 야권의 좌향좌 노선이 박근혜 후보의 도덕적 정당화와 결부된 중도화 포지션 이동 전략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지 이해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를 통틀어 한국 야당의 강령이나 규약 상 그리고 국민들에 대한 메시지에서 스스로를 진보나 좌파로 규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야당이 아무런 이념적 정체성의 변화에 대해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이동한 것은 레이코프의 이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레이코프를 근거로 정권심판론과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를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그를 오독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권심판론이 작동하지 못한 이유를 프레임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권심판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정당화 실패로 봐야 할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네거티브 공격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기정사실화 했던 한국의 진보개혁 진영의 안이함 역시 레이코프에 대한 오독이 작동한 결과겠다.

반면 박근혜 후보 캠프는 4·11 총선 전 패배의 위기 상황에서 기존 보수의 전통적 이슈 포지션에서 벗어나 다수의 유권자가 지지하는 경제민주화·복지 이슈 포지션으로 이동하면서 이를 '국민통합' '자성과 쇄신'의 프레임 하에서 정당화했다. 진보진영의 이론가로 활동해온 레이코프 교수지만 그의 프레임이론을 지난 선거에서 실제 적용한 것은 보수진영이 아니었나 싶다.

일곱 석학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거의 경직된 사고의 틀에 충격을 가하는 다양한 쟁점을 보여준다. 나는 이들 7명의 생각을 크게 사회경제적 영역(모순)에 대한 인식의 편차, 정치적 솔루션을 둘러싼 처방의 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미래상에서의 편차를 중심으로 이들의 생각을 비교해봤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논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경제적 솔루션] 시장경쟁의 파괴에서 느슨한 경쟁까지

피터 싱어 교수.
 피터 싱어 교수.
ⓒ 안희경

관련사진보기


일종의 공통질문인 사회경제적 모순에 대한 대가들의 솔루션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시장 경쟁'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과 새로운 시각의 충돌이다. 그동안 진보좌파의 시각에서 시장과 자유무역을 앞세운 신자유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효율성을 위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이러한 무한경쟁은 인간 존엄과 가난한 자들의 연대를 막는 사회적 기제로 억제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놈 촘스키 교수와 코넬 웨스트 교수의 진단은 정통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사회다위니즘의 관점에서 혁명적 변화보다 점진적 변화를 강조해온 피터 싱어 교수는 그 폐해로 인해 '시장 경쟁'을 적절히 제어하는 가운데 그 효율성을 용인하고 이용하도록 조절해야 한다('느슨한 경쟁')고 주장한다. '몰입' '융화' 프로그램을 통한 창의력 교육을 주창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입장도 신중하다. 창의력이 높은 사회에는 강한 경쟁과 높은 기대 수준과의 상관관계를 인정한다. 진보의 논리 내에서 시장 경쟁에 대한 다른 목소리들이 발언권을 얻는 듯하다. 사실 시장경쟁에 대한 입장은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아젠다다. 진보의 대표적인 석학으로 분류되는 대담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역시 기존의 진보-보수의 틀에 대한 재검토와 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다윈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좌파는 사회경제적 기반이 바뀌면 이기적인 행동이 사라질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달라져도 인간의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죠...다윈적 사고는 경쟁과 이타주의를 모두 포괄합니다. 시장경제는 우리의 욕망과 경쟁 속에서 앞서겠다는 욕망을 용인하죠...우리는 이(느슨한 경쟁)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피터 싱어(본문 175~176쪽)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창의적인 사회를 들여다보면, 아주 심한 경쟁이 벌어지며 기대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도그마를 내세우거나, 또는 갈 수 있는 길이 단 하나뿐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거죠."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본문 144~145쪽)

[정치적 솔루션] 미국판 민주연합에서 오큐파이 운동·지구민주주의까지

가난 극복·인권·생명과 평화 등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해법과 관련해서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미묘한 입장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놈 촘스키 교수는 '의회 민주주의'는 부자의 권력을 집중시키는 민주주의며 대중을 갈라놓고 규제하는 제도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반신자유주의의 실현 방법으로서 민주적 혁명에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다. 차가운 혁명을 주장하는 로버트 서먼 교수 역시 사회적 약자의 투표참여와 최악을 막기 위한 선거참여를 독려하면서 미국 리버럴을 보다 진보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군중운동을 강조한다.

한편, 신자유주의와 경쟁에 대해 전통적 시각을 견지했던 웨스트 교수는 민주당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최악보다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제3후보(사회주의 후보)의 의회 진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반면 오랜 기간 민주당 선거 전략을 조언했던 레이코프 교수는 최선 대신 차선으로서 자유주의 정당과 제3정당의 연합, 민주당 활용론을 내세운다.

이러한 논리들은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도 많이 접했던 입장들이다. 각 석학들의 입장과 논리를 대담집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한국 현실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정치적 논리들을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다수의 석학들이 오큐파이 운동을 중심으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의 경험들이 이 석학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2008년 '촛불'이 오큐파이 운동의 전조였다고 볼 수 있다면, 한국의 촛불의 진행과정과 그 이후의 변화과정을 분석해 미국 오큐파이 운동이 앞으로 전개될 방향에 대한 조언도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근원적 처방들] 현실 직시 그리고 연대의 르네상스

'강정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Don't Kill Kangjung Kurumbi)는 의미로 팻말을 들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강정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Don't Kill Kangjung Kurumbi)는 의미로 팻말을 들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 안희경

관련사진보기


이 대가들이 지향하는 미래의 방향도 다채롭다. 여든다섯의 나이에 구럼비를 지키자는 제주 강정마을과 전 세계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소식에 촉각을 세우고 연대를 실천하는 놈 촘스키 교수는 오큐파이의 세계화를 기다리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오큐파이 운동을 주장하면서도, 분노에 기반한 '열정의 혁명' 대신 지속가능한 비폭력과 내면의 깨달음을 통한 '차가운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서먼 교수의 목소리가 대비된다.

한편, 나라의 행복이 군사력이나 산업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이 국민들의 감성에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감성성장국가론은 특히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세대와 통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인권 개념을 동물권 개념으로 확장하자는 주장의 파격(?)과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서 기존 질서와의 타협을 수용하는 피터 싱어 교수의 진화론적 접근법이 인상적이었다. 사회통합과 이념갈등의 치유가 중요한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커 보였다.

이와 함께 힐링이 아닌 현실의 직시를, 낙담 대신 싸우면서도 사랑과 연대의 르네상스, 블루스맨 정신을 꿈꾸는 웨스트 교수의 시종일관 열정적인 목소리도 이채로웠다.

마지막으로 자연과 생명, 인간의 연결을 주장하며 정치권력 대신 종자주권·식량주권·물의 주권·땅의 주권을 실현하는 지구민주주의(earth democracy)를 강조하는 반다나 시바 박사의 비전은 보수-진보의 각박한 이념대결에서 찾지 못하는 지구·자연·인류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생각의 전환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들의 차이를 살펴보는 과정은 그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체로 눈앞의 현실에 급급한 사람들의 시야와 초점을 고쳐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담집에서 간간히 비춰지지만, 하나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일곱 명의 대가들의 삶 자체는 역시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사람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보수석학과의 대담집으로도 이어지길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사유하고 실천하는 7명의 대가들이 한국사회에 던져준 이야기 중 무엇이 옳고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의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진보학자들의 서적이라고 편견을 두면 그들의 용어로 인해 진보 정체성을 갖지 않은 독자들은 거리감이 적지 않겠지만, 생각을 조금 열고 보면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보는 편견을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가령, 진보는 획일적이며 조야한 유물론적 사고에 머물고 있다는 식의 편견).

7인 7색의 통찰과 지혜는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한 다양한 논쟁과 토론을 진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끝나지 말고, 보수 석학들과의 대담집, 한국과 해외 지성들과 대담집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보와 보수의 승리욕을 자극하는 100분 토론식 대결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양 진영의 진지한 문제의식을 교감하는 기회가 확대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한울님은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입니다.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세계의 지성들이 말하는 한국 그리고 희망의 연대

안희경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안희경,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오마이북,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