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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과정에서 피의자가 변호인의 참여(조력)를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경찰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변호인을 참여시키지 않은 채 작성한 신문조서는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한 경찰이 피의자신문 당시 진술거부권을 설명했더라도, 그 답변 부분에 피의자가 자필로 작성하거나, 서명이 돼 있지 않은 조서 역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주에서 인천공항 등을 운행하는 버스기사인 S씨 등은 승객이 현금으로 낸 운임을 빼돌리고나, 또 미처 승차권을 구입하지 못하고 승차한 탑승객으로부터 현금을 받은 뒤 전날 빼돌린 승차권을 마치 당일 매표소에서 구입한 승차권을 받은 것처럼 다른 승객의 승차권과 함께 호치켓으로 찍어 회사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적게는 7만5000원에서 264만원을 각각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1심인 전주지법 형사4단독 김균태 판사는 2009년 8월 업무상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버스기사 1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으나, 전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종문 부장판사)는 2010년 2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이미 변호인을 선임한 피고인이 자신의 변호인의 참여를 희망함에도 변호인의 참여 없이 신문을 진행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버스운전기사 S씨 등 13명에 대해 신문조서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에게 부여된 권리를 무시한 채 작성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조서에 의하면 S씨가 '피의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요'라는 사법경찰관의 물음에 '예'라고 답변했음에도 사법경찰관은 변호인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S씨를 상대로 혐의사실에 대해 신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관계가 이와 같다면, 피고인이 경찰 조사 당시 변호인의 참여를 원하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했음에도 사법경찰관이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해야 할 정당한 사유 없이 변호인의 참여에 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계속 피의자신문을 행한 조치는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런 신문결과에 의해 작성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위반된 조서일 뿐만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에 해당하므로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증거능력을 부인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비록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려 주고 그 행사 여부를 질문했더라도, 형사소송법 제244조에 규정한 방식에 위반해 진술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피의자의 답변이 자필로 기재돼 있지 않거나, 답변 부분에 피의자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돼 있지 않은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312조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조서라 할 수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조서에는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아니오, 진술할 것입니다'라는 답변이 기재돼 있기는 하나, 그 답변은 피고인들의 자필로 기재된 것도 아니고, 답변 란에 피고인들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도 돼 있지 않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조서로 볼 수 없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재판부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전주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버스를 운행한 후 피해자 회사에 제출한 승차권 가운데, 운행 당일 발권되지 않은 승차권들이 다수 있는 점은, 피고인들이 승객들로부터 운임 명목으로 수령한 현금을 회사에 입금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횡령하는 한편, 회사에는 자신이 미리 확보해 두었던 다른 날짜의 승차권을 제출한 것임을 추단케 하는 유력한 객관적 증거"라며 "횡령 혐의에 대해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진술거부권, #변호인, #피의자신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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