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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주한미군 범죄가 빗발치고 있다. 2월 2일 의정부~망월사 구간 1호선 지하철에서 주한미군 6명에 의해 발생한 20대 여성 집단성추행 사건이 기소되기도 전에 3월 2일에는 주한미군의 일명 '이태원 유사총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또 3월 14일에는 평택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에서 20대 여성이 주한미군에게 강제추행 당하는가 하면, 3월 17일 새벽 홍익대 앞에서는 주한미군에 의해 경찰이 폭행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범죄는 2004년 324건에서 2010년에는 491건으로 급증했다. 하루 한 건 이상 발생하는 셈이다. 실제로 3월 17일 새벽, 경찰 폭행사건이 일어난 홍익대 앞에서 한겨레신문 기자와 인터뷰 한 익명의 경찰 관계자는 "주한미군이 소동을 벌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금요일 밤이나 주말에는 순찰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일이 입건했다가는 일을 다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잘한 사건이 많다"고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주한미군 범죄지만,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이 구속되었다거나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적으로 범죄 양산하는 한미SOFA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외국인은 국내법에 따라 내국인과 똑같이 처벌받게 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다르다. 미군 범죄를 수사하고 재판하는 과정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이하 한미SOFA)에 의해 규정된다.

한미SOFA는 주한미군에게 광범위한 형사, 민사상 특권을 제공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2001년에 2차 개정된 한미SOFA 제22조 제5항에 따르면, 한국은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검찰이 기소하기 전까지 구금할 수 없다.

개정협정 제1조
제22조 제5항 (다)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행사할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 또는 그들의 가족인 피의자의 구금은 그 피의자가 대한민국에 의하여 기소될 때까지 합중국(미국) 군 당국이 계속 이를 행한다. <개정 2001. 1. 18>

이 때문에 한국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을 현장에서 체포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군기지로 돌려보내야 한다. 특별한 경우는 한미SOFA 관련 합의의사록에 의해 "예외적으로 2가지 범죄(살인과 죄질이 나쁜 성범죄)에 한해 현행범으로 체포했을 때"로 제한되어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주한미군이 살인이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현행범이 아니면 한국 경찰에 구금당하지 않는 대신 미군 당국이 구금을 행한다. 물론 피의자가 실제 '구금'상태인지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다.

미군은 미 군영 지에서 '출·퇴근 조사'를 받는다. 이태원에서 시민들에게 유사총기를 난사하고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미군의 경찰 조사 사례가 가장 최근의 예다. 자신들의 차량으로 경찰관을 들이받고 미군기지로 도주한 이들이 며칠 후 과자봉지를 들고 경찰서로 출두하는 장면은, 미군들이 한국에서 누리는 특권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미군당국이 행하는 '구금'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신체구속'이라기보다 사실상 '보호'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한미SOFA는 주한미군 범죄 수사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시간을 끌다 귀국하는 것이 전략?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아예 미국으로 출국해버리는 사례도 많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는 2012년 7월 경기도 평택에서 주차단속에 항의하는 시민들 3명에게 수갑을 채운 주한미군 제51비행단 소속 미군이 최근 슬그머니 출국한 사건이다. 이들은 '불법체포' 혐의로 현재까지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이 사건 역시 이른바 '공무' 중 발생한 사건으로 한미SOFA에 의해 미군 당국에 재판권이 넘어간 상태다.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미국 쪽에 재판관할권 포기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피의자들의 출국이 검찰의 동의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사실상 '검찰이 범인도피 방조범'이라고 일갈하였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항간의 소문대로 주한 미군의 복무기간이 1년인 점을 이용해 '시간을 끌다 귀국하면 된다'는 전략을 우리 검찰이 묵인한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살인을 저지른 미군이 해외로 출국함에 따라 사건 자체가 미궁에 빠져버린 사례도 있다. 2000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서정만씨(당시 68세) 살인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서정만씨는 사건 전날 밤 미군과 자신의 전셋집으로 들어간 후 다음 날 죽은 채 발견되었다. 한국 경찰은 해당 미군이 부대로 복귀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사조차 할 수 없었다. 서씨 살인사건은 결국 2002년 용의자였던 미군이 출국함으로써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

한국일보 3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주한미군 범죄가 2천 건 넘게 발생했지만, 구속 수사를 받은 인원은 4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 사법당국이 대규모 촛불집회 등의 시국사건과 그 외 범죄에서 국민을 강제연행하고 구속하는 현실과 비교해보면, 한국 사회가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의 신체구속에 얼마나 관대한지 알 수 있다. 물론 사람의 신체에 대한 구속은 범죄 용의자라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경우는 아무리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더라도 미군기지에 들어가거나 출국하는 경우 사실상 수사가 어렵다. 그 때문에 주한미군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문제는 사건 해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재판권도 내놓은 한국

대략적인 형사재판 과정
 대략적인 형사재판 과정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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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수사가 어렵사리 진행되더라도 실제 검찰 때문에 기소가 되고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주한미군범죄근절 운동본부'가 최근 4년간의 SOFA 범죄 처리현황을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범죄자 1781명 중 60%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겨우 5% 정도인 77명만이 정식 재판에 회부되었다.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을 재판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미SOFA가 한국의 재판권 행사를 극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본협정 제22조 3. (가)
합중국 군당국은, 다음의 범죄에 관하여는,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군속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할 제1차적 권리를 가진다.
(2)공무집행중의 작위 또는 부작위(act or omission)에 의한 범죄.

위 조항에 따르면, 한국은 주한미군이 '공무집행 중'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재판권 자체를 아예 포기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이다. 2000년 2월 9일 용산 미8군 영안실에서 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는 인체에 유독한 포름알데히드 20박스(1박스 당 475㎖병 24개, 총 480병)를 무단 방류할 것을 지시했다. 미군 당국은 역시 공무수행 중이라는 이유로 한국에 재판권을 넘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 법원이 국민들의 비난 여론을 등에 업고 직권으로 맥팔랜드를 정식재판에 회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당국은 '공무 증명서'만 날린 채 계속 재판을 거부했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2013년 3월 13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에 재판관할권 포기를 요구할 수 있지만, … 미국은 지금까지 재판관할권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해서 모두 다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경우 재판 결과 전체의 80∼90%정도가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있으며, 실형을 받는 경우는 많아야 1년에 한 두 명 정도다. 게다가 시사포커스 3월 16일 보도에 의하면, 미국 측이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 미군당국은 대부분 주의, 견책 등의 행정적 징계로 끝내고 형사 처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가 2002년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한국 사법당국은 장갑차를 운전한 주한미군을 처벌하라는 국민들의 여론에 밀려 미국에게 재판권 포기를 요구하였으나, 미국은 거부하였다. 미국 관할 하에 진행된 재판에서, 장갑차를 운전한 미군은 '공무수행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국은 주한미군에게 사실상 '범죄 자유구역'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구조적으로 범죄 양산하는 한미SOFA

주한미군 범죄가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개인적 성향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997년 9월 미국의 자유기고가 케빈 헬드먼은 주한미군에 대해 "미국사회의 온갖 무능력자들과 범죄자가 될만한 인물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지른 원인을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른바 '무능력자'로 취급당한 저학력, 빈곤계층을 모조리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주한미군 범죄는 SOFA 탓이 크다.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에 가게 되면 먼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특징이 있다. 자신이 주한미군임을 여기저기 알리는 것이다. SOFA의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그 덕에 자기의 범죄가 가볍게 처리된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특권, 즉 "치외법권"을 광범위하게 규정한 한미SOFA가 오히려 범죄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더 이상 주둔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는 것이 주한미군 범죄 근절의 근본적 대책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한미SOFA를 개정하고 그들의 범죄도 '예외 없이' 처벌하는 것이 최소한의 조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김성훈 기자는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태원, #미군 범죄, #주한미군, #소파협정, #한미SO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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