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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일은 종교에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고, 뉴스감인가 보다. 새로운 교황선출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성직자 성추행, 교황청의 부패와 권력 암투 등 개혁의 필요성을 드러낸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고 언론과 가톨릭 내부에서는 '변화'를 선택할 새로운 지도자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은 듯하다.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인류가 몇 천 년 동안 살아온 경륜과 문명적인 지적관습 그리고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되어야 한다. 조계종은 최근 선거 자체를 문제 삼으며 잡음이 없으면 결과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식의 방향으로 지도자 선출(10월 10일)을 고민하는 모양새다. 이것은 평신도의 의견이 최소한도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후보의 자격과 선거절차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을 비교해 보는 것이 무례나 결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격 : 도덕성, 효율성, 안정성, 불쏘시개... 다양한 시선들

먼저, 총무원장의 자격을 바라보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소개되지 않는 분들이 있어도 섭섭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도법스님은 자성과 쇄신 결사를 잘 할 수 있는 후보, 둘째 가장 실세인 종단주요 요직을 차지하는 종책모임 스님들은 자신들을 배반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을 유지시켜줄 후보, 세력이 약한 종책모임은 새로운 후보를 통해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후보, 소위 총무원과 가까운 불교계 시민사회는 민주적인 절차로 조계종을 안정시킬 수 있는 후보, 총무원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불교계 일부 시민사회는 '도덕성'과 기본적인 인격을 갖춰 부끄럽지 않는 후보를 원한다.

도박이나 성매매 의혹이 없는 후보를 원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도덕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현재 크지는 않다. 하반기 본격적인 후보윤곽이 드러나면 쟁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조계종 종단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는 선거인단 500명 이내의 동향은 '그 나물에 그 밥' 분위기가 횡행한다. 젊을 때, 친목도모로 '실수' 안 한 사람 있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로운 몇 분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한 보선스님과 종립대학 이사장을 하고 있는 정련스님은 그나마 '도덕성'에서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종권이 교체되어도 자성과 쇄신 결사운동을 지속하는 등 '효율성'을 자격의 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종단 분규 없이 안정된 종권이양을 후보의 중요한 자격으로 보는 이들의 의견은 본인의 뜻과 다르게 '현 원장 재임론'으로 연결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현 총무원장 측근에서 여러 후보를 거론하고 추천하면서 현 원장스님과 비교하는 '밥자리'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일부에는 기존의 단단한 기득권 '종단정치'를 뒤집어엎을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절차 : 선추천 간선제 확대, 가톨릭 교황선출 방식도 좋아하는 일부 스님들 

조계종은 지난해부터 원로의원이 포함되는 '쇄신위원회' 중앙종회, 결사본부, 여러 조직을 만들거나 공청회를 개최하며 '총무원장 절차'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했다. 70~80년대 비상종단이나 1994년 종단개혁 이후 가장 많은 공개토론회와 '자성과 쇄신'회의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통계는 아직 정리 되거나 비교되지 않고 있다.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의도 자성과 쇄신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스님들은 냉담하다. 각종 공청회나 토론회에 참여하는 스님도 소수이며, 열기도 차갑다. 민주적인 절차논의의 흥행이 실패하면서 자성과 쇄신운동도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한편, 서울대 법대 정종섭 교수는 지난해 10월 22일 동화사가 주최한 '팔공총림 설치 추진을 위한 심포지엄-율장정신과 종단징계제도의 문제점' 기조발표를 통해 "조계종 지도자를 구성하는데 민주주의 원리나 투표가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민주주의 원리는 강제적 권력을 본질로 하고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인 국가에 적용되는 원리일 뿐, 자율적인 종교조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 조계종체제가 1994년 종단개혁의 흐름으로 마련된 종헌 종법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과는 근본적인 면에서 다른 의견이다. 조계종 지도자 선출 방식에 대해 헌법학자인 정종섭 서울대 교수가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다수결주의와 '투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과거 종정중심제, 총무원장 중심으로 종단분규를 겪은 일반 평신도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동화사는 현 종정스님을 배출한 중심 교구본사이다. 정 교수는 총무원장이 종단을 대표하는 것은 법리에 합당치 않고, 조계종의 최고 권위를 갖는 대표는 '종정'이라고 주장하고, 또 총무원장은 종무행정이나 소송에서의 법률상 대표로서의 지위만 갖는다는 의견이다. 

한편, 선원수좌회 한 스님은 "현행 321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는 총무원장 선거제도를 직선제로 전환하면 매표행위 등 금권선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불교시민사회 한 관계자는 "공화적 전통을 현대사회에 맞게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전통에 가장 부합한다, 현 상황에서 평등하고 전면적인 직선제를 실시하는 것이 공화적 전통의 부활로 가는 현실적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토론회에서 국회 격인 중앙종회 한 스님은 "세속적인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산중고유의 방식과 전통승가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며 "현행 총무원장 선거인수를 유지하거나 축소해 청정한 선출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무원장을 특별보좌관 한 스님은 직선제 도입 대신 교구별로 배정되는 선거인단 수를 대폭 늘리고 선거인단을 산중총회에서 선출하는 등 간선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평신도들과 투표권이 없는 대다수 스님들의 속내가 반영된 가장 바람직한 총무원장 선출방법은 무엇일까. 지난해 총무원장 선출제도에 대한 다양한 논의 일정이 있었지만, 소수 몇 명만의 잔치로 끝났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현행 총무원장 선출제도는 종회의원 81명과 교구본사 240명(교구별 10명씩)으로 총 321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소수 간선제 방식으로 사부대중 공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고, 교구별 재적승 편차가 반영되지 않으며, 계파정치에 따른 소수독점 및 금권선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종단쇄신위원회가 제안한 개선안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후보자를 천거하고 선거인단이 투표로 간접 선출하는 '선추천 후선출'이 주요 내용이다. 추천위원회는 선·교·율 등 종단의 신망 받는 인사와 종헌종법기구·공직자 등으로 폭넓게 구성된다. 추천위에서 검증을 거쳐 2~3인의 총무원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중앙종회·교구종회·본사주지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서 총무원장을 선출한다.

조계종 결사추진본부는 최근 자문회의에서 "선거인단은 400~1000명까지 확대할 수 있다"면서도 "선교율·비구니·재가자 등 민주적 선출 방식을 통한 교구종회의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평신도인 재가자의 조직이 자발성이 없거나 결속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냉담하고 열정이 없고 몇 분 스님들의 잔치로 인식하고 있다.

종교 최고 지도자의 후보 자격과 절차 가운데 조계종의 몇 가지 시선과 현재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새 교황님을 선출하는 비밀회의가 '개혁시계'를 돌리는 교훈의 결과물을 내고 세계인의 축제로 환영받길 기대한다. 조계종 선거 역시 선택은 여론과 투표가 가능한 스님들의 몫이다. 그러나 투표권이 없는 스님과 평신도의 역할도 소중하고,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몫을 한다.

조계종 선거제도 토론회 등에서 각종 의견을 내면서도 정작 후보의 '도덕성' 자격에서는 효율성과 안정성을 바라는 모습은 극복해야 할 자세이다. 종교 지도자의 후보 자격은 '부끄러움을 아는 도덕성'이 최우선 자격이고, 그 다음 자격순위와 절차가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길 바란다. 또 종교계 자성과 개혁의 과제는 내 가슴에 있고, 변화의 동력은 뜨거운 열정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존경받는 새로운 종교계 지도자를 기다리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손상훈씨는 소셜리서치앤멘토르 기획국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계종, #총무원장,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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