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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해마다 신년사에서 북한의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게 해준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결국에는 북한 인민들을 300만 명이나 굶겨 죽이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사망했다.

(…) 남한에서는 몇 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까지 일어났지만 북한사람들은 독일에서 이미 광우병 판정이 난 쇠고기를 장군님의 배려로 눈물을 흘리며 먹어야했고, 그것조차도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고 일부에 특권층들에게만 공급이 되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배급하겠다고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판정된 쇠고기를 구걸할 때 독일정부는 배급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요구했고 북한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에서 들어온 광우병 쇠고기는 시, 군을 거쳐 마을의 식료상점들에 배달되었고 식료상점을 통해 주민들에게 나눠주었지만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먹을 수 있었던 양은 소가 장화신고 건너갔다고 할 정도의 멀건 쇠고기국물 정도였다. 독일에서 들어온 쇠고기가 아래 단위까지 배달되는 과정에 중간에서 모두 착복을 했기 때문이다. - <북한식객>에서

유난히 읽는 맛이 좋아 단박에 읽어버리는 책들이 있다. 최근에 읽은 <북한식객>(웅진 리빙하우스 펴냄)도 그런 책 중 하나. 어느 일요일 새벽에 읽기 시작해 그날 오후가 시작될 무렵까지 놓지 못하고 마저 읽을 만큼 책 읽는 맛이 유독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만, 북한 사람들의 일상 그 속사정이 늘 궁금하다. 최대한 날것에 가까운, 어떤 이유나 목적때문에 선별되거나 걸러져 우리에게 전해질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것도 북한사회에서 나름의 특혜를 조금이라도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같은 일반인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북한식객> 겉표지
 <북한식객> 겉표지
ⓒ 웅진리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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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의 이런 호기심을 제법 많이 충족해준 책이다. 분단이 되기 전에 북한 지역에서 즐겨먹었거나 북한 주민들이 주로 먹는 음식들에 얽힌 사연 등을 이제까지 어떤 매체들을 통해서도 접한 바 없는 북한 사람들의 현실과 함께 들려주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 출신 여성 박사 1호가 들려주는 북한 관련 이야기들이라 모든 글이 재미있다. 그런데 특히 마음 기울여 읽은 글 중 하나는 고향이 이북(함경남도 원산)인 친정아버지가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라며 여름은 물론 한겨울에도 즐겨 잡수시곤 하는 함흥냉면 이야기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이유를 혹여 알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읽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히 함흥냉면이나 전주비빔밥, 마산아구찜 등처럼 음식 이름에 지명이 들어가 있으면, 그곳이 그 음식의 본고장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 가야만 그 음식을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거나, 원조, 즉 진짜 맛을 맛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자연스럽게 하기도 한다.

때문인지 같은 음식을 취급하는 음식점 중에 지역 이름이 들어간 간판이 걸린 음식점의 맛을 믿거나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특정 지명이 들어가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음식들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개성왕만두처럼 북한의 특정 지역명이 들어간 음식들로는 이런 것들을 기대해선 안 된다. 저자에 의하면 남한 어디에나 있고 남한 사람들이 즐겨먹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과 같은 냉면이 북한에는 아예 없고 개성에는 왕만두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함흥냉면집이 한 개밖에 없는데 서울에는 동네마다 골목마다 함흥냉면집이 있었다. (…) 또한 북한에서는 냉면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식당들에 걸려있는 메뉴판들에는 메밀국수, 비빔국수, 쟁반국수, 강냉이국수, 회국수, 농마(녹말)국수라고 되어있지 평양냉면, 함흥냉면이란 메뉴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한에서 그렇게 유명한 함흥냉면을 사실 북한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다. 남한에서 유행하는 북한 음식들 대부분은 실향민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많이 변형되어 있다. 굳이 원형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북한에서 함흥에 갔을 때 국수, 즉 냉면을 가장 잘하기로 소문난 신흥관에서 먹어본 국수는 감자전분으로 만든 따뜻한 국물의 국수였다. 회국수도 있었지만 남한처럼 그렇게 차게 먹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북한의 함흥에는 냉면이 없고 감자농마(녹말)국수가 있다. (…)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메밀냉면을 많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상은 메밀국수를 먹어 본 북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 <북한식객>에서

이처럼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메밀국수를 구경하지도 못하거니와 강냉이로 만든 국수를 김칫국물이나 된장국에 말아 먹기 때문이다. 그것도 식량과 물자들이 워낙 귀한 북한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사정으로 말이다.

북한에서 입쌀이라고 부르는 흰쌀을 배급받는 사람은 지위나 계급이 상당히 높은 극소수에 불과, 대부분의 주민들은 옥수수를 쌀처럼 분쇄한 강냉이쌀을 배급받는다. 그런데 이 쌀로 지은 강냉이밥은 쉽게 굳고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맛도 형편없다고 한다. 게다가 밥을 먹으려면 반찬도 있어야 하니 땔감도 필요하다.

사정이 이런지라 부족한 물자들을 절약할 수도 있고 동시에 국물까지 많이 먹을 수 있어 적은 양으로도 배고픔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했고 북한 주민들의 대표 음식이 되어 버린 것. 북한의 주민들은 배급을 받으면 일부를 일단 국수로 만들어 눌러서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물에 불린 후 끓는 물에 데쳐 먹는다고 한다.

북한에는 간부들의 횡령에 대한 기막힌 유행어들이 있다. 군대에서는 '군단은 군데군데 떼어먹고, 사단은 살금살금 떼어먹고, 대대는 대대적으로, 중대는 중간중간, 소대는 소곰소곰(조금씩) 떼어 먹는다'는 웃지 못 할 우스갯소리이다. 사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당 간부는 당당하게, 행정 간부는 행패질하며, 안전원(경찰)은 안전하게, 보위원(남한의 국정원 직원에 해당하는 공무원)은 보이지 않게,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교원은 교활하게, 사무원은 살살, 규찰대는 규정대로 떼어 먹는다'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다.

북쪽에서는 이런 라면을 꼬부랑국수라고 부르는데, 정말 인기가 많다. 남쪽에서 라면을 뇌물로 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북쪽에서는 꼬부랑국수가 평양사람들만 구경할 수 있는 특별음식인지라 뇌물이 되기도 한다. 양념스프가 들어있는 남한의 라면은 상당히 고급뇌물로 취급된다. - <북한식객>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분단 70년에 이르는 동안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식량배급제로 '우리 민족이 5천년 동안 이루어 놓은 전통음식들을 사장시키고 전국의 식단을 옥수수밥으로 단일화해 한민족의 음식문화를 말살'해버렸기 때문에 아예 사라지기 전에 풍요로웠던 북한 지역의 음식들을 연구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먼저 탈북해 혜택을 입은 사람으로서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명 때문이다. 분단 70년 세월로 인한 남·북한 간의 이질감이나 소통의 어려움, 가치관의 차이 등, 통일 과정에서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를 수행하는데 밥상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지라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 우리의 진전 없는 통일정책이나 북한 연구의 문제점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저자 '이애란'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신성분이 문제가 되어 열 살 때 가족 모두 평양에서 추방,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인 양강도(함경도) 삼수군 관동리에서 8년을 살았다고 한다. 다른 농사가 전혀 되지 않고 감자 농사만 지을 수 있어서 오직 감자로 만든 음식만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감자를 쪄서 부스러뜨리면 밥이 되고 감자를 썰어서 소금을 넣고 끓이면 반찬이 되고 무언가 먹고 싶어 칭얼대는 아이에게 찐 감자 하나를 들려주면 간식이 되는 그런.

저자가 탈북을 한 것은 15년 전, 탈북 전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한 후 북한 국가 과학기술위원회 식품품질감독원으로 13년간을 근무했다.

탈북 후 남한에서 호텔 청소와 보험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음식점을 운영하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음식관련 공부를 다시 시작,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인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로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대표이기도 한 저자는 현재 다양한 활동과 강의 등을 통해 북한음식연구와 북한음식을 알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2010년 미 국무부가 수여한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비롯해 고운(皐雲)문화상(선행자) 등 굵직한 상만 10여건을 수상한 저자는 이런 이력들과 활동으로 '탈북여성 국내 박사 1호', '용기 있는 국제 여성'으로 불린다. 그리고 탈북인 중 가장 성공한 인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책 내용과 저자 프로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누리집을 참고로 정리/김현자)
이 책은 모두 5장. 15년 전에 탈북한 저자가 탈북 당시 우리의 음식 문화에 충격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북한의 실정과 음식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제1장 '북한 사람, 남한 음식에 놀라다'를 시작으로 권력의 도구가 되어버린 북한의 음식 문화와 북한 주민의 일상 음식들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준다.

제4장 '북한 주민의 일상이 담긴 음식'과 제5장 '통일만 되면 대박! 북한 지역별 별미음식' 편에서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북한의 실상을 들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만드는 법까지 일일이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도 한 번 만들어 보리라 레시피까지 꼼꼼하게 읽은 것은 감자맛갈이국수와 명태두부지지개, 양배추절임, 감자막갈이만두, 무청찜, 참나물김치 등.

이중 대표적인 함경도 음식인 참나물김치와 함경도 지방의 특산음식이라는 감자막갈이만두는 미루지 말고 내일이라도 재료를 갖춰 꼭 만들어 보고 싶은 그런 음식이다. 그래야 실향민으로 돌아오는 봄에 84번째 생신을 맞는, 북한 원산(함경남도)이 고향인 친정아버지께 꼭 대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부초밥과 비슷하지만 우리처럼 조미된 유부를 쓰지 않고, 두부를 얇게 저며 소금을 뿌려두었다가 노릇노릇하게 지진 후 그 사이를 벌려 밥을 채워 넣는 두부밥은 조만간 꼭 만들어 보려는 북한의 대표 길거리 음식. <북한식객>은 북한의 진짜 속사정이 궁금한 사람들은 물론 북한 지역에 존재했던 우리의 전통음식이나 통일 후 음식으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 등 북한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북한식객>- 통일을 꿈꾸는 밥상ㅣ이애란 (지은이) | 웅진리빙하우스 | 2012-12-14 ㅣ정가 :14,000원



북한식객 - 통일을 꿈꾸는 밥상

이애란 지음, 웅진리빙하우스(2012)


태그:#북한음식, #이애란, #함흥냉면, #두부밥,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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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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