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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곡식> 겉표지
 <토종 곡식> 겉표지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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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귀한 생강 한 봉지를 얻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은근 기다려지곤 하는 터라 올해도 변함없이 받을 수 있음이 다행스러운 한편 여간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내가 친정의 생강을 이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이유는 겨울이면 꼭 한두 차례 찾아들어 호된 고생을 하기 일쑤인 감기몸살에 친정의 생강이 그 어떤 약보다 잘 듣기 때문이다.

이는 친정의 생강이 우리의 토종이기 때문이다. 종자 값이 턱없이 비싼데다가 개량종에 비해 씨알이 비교적 작아 토종 생강임을 알고 제값을 쳐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종자 값도 챙기기 어려운, 그래서 이제는 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그런 토종 생강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유래한 말인, 우리 땅에서 자란 먹을거리가 우리 체질에 맞을 확률이 높다는 뜻의 '신토불이'란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신토불이의 가치를 친정 부모님의 토종생강이 해마다 입증해주곤 하는 것이다.

"신토불이? 뜻대로 해석하면, 건강하게 살려면 해외여행 가면서 먹을 것 바리바리 싸들고 가거나, 외국에서 살아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만 먹어야 한다는 말과 같잖아. 그런데 외국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잘 살잖아. 외국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사는데도 말이야. 이런 걸 보면 신토불이는 그냥 우리 것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에서 만들어낸, 수입 농산물에 밀려나는 우리 농산물을 많이 먹자는 의미로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한 것 같아.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는 글로벌 시대에 비효율적인 가치관이랄까?"

때문에 우리 땅에서 심어 거둔 우리 농작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내게 가끔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외국에서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보면 어쩌면 그들의 말처럼 신토불이는 공연한 고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되는 먹을거리들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곡물수입률 '세계 5위'... 우리 국민 건강이 남의 손에

미국은 자기들이 먹는 것은 무척 까다롭게 따지면서 자국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확할 때만 농약을 뿌리는데 미국은 수확 후에도 농약처리를 하는 것이 법으로 인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할 때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고 일단 선적한 후에는 "내가 알 게 뭐냐?"는 배짱입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까지는 선박으로 40일 정도 걸리는데 어쩔 수 없이 적도 부근을 지나오게 됩니다. 적도를 지날 때 선실온도가 60℃ 정도로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벌레 먹고 썩고 싹이 나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청산이나 메틸 브로마이드로 훈증을 합니다. 실제로 89년 인천항에 들어온 밀을 하역하던 인부 한 사람은 즉사하고 네 사람은 졸도해버린 사고가 있었습니다. - <토종곡식>에서

곡물이든 과일이든 이처럼 생산지를 떠나 우리나라로 오는 동안 해충으로부터의 피해를 막고자 살충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곡물수입률은 세계 5위다. 이는 단순한 5위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이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말과 같은 만큼 위험천만한 5위인 것이다.

우리의 곡물수입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우리의 곡물자급률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2012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1년 현재 식량 자급률(쌀·보리·콩 등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량 중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율)은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4.5%이며, 곡물자급률(식량자급률에 사료용 곡물 등을 더한 것)은 22.6%이다. 2010년의 54.0%, 26.7%에 비해 10%나 감소한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말이다.

극심한 굶주림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2009년 현재 식량자급률이 76.1%이란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충격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식량자급률이 낮아지는 것보다 더욱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것은 우리 토종 곡식들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우리의 토종곡식들이 많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종묘회사들의 개량 씨앗들이다. IMF 때 외국의 자본에 팔리고 만 종묘회사들의.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이젠 더 이상 그해 수확한 것의 일부(씨앗)를 보관했다가 이듬해 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이젠 우리의 농부들은 해마다 (금보다) 비싼 종자 값을 치르며 농사를 짓고 있다. 종묘회사들이 개량한 씨앗은 한해 수확으로 그치고 마는 품종들이기 때문에 씨앗을 받아 뿌려봤자 싹이 나오지 않거나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금보다 비싼 씨앗... "종자 값이 왜 이리 비싸만 지는지"

친정의 참깨꽃(2010.7) 우리의 토종 씨앗들이 많이 사라지고 말았다. 개량종일망정 우리나라에서 가꿔 수확한 국산 곡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감사해 할만큼 우리의 식량주권은 낮기만 하다. 아프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친정의 참깨꽃(2010.7) 우리의 토종 씨앗들이 많이 사라지고 말았다. 개량종일망정 우리나라에서 가꿔 수확한 국산 곡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감사해 할만큼 우리의 식량주권은 낮기만 하다. 아프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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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와 참깨를 비롯하여 생강과 콩 몇 가지를 가족들이 먹는 것에 약간의 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양을 농사짓는 우리 부모님도 그중 하나. 생강과 참깨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심었던 4~5년 전만 해도 해마다 백만 원이 넘는 종자 값을 치르시곤 했다. 씨앗이 아닌 먹는 부위 일부를 잘라 심는 생강 종자가 보관과 유통 등의 이유로 비싸기 때문이다.

"요즘 죄다 사서 심지, 너그들 어렸을 때처럼 종자 받아 심는 것이 어디 있드나. 엄마도 검정콩만 토종이고 모두 사다 심잖니. 작년 재작년만 해도 100개씩 묶어 5~6천 원 하던 고구마 모종이 올해는 만 원, 만천 원 안 하드나. 모종하고 종자 값이 왜 이리 비싸만 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검정콩이 토종이라 알이 작지만 그래도 개량종보다 훨씬 달고 고소하다. 그런데 올해는 하얀 콩이 부쩍 많이 섞인 것이 이젠 나도 씨앗을 갈아야 하나 싶다."

"토종 씨앗들이 많이 사라져 이젠 심고 싶어도 심을 수 없기 때문에 종묘회사들이 비싸게 씨앗이나 모종을 파는 거예요. 아쉬우니 비싼 돈이라도 주고 사서 심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이용하는 거지요. 파프리카 씨앗은 금보다 비싸다던데요. 그런데 엄마, 그 토종 검정콩 버리면 이젠 다른 것들처럼 해마다 사서 심어야 할 거예요." 

평생 농부로 살아오신 친정 부모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추나 파, 가지, 호박, 옥수수 등의 씨앗은 받아 뿌리곤 했다. 하지만 이젠 검은콩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농작물 그 씨앗을 사다 심는다고 한다. 대체 요즘 종묘상회에 지불하는 종자 값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 전화를 드렸더니 이처럼 말씀하신다.

이런 엄마께 종자 값이 턱없이 비싼 이유를 이처럼 간략하게 설명해 드렸다. 마음속으로 농사 지어 나눠주시지 않아도 좋으니 토종 검정콩 씨앗을 제발 포기하시지 말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서 말이다.

아직은 살아 있어서 천만다행인 '토종 씨앗'에 대한 기록

토종 곡식이 사라지고 있다. 대대손손 농사일을 이어오며 부모가 기르던 곡식 씨앗을 받아 기르던 농민이 줄어들면서 그 씨앗도 사라져 버렸다. 씨앗의 소멸은 또 다른 소멸을 부른다. 씨앗이 없으면 다양한 작물을 기를 때 사용하던 농기구, 농사 방법 등이 사라지고, 그 곡식으로 해먹었던 요리마저 없어진다. 우리네 고유한 '농경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토종 씨앗 대신 종자 씨앗이 온 땅을 차지하며 농부는 '농부권'을 잃는다. 우리는 토종 곡식 대신 수입농산물을 먹으며 건강을 잃는다. 우리 몸과 우리 땅을 남의 것으로 채운 결과다. - <토종 곡식>에서

<토종 곡식>(들녘 펴냄)은 '모양이 크고 병충해에 강해 많이 수확할 수 있다' 등과 같은 이유로 개량종을 많이 심으며 어느덧 거의 사라져버리고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금이라도 살아 있어서 천만다행인 우리의 토종 씨앗에 대한 기록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기도 한 저자들(백승우·김석기)이 돈으로 거의 모든 것들이 평가되고 수입농산물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우직하게 우리의 토종 씨앗들을 뿌리고 가꿔 수확을 하는 농부들을 찾아가 묻고 답한 것을 토대로 살을 붙인 것. 토종 씨앗의 세계와 농사 이야기를 비롯하여 토종 곡식들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 등 토종 씨앗의 현실과 미래를 다뤘다.

토종 씨앗들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그래서 농부들이 비싼 종자 값을 치르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은 얼핏 내 부모님이나 농부들만의 안타까운 현실로만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 실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현실이다. '우리가 우리 몸을 위해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이 책과 취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반갑게도 요즘 도시 한 귀퉁이의 좁은 땅을 이용해 가족들이 먹을 것을 조금씩 가꾸는 사람들 사이에 토종 씨앗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불고 있다고 한다. 귀농인구도 몇 년 새 많이 는 것으로 안다. 이런 그들에게 이 책이 제대로 활용되어 우리의 토종 씨앗들이 우리 땅에서 무성하게 싹을 틔우고 많은 꽃을 피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토종 곡식(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32)>ㅣ백승우ㆍ김석기 | 들녘 펴냄ㅣ값:12,000원



토종 곡식 - 씨앗에 깃든 우리의 미래

백승우.김석기 지음, 들녘(2012)


태그:#토종 씨앗, #신토불이, #토종 곡식, #식량자급률, #곡물자급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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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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