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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 책표지 책은 도끼다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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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1904.1. 카프카,'저자의 말',<변신> 중에서)

<책은 도끼다>는 광고장이 박웅현의 '인문학 강독회'다.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읽고 받은 감동을 담은 것이다. 저자에게 '도끼'로 와 닿았던 책들은 내게도 도끼처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새로운 발견, 더 나아가서 온몸의 세포들과 감성이 일제히 깨우쳐지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메모해 뒀다가 여러 권이나 사서 읽기까지 했으니 역시 그는 광고장이다. 그가 소개하는 책 속의 책들은 그에게 '도끼'가 되었던 책들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 깨지는 소리를.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얼음이 깨진 곳에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촉수가 예민해진 것이다...(중략)...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경기 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1년 2월 12일부터 6월 25일까지 강독회를 진행하게 됐고, 학생들과 삼주마다 한 번씩 토요일에 만났다.

냉정한 겨울에서 찬란한 봄을 거쳐 맹렬한 초여름까지, 나의 도끼였던 책들을 독자 제현(諸賢)에게 팔아보고자 하는 의도, 결국 나는 광고인이니까.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책장을 열었던 나는 맨 먼저 가슴에 와 닿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매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는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14쪽)

나는 작년만 해도 100여 권 책을 읽었지만, 과연 그 책들이 내 속에서 오롯이 체화되고 용해되어 내 것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포도뿐만 아니라 포도의 씨까지도 씹어 먹는 그런 독서, '내가 뼈다귀를 핥아 먹듯이 그렇게 읽었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면 자신이 없다.

언제나 책이 고팠던 나는 그 책들을 빨리 빨리 읽고 싶어서 언제나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읽었고 우적우적 씹어 삼키기에 바빴다. 책을 읽는 그 순간에야 뜨거웠는지 속속들이 다 발라먹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내게 얼마나 남았는지, 책에서 책으로 급히 옮겨가는 데만 신경 쓰느라 바쁘진 않았는지 등을 문득 깨닫게 했다. 그래서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글에 약간의 찔림과 함께 더 마음에 쏘옥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 '도끼'였던 책은 전염성이 있다. 저자에게 도끼였던 그 좋은 책들을 그의 독법과 함께 소개한다. 또 책 속에서 그가 감동한 문장들은 뜨끈뜨끈하고 확 깬다. 가슴에 불을 지피고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내 안에 얼어붙어 있던 강을, 그 얼음을 깨는 도끼가 되었다. 흐릿흐릿하던 감수성을, 촉수들을 낱낱이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온몸과 감성의 촉수가 생생하게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카프카의 말대로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책이 아닌가.

저자가 서두에서 카프카의 말을 인용했던 것처럼 책 속에 책, 즉 다시 말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은 저자에게 있어 얼어붙어 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였던 것들이다. 또 저자가 공감하고 또 도끼였던 것들을 뜨겁게 전달하기에 가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더러 다시 만났다. 과연, 그때 그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읽긴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처음 읽는 듯이 새롭게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 놀라웠고, 또한 잘 몰랐던 책들도 소개받았다. 또한 그 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역시 광고인이다. 책을 얼마나 맛나게 소개하는지 당장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혹'하게 한다. 물론 좋은 책들이다. 역시 고전이다. 마땅히 읽을 게 없을 때, 또 다시 읽고 싶을 때 오랜 세월 풍화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책들, 그런 책들이 역시 오래 남고 감동 또한 길다. 다시 읽을 책들과 새로 읽을 책들을 꼼꼼히 메모했다. (그리고 샀다) 역시 책은 힘이 세다. 책은 도끼다.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된 많은 책은 제1장부터 8장까지 구성되었다. 또 광고인 박웅현의 깊이 들여다보며 읽기, 독법으로 발견해 낸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는 책들을 소개했다. 책은 역시 광고인답게 잘 꾸몄다.

이따금 눈을 시원하게 만드는 이미지로 환기를 시켜주었고, 강의마다 겉장엔 핵심문구를 적어 놓고 있다. 그 장에서 소개할 책 목록 또한 아랫단 여백에 깨알처럼 친절하게 적고 있어 일목요연해 보인다. 책 내용뿐 아니라 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디자인과 공간 할애 이미지 등등에까지 꼼꼼히 신경 쓴 것이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덮어놓고, 시인 고은의 시는 딱딱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고 그의 시집 <순간의 꽃>에 실린 시어들을 저자의 소개로 읽으면서 그 짧은 시어들이 마음에 와서 꽂혔다. 김훈의 문장이 탄탄하고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건성건성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치기 어린 마음으로 읽었던 것을 알았다.

판화가 이철수의 글에 반하고 김훈의 글에 다시 반하고, 시인 고은의 '순간의 꽃'에 반하였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좋은 책들을 다시 읽고 싶었다. 다독도 중요하지만 좀 더 깊이 읽는 책 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속의 좋은 글 몇 개를 소개한다.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 된 놈! 덜 떨어진 놈!' (판화가 이철수)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순간의 꽃'중/고은)

"어쩌란 말이냐
복사꽃잎
빈집에 하루 내내 날아든다" ( '순간의 꽃' 중/ 고은)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

이 책을 통해 얼어붙은 바다의 얼음을 깨뜨리는 도끼 같은 책들을 접하였고, 나른하게 침체해 있던 나의 바다, 아니 얼어붙어 있던 감수성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역시 좋은 책은 도끼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책 속의 책들, 여러분들에게 '도끼'가 되는 책들을 통해 '온 몸이 촉수가 되시길. 저자의 말대로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나도 그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은이)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책은 도끼다 (양장 특별판)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2011)


태그:#책은 도끼다, #박웅현,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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