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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 이후로 인디계의 서태지로 급부상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가 22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MC 이경규, 김제동, 한혜진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언제나 뜨는 음악을 하고 싶지만 보장은 못해요. 만에 하나 안 되더라도 귀여워해 주세요."

'만에 하나 안 되더라도'. 현재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의 DJ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큰소리치는 듯하면서도 결코 확신하는 법이 없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도 말꼬리에 "에이 뭐,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뭐…" 등의 여운을 남기는 식이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 장기하 힐링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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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만에 하나의 '미래'에 대비하는 현실주의자

'서울대 엄친아'로 알려진 장기하는 "학벌 상관 말고 자신의 재능을 펼쳐라…"고 말문을 열고는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다"며 반전화법으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며 학벌 중심의 한국사회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히 서울대 타이틀로 과대평가되고 있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거품을 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고교시절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대학 진학 후 밴드활동을 할 수 있지 않냐'는 부모님의 설득이 '맞는 말 같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그에게 친구들은 '그럼 졸업장은 필요 없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그는 '서울대 졸업장은 탐이 나' 졸업할 수 있을 만큼만 공부했다. 또 음악 말고 앞으로 살면서 돈 버는 데 필요한 것은 영어밖에 없는 것 같아 영어공부만은 열심히 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돈 걱정 없이 자란 그에게도 불안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냐"며 툭 내뱉는 장난스런 한 마디에 그의 현실주의적 면모가 돋보인다. 낙관하지 않는 신중함이 지금의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가 있게 하지 않았을까?

위기도 기회로,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

학부시절, 무작정 춤을 잘 추는 후배 두 명과 밴드 '아무래'를 결성했으나, 밴드 이름만큼이나 암울하게도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장기하 특유의 독특한 발상으로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연을 보러 오는 학생들에게 100원씩을 주며 관객을 유치했다. 이 공연에서 '눈뜨고 코베인' 멤버로 영입됐다.

이후 2년 동안 매주 홍대에서 공연했지만 안타깝게도 군에 입대해야 했다. '눈뜨고 코베인' 활동 중 자작곡을 쓰기도 했는데, 군 생활 중 '내가 만든 노래는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메인보컬이 되어 활동할 것을 계획, 제대 후 드디어 '장기하와 얼굴들'이 탄생했다. 밴드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장기하의 욕망', '장기하와 감자탕', '장기하들' 등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친구들과 작은 레코드사를 설립하여 소자본으로 수공업 소형 음반을 제작했다. 이후 록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또 그를 통해 방송 PD의 눈에 띄어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며 대중들로부터 열광적 반응을 얻어냈다.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모든 직원들이 주말마다 CD를 구워대는 것이 불가능해 '싸구려 커피'는 1만2000장을 팔고 절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눈뜨고 코베인' 드러머 시절, 하루 8시간의 고된 연습으로 국소이긴장증이 발병, 왼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어져 많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러한 시련들이 결코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눈뜨고 코베인' 시절 군 입대로 인해 지금의 '장기하와 얼굴들' 결성을 결심할 수 있었고, 왼손의 병으로 인해 기타를 놓고 무대에서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구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인생지사 새옹지마.

힐링캠프에 출연한 '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 장기하 힐링캠프에 출연한 '장기하의 얼굴들' 리더 장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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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고현정, 한혜진 보기를 돌같이? 솔직, 털털, 그리고 애교

장기하는 얼떨결에 이효리와 고현정, MC한혜진을 거부한(?) 나쁜남자가 된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효리와의 술자리에서 당시 여자친구에게 미안해 이효리에게 "그럼 걸어가시고, 저는 택시 타고 가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나, 인터뷰어로 나온 고현정이 "나에게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는 말에는 "없는데요"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MC 한혜진의 "저는 어때요?"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제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평소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이 없는 MC 한혜진은 "분명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장기하의 연애담을 추궁했지만 장기하는 이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장기하는 "여자친구에게는 애교가 많다", "라디오 PD와 작가들도 내가 귀여워 죽는다"며 애교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상형은 '카리스마가 있고 멋지다고 느낄 수 있는 여자'.

'메이저가 되고 싶어' 음악에 대한 자신감

힐링캠프의 특징, MC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힐링캠프에 왜 나왔냐"는 MC들의 공격(?)에 장기하는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현재 인디밴드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 메이저와 마이너의 중간단계라며, 방송 내내 메이저 가수가 되고 싶은 소망을 드러냈다.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하고 대중 인기는 상관없다…는 건 우리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며 또다시 반전화법으로 웃음을 주며, '장기하와 얼굴들'은 '대중음악'을 하며 '대중', 즉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한 '자신들의 음악이 인기 아이돌 정도의 인기를 얻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보였다. "나는 내 음악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태도에 거리낌이 없다.

음악으로 사회의식 표현? 그런 것 없어

'장기하와 얼굴들'이 메이저가 되는 데 음악이 무거운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MC들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싸구려 커피'는 실제 88만원 세대 젊은이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가사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기하는 "그런 것 없다"며 자신에 대한 대중의 오해(?)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사실 자취생활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서울 토박이. 심지어 이래도 될까 할 정도로 신문을 보지 않는 사회학도로서 '88만원 세대'라는 용어조차 음반발매 후 알았다고. 하지만 '싸구려 커피'는 군대에서 취업을 고민하며 만든 노래이니 대강 비슷할 수도 있겠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불안에 빠지기보다는 언제나 지금 재밌는 것을 한다고.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쌓여 몇 년 뒤가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장기하는 미래에 대비하는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사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솔직한 성격만큼이나 솔직한 그의 음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의 재치에 더해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바로 그 '솔직함'과 '단순함'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의도하지 않아도 사회 현실을 반영하여 보는 이들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대중들에게 언제나 새롭고 창의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물하는 '장기하와 얼굴들'. 앞으로도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팬층으로부터 사랑받는 밴드가 되길 응원한다.


태그:#힐링캠프, #장기하, #장기하와얼굴들, #인디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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