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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곳곳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들. 전날 저녁 깨끗이 치웠는데, 채 하루도 안 돼 수북이 쌓일 만큼 아이들 흡연 문제는 심각하다.
 교정 곳곳에 널브러진 담배꽁초들. 전날 저녁 깨끗이 치웠는데, 채 하루도 안 돼 수북이 쌓일 만큼 아이들 흡연 문제는 심각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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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 시간 교정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담배꽁초를 깨끗이 치웠는데,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수북이 쌓여있다. 담배 깨나 피운 아이라면 CCTV의 사각지대쯤은 귀신 같이 찾아낸다.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할 수 없는 노릇이고, 언제까지 담배꽁초를 주워 담아야 하나 싶다.

매일 점심시간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만 되면 아이들과 한판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숨어 담배 피우는 '아지트'를 이내 찾아내지만, 그들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담배꽁초 치우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매번 한 템포가 늦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수업을 팽개친 채 잠복할 수도 없고, 배움터 지킴이 한 분에게 종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행범'을 적발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다. 교칙에 따라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흡연 사실을 알리고, 아이가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고작이다. 수차례 적발되면 선도위원회에 회부하여 봉사활동을 시키거나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일정 기간 금연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그마저도 효과는 신통치 않다.

10살부터 담배 피운 아이도 있어... 학교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요즘 아이들, 벌의 의미로 아무리 '섬뜩한' 금연 동영상을 시청하게 해도 하품하기 일쑤다. 폐가 썩어가고 목에 파이프를 꽂은 채 연명하는 영상 속 폐암 환자의 모습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일 뿐이다. 호기심에 금연침도 맞아보고, 니코틴 보조제도 써봤다는 한 아이는 돈만 아까웠다며 혀를 끌끌 찼다.

벌로 종일 계단과 복도를 쓸게 하면 되레 힘들고 지쳐 담배 생각이 더 난다고 말하고, 호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남은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다음 날이면 어디서 구했는지 그대로 들어 있다. 교내 '우범지역'을 단속해 봐야 새로운 곳을 개척해 피우고, 빼앗아봐야 화수분처럼 담배를 공급 받는, 이른바 '풍선 효과'를 절감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예전에는 주로 입시를 앞둔 스트레스 때문인지 고3 수험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당최 학년 구분이 없다. 흡연자 수도 별 차이가 없고, 흡연 기간 또한 어금버금하다. 대개는 중학교 때 처음 피웠다는데, 이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다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골초'다. 기존의 단속과 처벌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자녀가 담배를 피우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두 손 두 발 다 든 학부모도 적지 않다. 아이의 흡연 사실을 적발해 학부모에게 알리는 건 그 자체로 처벌의 의미인데, 이미 알고 있다고 하거나 집에서는 못하니 학교가 끊게 해달라고 되레 다그치고, 심지어는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도리가 아닌 걸 알지만, 담배를 마음껏 필 수 있도록 해주면 사고 치지 않고 학교 잘 다니겠다는 조건을 걸어 부모가 직접 담배를 사다 준다는 이들마저 있었다. 전문계와 인문계 가리지 않고 고등학교 교정이 시나브로 담배연기로 자욱하고,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담배란 어느새 기성세대에게 그러하듯 '기호품'이 돼 버렸다.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일벌백계 운운했지만, 지금은 그런 목소리를 듣기 어렵게 됐다. 단속과 체벌 위주의 금연 생활지도는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흡연이 학교가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해졌다.

결국 그저 '학교 내에서만' 피우지 마라는 식으로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거칠게 말해서, 흡연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절대금연구역인 학교 등 공공시설 내에서는 피우지 말고, 다른 곳에서 피우더라도 담배꽁초 처리는 확실히 할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간접흡연의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매너를 지켜달라는 식의 당부가 학교 내 금연교육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세상이 변했다거나 현실이 그렇다는 이유로 여태껏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온갖 방안을 강구해봤으나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교내에서 흡연 학생을 적발하면 경찰의 협조를 얻어 그 보호자에게 경범죄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과 벌로 종합병원 폐암병동에서 봉사활동을 의무화하는 것 등 별의별 방안을 다 고민했다.

그러나 보호자가 직접 담배를 피웠다면 모를까 미성년자인 자녀의 흡연에 경범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고, 병원에서의 봉사활동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인데다 아이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다며 한사코 꺼려했다. 그러면서 '왜 학교가 해야 할 일을 다른 기관에 떠맡기느냐'는 핀잔마저 들어야 했다.

청소년이 일하는 편의점 등에서 담배 판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널브러진 담배꽁초 사이에 버려진 물건이다. A4 용지를 돌돌 말아 V자 모양으로 접은 것인데, 아이들에게 물으니 모르는 경우는 없었다. 알고 보니 이런 용도였다! 담배를 쥔 손에서 나는 냄새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개발한(?) 도구. 단속을 피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널브러진 담배꽁초 사이에 버려진 물건이다. A4 용지를 돌돌 말아 V자 모양으로 접은 것인데, 아이들에게 물으니 모르는 경우는 없었다. 알고 보니 이런 용도였다! 담배를 쥔 손에서 나는 냄새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개발한(?) 도구. 단속을 피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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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금연 생활지도의 한계를 절감하는 지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학부모도 손 놓고, 지역사회도 나 몰라라 하는 가운데 담배 피우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뭇 어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근본적인 원인을 따진답시고 연령별 아이들의 흡연 동기와 추세를 조사하고 분석한 자료를 요구하는 건 생뚱맞다.

일단 아이들이 담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일이 급선무인 까닭이다. 하여 아이들이 어디서 담배를 구하는지 역으로 추적해보기로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캐가다 보면 아이들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낼 수도 있을 거라 여겼다. 경찰도 아닌 한낱 교사로서 섣부른 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떻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일단 담배 피우다 걸린 한 아이를 추궁했다.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하면서 어디서 구했는지 캐물었다. 그렇게 답하면 더 이상 묻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는지, 다짜고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건네받았다며 잡아뗐다. 그 친구의 연락처를 요구했으나 모른다고 했고, 출신 학교에 전화해 연락처를 알아내겠다고 하자 끝내 실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이 담배를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자주 찾는데, 예전에는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까다로웠지만 요즘엔 많이 느슨해졌다고 했다. 편의점 대부분이 또래의 아르바이트 학생을 쓰기 때문에 교복 차림이 아니라면 신분증을 검사하는 곳은 없다시피 하다고 귀띔해 주었다.

또, 어느 시간에 어느 곳이 허술한지 따위의 정보를 담배 피우는 아이들끼리 공유하기 때문에 차라리 살 돈이 문제지 담배 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몇몇 피시방과 공원 등 피우는 곳이 대충 정해져 있는 것처럼, 예전 까다로웠을 때조차 아이들의 '단골' 담뱃가게는 따로 있었다며 몇몇 곳을 지목했다.

내친 김에 그가 귀띔해 준 가게를 찾았다. 피우지는 않지만, 담배를 한 갑 사봤다. 계산대에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라는 글귀는 붙어 있었지만, 물론 신분증 제시 요구는 없었다. 그 사이 기껏해야 대학 새내기 정도 돼 보이는 몇몇 젊은이들도 담배를 사갔지만, 그 누구에게도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인데 왜 확인을 하지 않는지를 따지듯 물었지만, '남의 일에 왜 참견이냐'며 되레 면박을 당했다.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슬그머니 잘못을 시인하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개 손님이 계산대에 줄을 서 기다리는 바쁜 틈에 사가기 때문에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핑계처럼 들렸다. 그 점원조차 알고 보니 인근 고등학교 재학생이었다. 방과 후 네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데 그 역시 담배를 피우는 친구였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그의 선배나 친구가 담배를 사러 온다면 거절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가 여기저기 담배를 대주는 '공급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금연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는 없다. 지속적으로 단속해 엄히 처벌하고, 외부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보건실에서도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흡연 학생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되레 늘고 있는 듯하다. 거듭 강조하건대, 학교에만 떠넘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금연교육이야말로 그렇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아이들을 담배라는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등 그들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학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 채, 한쪽에서는 아이들에게 버젓이 담배를 팔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태그:#청소년 흡연, #금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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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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