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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대개 성인 여성들은 이 네 글자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 가는 곳임에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곳임에도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성인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가 넘는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한마디로 "가기 싫은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산부인과 이렇게 바꾸자'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산부인과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담은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미혼여성의 산부인과 검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 '미혼여성도 당당하게 산부인과에서 검진받자' 류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산부인과는 더 이상 기혼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임신·출산의 목적 외에 산부인과를 방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방문시기를 미루고 싶은 곳 또한 산부인과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에서는 산부인과 진료경험이 있는 1000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용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98명이 '임신여부 확인'이라 답했다. 산전검사(30명), 임신중절(16명), 난임, 불임치료(11명), 피임약 처방(11명), 유산(7명) 등 임신여부 확인과 관련성이 높은 다양한 답변들도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이유로 나타났다.

방문 필요성을 몸소 느끼고 있음에도 여성들은 왜 미루고 미루다 임신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 돼서야 산부인과를 찾게 되는 것일까? 이는 여성들이 처한 사회문화적인 환경과 예상치 못한 진료문화 때문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기혼 여성=출산, 비혼 여성=중절'라는 확인되지 않은 등식은 더욱 산부인과에 대한 거리감을 키운다.

성 경험 있으면 무조건 기혼?... "죄 짓고 가는 듯한 느낌"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산부인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산부인과>.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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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산모가 아닌 존재-비혼 여성'들의 산부인과 진료경험을 살펴보자. 이들은 약간 거칠게 나눠 볼 때, 나이가 '어리지만' 성 경험이 있는 여성과, '많지만' 성 경험이 없는 여성, 성 경험은 '있지만' 동성간의 성경험이 있는 여성이다.

한국은 이성간의 결혼만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다. 그렇기에 "결혼 안했으니 당연히 성경험은 없을 테고요"라는 말을 듣거나 "성경험이 있다고 하니 묻지 않고 차트에 기혼으로 표시"하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혼전 성관계가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최종목적지가 결혼이 아니라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혼 여성들은 산부인과를 찾을 때 "죄짓고(섹스를 했다는 거 자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또한 예방차원에서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러 가도 "남자랑 섹스 많이 해서 그러냐"는 질문을 받거나, 질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병원에 갔는데 "별 문제없고, 처녀막은 괜찮다!"는 등의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비혼 여성이 산부인과를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것들 중에는 여성건강 특히나 재생산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둔 것들이 많다. 피임약 재분류 논쟁도 그랬고, 낙태처벌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도 그랬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이다.

(비혼)여성들의 섹스, 피임, 임신중절은 다양한 맥락으로 뒤엉켜있으며, 분절하여 사고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산부인과다.

사회는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여성들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혼 여성들이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기 위한 노력 없이 여성들에게 산부인과 진료를 권장하기만 하는 것으로 상황은 달라지지는 않는다.

또한 산부인과 진료문화만을 탓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산부인과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접근성이 확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으로 '산모가 아닌 존재-10대, 비혼, 성소수자'로 여겨지는 여성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산부인과가 무엇인지 고민되어야 하며, 만들어져야 한다.

민우회는 이를 위해 실제 산부인과 진료문화 안에서 수정 보완되어야 하는 것들(사전 문진표 작성 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안하기 위해 생생한 여성들의 의견과 여성건강전문가들의 조언을 모아 소책자를 발간·배포할 예정이다.

피임약 처방전 한 장만 주고... 설명도 없이

다양한 피임기구
 다양한 피임기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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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피임약재분류(안)에 대한 최종결정을 발표했다. 6월부터 있어왔던 피임약재분류 논쟁은 허무하지만 최악은 면한 '현행유지'와 '3년의 보류기간'이란 결론으로 끝났다.

이는 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과 의료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3년간은 이전처럼 약국에서 사전경구피임약을, 병원을 찾아야만 응급피임약을 구매할 수 있다. 여성들은 그간 생리일조절, 여드름치료, 호르몬 조절,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 사전피임약을, 피임을 할 수 없던 상황이나 실패한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을 복용해 왔고, 이를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번 논의 과정은 여성들에게 큰 혼란을 줬다. 동시에 그간 산부인과 등 병원을 방문하여 피임약을 처방받거나 약국에서 구매해왔던 피임경험을 쏟아낼 수 있게 했다. SNS는 경험의 공유의 장으로 활용됐고, 온라인 성명을 받는 등의 형태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몸에 안전한 피임약을 처방 받으려고 해도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처방전 종이 한 장에 15000원"을 받거나 "미레나나 루프도 좋으니까 해라" 말고는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

적극적인 피임실천은 남녀모두에게 필요하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피임약 복용이었고, 자신의 몸에 맞는 피임법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의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경험에서 현재 산부인과 진료문화 안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피임상담, 복약지도가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제대로 된 피임실천이 목표하는 바는 선명하다. 원치 않는 임신의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몸과 인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임신중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전에 피임을 했든 못했든 100% 완벽한 피임법은 없기에 언제든 섹스 하는 사회라면 원치 않는 임신의 상황에 놓이는 여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출산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고, 기본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은 형법에 의거 처벌받는 범죄인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혹한 선택과 죄책감을 강요받으며 산부인과를 찾고 있다.

'낙태처벌합헌판결'로 그녀들의 경험은 얼마나 깊은 수면 아래로 감춰지게 될 것인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결혼해서 (애를) 낳거나 당당하게 싱글 맘으로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단순하게 말하지 말라. 그게 그렇게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입니다.



태그:#한국여성민우회 , #피임, #낙태,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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