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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숙(55, 소설가)씨는 지난 3월 12일 아들이 근무하는 곳의 한 간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아무개 대위가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약을 먹은 것 같은데 입원하려면 어머니가 오셔야 합니다."

마른 날에 날벼락 같은 전언이었다. 전씨는 "우리 아들이 왜 약을 먹었느냐?"고 다급하게 물었지만 그 간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성남에 있는 육군수도통합병원에 갔지만 왜 자신의 아들이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렵게 아들의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이런 답변을 얻었다.

"○○이가 트위터에다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가 군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뒤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이아무개 대위의 어머니인 전계숙씨가 아들의 제복을 어루만지고 있다.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이아무개 대위의 어머니인 전계숙씨가 아들의 제복을 어루만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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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기소될 수 있나?"

전씨의 아들인 이아무개(28) 대위는 지난 3월 9일 피의자 신분으로 제7군단 보통검찰부에 소환됐다.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자신의 트위터에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혐의였다.

"가카 이새끼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구 발악을 하는구나" "자기 똘마니 양윤재나 재벌 이건희는 초고속 사면시킨 이명박" "지금 남북관계의 경색은 MB정부의 대북 병신외교가 한몫을 하고 있죠" 등의 글이 군통수권자로서 상관인 이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검찰에서 '상관모욕죄 근거'로 들이민 트위터 글 가운데는 이 대위 자신이 올린 것도 있지만 자신이 올렸는지 기억을 못하거나 단순하게 리트윗(RT, 남의 글을 재전송하는 행위)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2011년 4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이 대위는 군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이후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다. 소환조사 직후 자신의 숙소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군병원에 실려가는 일까지 일어났다. 전씨는 이런 일이 벌어진 직후에서야 아들의 '상관모욕죄 기소사건'을 알게 됐다.

"저도 트위터를 하긴 하지만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기소될 수 있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일단 기소라는 단어가 생소했어요. 기소가 (군대 안에서) 가볍게 징계받는 걸로 알았어요. 처음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거죠."

하지만 군검찰은 지난 3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이 대위를 기소했다. 이어 4월 6일 다시 소환조사를 벌인 뒤 "육군 소장이라는 작자 주둥아리에서 정신질환은 정신력 부족이라는 헛소리가 가능한 거다"라는 글이 이 대위의 상관인 정보통신학교장을 모욕했다며 추가 기소했다. 하지만 이 대위는 군검찰 소환조사 때부터 "(정보통신학교장을 모욕한 글을) 올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난 5월 21일 첫 공판이 시작된 이후 석 달 동안 총 4차례(공판준비기일 포함)의 공판이 열렸다. 그리고 지난 8월 22일 군검찰은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수차례 한 것은 육사 출신 장교로서 명예를 망각한 것"이라며 이 대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는 상관모욕죄상의 최고형량이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여론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어요. 한쪽에서는 '군인은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면 안 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군인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또 상관의 범위와 관련한 법리적 해석도 맞서고 있어요. 그런데 젊은 검사(군검찰관)는 대통령을 비방하는 글을 반복적으로 올렸다고 3년을 구형했죠. 제 아들의 상관모욕이 징역 3년 6월을 구형받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에 버금가는 범죄란 말인가요? 절망스럽습니다."
 
"정부 정책 비판하고 자기 신념에 충실하면 '좌파'?"

애초 전씨는 아들의 육사 진학을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서울대 인문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했는데도 이 대위는 "제갈공명과 같은 군전략가가 되겠다"며 기어이 육사에 입학했다. 이 대위를 변론한 이재정 변호사는 지난 22일 이 대위를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와 육사를 동시에 붙고서도 육사를 지원했다. 이를 말리는 모친을 설득하면서까지 육사에 입학했고, 육사 지원금으로 일본 유학도 갔고, 졸업할 때는 우수논문상도 탄 인재다. 이런 이 대위의 모습을 보면서 육사 진학에 반대했던 어머니도 태도를 바꿔 육사발전자금을 300만 원이나 낸 적도 있다."

그런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와 군검찰은 물론이고 군법원까지도  이 대위를 '현직 대통령을 비방하는 좌파군인'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이 대위는 보수적인 엘리트 군인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호인의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22일 이 대위는 재판장의 직접 심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제가 대통령에 비판적이고, 정부 시책을 반대한다고 해도 이명박 대통령이 적진에 뛰어들라고 지시하면 그게 어떤 임무라고 하더라도 그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씨는 이 대위의 고등학생 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한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잘못 내서 그것을 지적했는데 수용하지 않자 이 대위가 관련자료들을 다 뒤져서 시험문제가 잘못됐음을 증명해 결국 선생님이 승복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했을 뿐이에요. 이번에 트위터에 올린 글도 대부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겁니다. 물론 비속어를 쓰긴 했지만, 트위터가 고상한 언어를 쓰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자신이 신념에 충실하면 좌파인가요?"

전씨는 "의식이 깨어있고 진취적인 사람이 좌파라면 아들은 좌파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군대의 엄격한 통제 룰을 지키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면 아들은 보수 성향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들이 잠꼬대를 해요. 그런데 잠꼬대를 하면서도 군대나 군인이 쓰는 용어를 써요. 그걸 듣고 있으면 가슴이 정말 아파요. 아들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트위터를 한 것뿐이에요. 그런데 큰 죄를 지어서 벌받는 것처럼 비쳐져 안타까워요."

군 검찰이 상관모욕죄를 적용한 이아무개 대위의 글들. 대부분 정부의 정책과 관련돼 있다.
 군 검찰이 상관모욕죄를 적용한 이아무개 대위의 글들. 대부분 정부의 정책과 관련돼 있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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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사찰 이유, 심증 가는 부분이 있지만..."

특히 군검찰과 법원은 이 대위의 우울증 치료 경력을 언급하면서 '군대 부적응자'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시도했다. 그의 우울증 치료 경력은 군검찰의 피의자 신문과 몇차례의 공판 과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했다.

"천안함 사건 때문에 1년 가까이 외박을 못나갔고, 의견 대립이 심했던 상관과 2년을 함께 지내야 했어요. 게다가 20년 동안 자기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엄청 좌절했어요. 그래서 아들이 잠이 안 온다면서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사먹었던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4번인가 받은 적은 있지만 입원한 적은 없어요." 

전씨는 "(사건이 일어난 뒤) 어느 날 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대위 때 해야 할 일을 나는 중위 때 다 했으니까 엄마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해'라고 말해서 가슴이 미어졌다"며 "아들이 자부하는 것처럼 그는 정보분석 능력이 뛰어난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위의 상관모욕죄 사건 공판 과정에서 수사와 기소과정을 기무사에서 주도했고, 기무사가 2월 이전부터 이 대위를 주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왜 기무사가 이 대위를 주시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전씨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이어졌다.

"기무사에 그 이유를 묻고 싶어요. 기무사가 한 일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에요. 물론 심증가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기무사가 스스로 얘기해야 합니다."

한편 이 대위의 상관모욕죄 1심 선고는 오는 31일 오후 1시 30분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태그:#상관모욕죄, #전계숙, #7군단, #기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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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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