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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가 올해 3월 전국 학교에 보낸 학생부 기재 지침의 표지.
 교과부가 올해 3월 전국 학교에 보낸 학생부 기재 지침의 표지.
ⓒ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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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가해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대한 회의를 갖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학교폭력 사실을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3 학생들의 경우, 학교폭력 사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다른 지역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입시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교과부의 방침을 따르기로 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이 22일 오후, 일선 고등학교에 긴급 공문을 내리며 강조한 내용이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다. 앞 문장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교과부의 지침을 거부한다며 강조해놓고, 고3은 입시라는 현실적 여건상 예외로 한다는, 앞뒤가 상반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에서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수시모집 인성 전형에 반영하기로 돼 있어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곧,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건데, 이는 교과부의 지침 적용에 따른 폐해가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런 대안 없이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결국 무릎을 꿇은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멋쩍었는지 1, 2학년은 여전히 '보류'란다.

교과부에 대한 어정쩡한 '투항'은 여태껏 시교육청의 보류 방침을 지지하고 있던 수많은 일선 교사에게 적잖은 혼란과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이럴 거였다면 수시원서 접수가 시작되기 전에 공문을 내려보내 업무라도 수월하게 해주지, 수시모집이 시작된 지금 허둥지둥 결정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불만이 높다.

시교육청이 교과부에 맞서서 학생들의 인권지킴이인 양 여태껏 호기롭게 떠든 건 결국 허풍이었냐며 분노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인권이라는 대의를 지키기 위해 버티던 시교육청이 교과부와 부화뇌동한 여론에 밀린 것은, 명분만 내세웠을 뿐 그에 맞선 아무런 실효적인 대응 방안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입시'의 벽 앞에서 결국... 광주교육청의 멋쩍은 투항

결국 한 발 물러서면서 내놓은 이유가 고작 다른 교육청과의 형평성과 시교육청 관내 해당 학생이 10여 명 정도로 그 수가 적다는 거였다. 시교육청이 각 학교에 기재 보류를 요청한 공문을 내린 지가 넉 달 전이다. 그동안 뭐했나. 다른 일로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잘도 모이던데, 교과부 지침을 따르겠다는 다른 교육청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전가의 보도마냥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운운하기 전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학교폭력 대응 지침과 그로 인해 나타난 비교육적인 상황들을 열거하고 설득하려는 사전 노력이 전제되어야 했다. 적어도 억울한 사례를 막기 위한 세부 조항이라도 개정하는 성과를 냈어야 했다. 그런데 대학 수시모집이라는 코앞에 닥친 현실 앞에 속절없이 '투항'해버렸다.

한편, 기재에 따른 피해 학생 수가 적다는 것 역시 이유가 될 수 없다. 굳이 '길 잃은 양 한 마리'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학교에서조차 다수를 위해 소수는 배제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그릇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교육하는 곳이어야지, 사법기관처럼 행정적 처분을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낙인이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말하듯, '어차피 안 될 놈은 안 돼'라는 냉소와 열패감이 우리 사회를 휘감은 채 좀 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교육에 대한 희망이다.

아무리 '막 나가는' 아이라도 교육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단언컨대, 학교의 존재 이유는 없다. 일벌백계라는 말도 죄를 저지른 아이에 대한 교정 가능성이 배제된다면, 죄 짓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을 겁박하는 효과밖에는 없다. 너무 낭만적이라고? 낙인 찍는 일에 둔감해지는 순간,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 찍힐 다음 차례가 바로 내 아이일 수 있다.

과문한 탓인지, 주변에 이른바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 중 또래 다른 아이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 때문일까? 선천적으로 불량한 DNA를 지니고 태어난 게 아닐진대, 소년원은 일시적 격리와 처벌을 위한 공간일 뿐이며,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소년원 출신에게 관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바로 세상인심에 따른 낙인의 효과다.

반인권적인 교과부와 무능한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혼란을 주는 한편, 한창 인권감수성을 키워가던 교사들을 '멘붕' 상태로 몰아갔다.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학교문화에서는 언뜻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이는 그릇된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는 부끄러운 모습이며, 나아가 반교육적 행태다.

학교는 '교육' 하는 곳... 사법기관처럼 '행정처분' 안 돼

생명존중시민포럼은 6일 저녁 창원문성대학 컨벤션홀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Live Together 생명토크"를 열었는데, 이날 행사에 앞서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연극을 선보였다.
 생명존중시민포럼은 6일 저녁 창원문성대학 컨벤션홀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Live Together 생명토크"를 열었는데, 이날 행사에 앞서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주제로 연극을 선보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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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학교에선 마치 헌법처럼 지엄하게 여겨지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얼마나 허술한지 실제 사례 한 꼭지를 소개한다. 과연 여러분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처분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부디 곱씹어 생각해보길 바란다.

진수(가명)는 소심한 친구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가정환경 탓에 부모를 무척 무서워한다. 같은 동네 살던 또래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부모에게 호되게 매를 맞아 이웃집에 잠시 피신해 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매사 주눅이 들어 있어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늘 혼자 지낸 까닭에 친구들도 거의 없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의 관심과 보호 아래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었지만, 중학교 때 와서는 달랐다.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과 오며가며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런 행동이 같은 반이 되어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에서 친구를 사귀는 방식이라고 말했지만, 진수는 그런 '거친' 방식이 싫었다.

한번은 반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걸 괴롭힘이라고 여긴 진수는 집에 이야기했고 이튿날 부모는 학교로 찾아와 관련된 친구들을 하나하나 불러 '해결'해주었다. 이후 학급 내에서는 '진수를 건드리면 부모님께 혼쭐난다'는 말이 나돌았고, 아무리 담임교사가 애써봐도 아이들의 진수를 대하는 싸늘한 눈빛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수는 외톨이가 되어갔고, 담임교사가 그 심각성을 부모에게 알렸지만, 폭력적인 다른 아이들이 문제 아니냐며 되레 담임 노릇이 서툴다고 따끔한 질책을 들어야 했다. 얼마 뒤 진수는 결국 반 친구들 누구도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다며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튿날 부모는 자녀가 왕따 피해를 당했다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 개최를 요구하였다.

억울하게 '지목'되더라도 징계 내용은 고스란히...

피해 사실을 적은 진술서에는 자기가 기억해낼 수 있는 모든 괴롭힘의 사례가 망라되어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하는 몇 달 전의 일까지 적고 있었다. 괴롭힘의 증거라고 해봐야 아무리 피해자 편에 서서 해석해 보려 해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상담교사조차 다른 친구들과 전혀 섞이지 못하는 진수의 성격이 문제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속적인 상담과 담임교사의 관심, 학교폭력전담기구의 지도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 지목된 가해 학생들을 다짜고짜 폭대위로 소환해 징계하는 건 가혹할 수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것은 모든 교사들이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규정상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르면, 반드시 폭대위를 열어야 하는 경우를 명시해뒀다. 곧, 경미한 사안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경우다. 전치 3주 이상의 상해, 폭행, 감금, 약취, 유인, 공갈, 강요, 성폭력과, 정신적 후유증과 재산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그리고 지속적이고 보복적 폭행의 경우에는 폭대위 개최는 의무다.

백 보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수긍이 간다. 그런데 네 번째 필수 항목이 바로 '피해자가 폭대위 개최를 원하는 경우'다. 아무리 사안이 경미해도, 피해자가 열라면 열어야 하는 게 법이다. 진수를 괴롭혔다는 친구들이 받게 될 징계는 어느 정도일까. 기껏해야 서면 사과와 화해 정도다. 아무리 가혹한 자치위원들이라도 교내 봉사의 징계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경미한 처분일지라도 그 내용이 고스란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징계다.


태그:#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생부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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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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