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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휴가철을 맞아 한산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동네 공원에서 난장이 펼쳐졌다. "아동성폭력 예방은 지역사회의 몫입니다"라는 주제의 캠페인이 열린 것이다.

뙤약볕 속에서 캠페인을 벌린 이들은 최근 영등포 지역에서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서울여성회(회장 류은숙)의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올 초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영등포에서부터 성평등한 마을을 만드는데 앞장설 지역주민 주체를 발굴하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영등포 DO DO DO 성평등한 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원을 지나던 엄마와 아이가 함께 체험부스에 참여하고 있다.
▲ 나의 성평등 지수 YES/NO 체험부스에 참여하고 있는 문래동 주민 공원을 지나던 엄마와 아이가 함께 체험부스에 참여하고 있다.
ⓒ 김황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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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들은 연일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동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가해자 처벌' 위주의 대안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아 상반기동안 '우리 아이 안전하게 학교 보내기-찾아가는 학부모강좌'를 진행해 왔다.

더불어 강좌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직접 주민들을 만나 아동성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알리고자 8월 4일과 18일, 22일 세차례의 '2012 영등포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거리 캠페인을 기획했다. 그 첫 번째 포문을 지난 4일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공원에서 연 것이다.

캠페인에서는 다양한 체험과 전시 프로그램으로 무더위 속 지나는 주민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게임 형식의 '나의 성평등 지수 YES/NO'는 특히 자녀와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학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야 한다?", "여자는 애교가 많아야 한다?" 등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해보며 자신의 성평등 의식을 점검해보는 순서로, 성평등 의식이 높게 나타난 참가자에게는 '성평등 디자이너'라는 칭호가 붙여지기도 했다.

영등포 지역 내에서 안전하지 않은 지역을 지도 위에 표시하고 어떻게 개선되길 바라는지 적어보는 '내가 사는 영등포 구석구석 살펴보기-안전지도 제작' 부스에서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도 앞에 서서 많은 시간 고민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보태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한 주민이 캠페인 자원활동가에게 영등포 안전지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영등포 안전지도 제작 부스에 참여하고 있는 문래동 주민 한 주민이 캠페인 자원활동가에게 영등포 안전지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김황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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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편하게 다니기 어려운 곳 많아"

양평동에 거주하는 한 참가자(34세, 남성)는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영등포역을 꼽으며, "해지고 난 후 어른들도 마음 편하게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입니다"라며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환경 개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메모지에 적었다.

문래공원 근처에 살고 있어 우연히 들렀다는 임신 6개월의 한 참가자(37)는 행사에 참여하며, "나도 이제 곧 한 아이의 엄마가 되니 관심이 간다, 아동성폭력 예방에 대한 역할을 지역사회가 한다면 정말 살만한 나라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캠페인에서는 기획전시를 통해 아동성폭력이 일어나는 단계와, 아동성폭력 문제 해결에 필요한 키워드를 소개했다. 특히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내용의 기획전시를 통해,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유발론'이 성폭력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거리공연을 진행한 인디밴드 '바리케이트톨게이트'는 노래와 노래의 중간에 캠페인 취지에 동조하는 멘트를 넣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밴드의 보컬 젤리씨는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힘센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남성이 여성을, 어른이 아이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즐거운 공연과 멘트를 통해 아동성폭력 예방에 지역사회가 함께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 캠페인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 인디밴드 ‘바리케이트톨게이트’ 이들은 즐거운 공연과 멘트를 통해 아동성폭력 예방에 지역사회가 함께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 김황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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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안전지도 위에 의견을 적고 있다.
▲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문래동 주민 문래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안전지도 위에 의견을 적고 있다.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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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 인식 때문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시간의 캠페인 동안 많은 주민들이 호응을 보이자, 땀으로 젖은 활동가들은 연신 환한 표정을 지었다. 행사를 기획한 서울여성회 아카데미위원회의 조이다혜 위원장은 "최근 통영에서 일어난 아동납치 및 성폭력 사건으로 세간이 또다시 떠들썩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사건들이 그랬듯 다시 잊혀질 것이다, 나와 내 아이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그러나 성폭력은 아주 특수한 변태성욕자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번져 있다,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을 지역주민들께 알리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또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의식 때문이다, 남성은 성욕이 많을수록 좋다,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라 조절할 수 없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과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순결주의가 사라지지 않으면 성폭력의 근절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영등포구 양평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영등포역 부근'을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지적했다.
▲ 안전지도에 붙여진 주민의 의견 영등포구 양평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영등포역 부근'을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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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하면 관심이 쏠리지만 지나면 잊혀져"

임신 6개월째인 한 주민이 아동성폭력 예방 추천동화 전시 부스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다.
▲ 캠페인에 참여한 영등포 주민 임신 6개월째인 한 주민이 아동성폭력 예방 추천동화 전시 부스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다.
ⓒ 김황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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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가 올 한해 영등포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인 이유는 2년 전 영등포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납치 성폭력 사건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역사회에서 아동성폭력 해결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지자체와 학교,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모두 아동성폭력 예방에 하나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오는 8월 29일, 9월 5일, 9월 12일 세차례에 걸쳐 '내가 바로 성평등마을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6회 서울여성아카데미를 개최한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성문화 관점에서 본 성폭력'을 진단하며, '안전한 도시설계 이론과 사례'를 살펴본다. 

이후 영등포 주민들과 함께 '영등포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기획단'을 만들어 영등포 내에 안전하지 않은 지역환경을 개선하고, 아동성폭력 예방 관련 주민조례를 만드는 등 본격적인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벌이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이다.

이에 대해 류은숙 서울여성회 회장은 "아동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역이 바뀌어야 한다, 그 노력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몇몇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의 마을을 가꾸어나가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동네)에 안전하지 않은 공간들을 안전하게 바꾸어가는 일을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이들의 노력이 새로운 지역문화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기자는 서울여성회 아카데미위원회 위원입니다.



태그:#아동성폭력, #성폭력, #성평등, #영등포, #서울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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