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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빌보드(Billboard) 삼성 태평로빌딩 1991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빌보드(Billboard) 삼성 태평로빌딩 199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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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9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한국관객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s-Torres, 1957-1996)의 '분신(Double)'전이 중구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PLATEAU)에서 9월 28일까지 열린다. 여기서 '더블'이 붙은 건 물체를 쌍으로 제시하는 그의 조형언어 때문이다.

아시아의 미술관으로는 최초로 이 작가가 소개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과 22여 곳에서 개인 소장가로부터 대여한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44점을 총 망라한 전시다. 게다가 삼성 태평로빌딩, 명동 중앙우체국 등 서울 시내 6곳에 옥외광고판(billboard) 형식의 자신의 침실을 찍은 설치작품도 선보인다.

주류, 비주류를 뒤바꾼 미국의 스타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북녘(Untitled_North)' 전구, 자기, 전구소켓, 전선 플라토 설치전경 1993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북녘(Untitled_North)' 전구, 자기, 전구소켓, 전선 플라토 설치전경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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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1979년 20대 초반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프랫(Pratt)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뉴욕 대와 국제사진센터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작품 활동을 했고 소재와 형식면에서 극도로 간소한 작품을 남겼다. 1994년 '미국순회전', 1996년 '유럽순회전' 열었고 그해 아까운 나이인 39세에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는 2007년에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선정될 정도로 현대미술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서도호, 양혜규도 그의 팬이다. 쿠바난민으로 동성애자, 에이즈환자인 사회적 소수자가 어떻게 미국의 영웅이 되었는지 알아보자.

생성과 소멸의 미학으로 생사를 뛰어넘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플라시보(Untitled_Placebo)' 벽시계, 은색셀로판지에 포장한 사탕, 무한 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플라시보는 실질적 효능 없이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처방되는 가짜 약(僞藥)을 뜻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플라시보(Untitled_Placebo)' 벽시계, 은색셀로판지에 포장한 사탕, 무한 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플라시보는 실질적 효능 없이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처방되는 가짜 약(僞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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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산 같이 쌓인 사탕이다. 위 사진에는 보듯 500kg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사탕더미가 미니멀한 네모형태로 전시장바닥에 깔려 있다. 사탕이 줄어들면 계속 채워진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겠다. 관객을 배려하는 이런 기발하고 독창적 아이디어로 작가는 그 이름을 높였다.

관객은 처음에 사탕을 가져가도 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만큼 작품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우리 뇌리에 박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가져가라는 게 이 작가의 콘셉트이다. 작가는 이렇게 작품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열린 사고를 한다. 작가는 에이즈로 생사의 경계에 넘나드는 힘겨운 고통을 많이 당했기 때문인가.

관객을 전시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환영(Untitled_Aparicion)' 종이프린트 무한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환영(Untitled_Aparicion)' 종이프린트 무한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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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뿐만 아니라 미술관에서 준비한 포스터도 가져갈 수 있다. 이것도 사탕처럼 없어지면 다시 채워진다. 이런 반복과 복제를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채움과 비움의 끝없는 맞물림은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게 한다. 이는 삶과 죽음, 파괴와 재생, 만남과 이별에 대한 작가의 시적 은유일 수 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관객이 참여해서 그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관객에게 작가의 작품에 대해 주관과 견해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알려준다. "관객이 내 작품을 완성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난 관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모든 작품이 '무제'인 것은 관객이 작품을 나름대로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렇듯 전시란 그에게 관객에게 완벽한 재현이나 잘 짜인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전시에 와서 뭔가 보고 생각하고 사유하고 탐구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뜻이 된다.

동성애, 에이즈 등 껄끄러운 사회이슈가 주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완벽한 연인들(Untitled_Perfect Lovers)' 벽시계 플라토 설치전경 1987-1990. 전시장 내부 및 홍보문구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완벽한 연인들(Untitled_Perfect Lovers)' 벽시계 플라토 설치전경 1987-1990. 전시장 내부 및 홍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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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로 사망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동성애, 에이즈 등 껄끄러운 사회이슈를 선구적으로 그의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에이즈는 당시 미국 문화예술계를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스키아, 록 허드슨, 키스 해링 등이 다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당시 에이즈와 관련 있는 동성애도 그의 작품에 주제가 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연인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이름은 로스 레이콕(Ross Laycock, 1959-1991) 그는 에이즈로 34kg가 될 정도로 몸이 쇠약해져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그에 대한 애틋함과 추모의 정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전반에 담겨 있다.

두 연인의 너무 순수한 사랑 그 사랑의 진정성에 관객이 매혹되고 그런 열정에 공감한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 '완벽한 연인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 쌍의 시계다. 시계를 보면 시침, 분침, 초침이 같다.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상징한다. 같은 시계만 있으면 누구나도 집에 설치할 수 있다.

공과 사, 개인과 사회를 잇는 설치미술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설치 벽에 2개의 거울 플라토 설치전경 1991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설치 벽에 2개의 거울 플라토 설치전경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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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플라도를 위한 22번째 버전. 플라토 설치전경 1989-2012. 'Seoul 2012'는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렸다는 뜻이고 'VCR 1978'은 1978년 미국에서 이동식 비디오테이프가 선풍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Untitled)' 플라도를 위한 22번째 버전. 플라토 설치전경 1989-2012. 'Seoul 2012'는 서울에서 개인전이 열렸다는 뜻이고 'VCR 1978'은 1978년 미국에서 이동식 비디오테이프가 선풍을 일으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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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두 개의 시계에서 보듯 '짝(two, double)'을 선호한다. 시계만 아니라 두 개의 베개, 두 개의 거울, 두 개의 전등이 자주 등장한다.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이라는 개념인가. 여기서 둘의 관계는 종속적이 아니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다.

둘이 하나고 하나가 둘이라는 것, 더 나아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하나로 긴밀하게 연결하는 통합적 사고는 신선한 발상이다. 그런 점이 일찍부터 그가 공공미술과 예술의 공공성에도 관심을 둔 이유이리라. 그러면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버려진 공간인 천장에 중요한 작가의 개인사와 사회의 연대기를 단지 짧은 숫자와 단어만으로 기록한다.

개념주의와 미니멀리즘의 창조적 계승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로스모어II(Untitled_Ross More II)' 녹색사탕 34kg 사탕 무한 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여기서 34kg은 그의 연인이 죽었을 때 몸무게를 뜻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로스모어II(Untitled_Ross More II)' 녹색사탕 34kg 사탕 무한 공급 플라토 설치전경 1991. 여기서 34kg은 그의 연인이 죽었을 때 몸무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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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관객이 침묵과 고요 속에 죽음과 소멸의 정신을 사유하게 만드는 개념주의 요소를 강하게 풍긴다. 왜 사탕이 있고 그게 뭘 의미하고 왜 녹색인가 등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보다는 당대의 주류인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를 따르면서도 자신 목소리만은 분명히 낸다.

그는 히스패닉 작가는 다 강렬한 색채로 느낌만을 중시한다는 생각을 뒤엎는다. 또한 그는 대상자체를 중시하지 않는 개념미술가답게 예컨대 연극을 보고 나서도 그저 카타르시스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걸 주제도 다뤘으며 그런 것이 일어나는지 묻고 이를 낯설게 사유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경험케 하는 방식을 취한다.

사회적 소수자 관점에서 예술을 반전시키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자연사박물관[벽면]'과 '무제_고고댄싱 플랫폼(Untitled_Go-Go Dancing Platform)[중앙]' 나무, 전구, 아크릴물감, 은색수영복, 고고댄서, 개인용 음악플레이어 플라토 설치전경 1991 삼성미술관 플라토 제공 사진 김상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자연사박물관[벽면]'과 '무제_고고댄싱 플랫폼(Untitled_Go-Go Dancing Platform)[중앙]' 나무, 전구, 아크릴물감, 은색수영복, 고고댄서, 개인용 음악플레이어 플라토 설치전경 1991 삼성미술관 플라토 제공 사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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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시민권을 획득했지만 그는 여전히 쿠바 유색인이고 성소수자이고 에이즈 감염자이고 사회적 아웃사이더다. 게다가 그가 활동한 80년대는 보수적인 레이건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주변부의 이미지 대신 주류미술계의 중심부를 파고드는 명민함을 보인다.

위 작품은 미국 백인남성중심 주류사회의 시스템을 담으면서도 이를 풍자한다. 주위 벽에는 뉴욕자연사박물관 설립의 후원자였던 F. D. 루스벨트 미대통령의 업적을 기린 12명의 백인영웅사진이 붙어있다. 작가는 수영복 입은 고고댄서를 무대에 올려 하루 5분씩 춤추게 한다. 이 당당한 댄서는 바로 작가자신이자 시대와 싸우는 투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주류미술계에서 우뚝 선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북녘'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 멀리 로댕의 '지옥의 문'이 보인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I '무제_북녘'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 멀리 로댕의 '지옥의 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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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려면 그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미국문화의 주류를 파고들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다른 나라의 고급군사비밀을 빼오는 007스파이나, 주류문화의 핵심부와 중심부에 쳐들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예술영역과 창작분야에 불을 지피는 잠입자(infiltrator)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를 이렇게 기준의 틀에서 벗어나 사물을 자유롭게 보게 하는데 기여한 이들로는 발터 벤야민, 알튀세, 롤랑 바르트, 푸코, 보르헤스, 브레히트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가는 유언처럼 "최선을 다해 산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복수다"라고 말했지만 예술은 그에게 있어 주류미술에 대한 달콤한 복수인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정치적 발언보다 예술적 발언을 통해서 더 큰 울림을 주었고 그래서 오히려 미국사회를 설득하고 창작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게 되고 미국의 영웅이 된다. 사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다만 가장 정치적인 작가는 전혀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작가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바로 그런 작가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전시 연계 강연회 프로그램> 장소: 삼성미술관 플라토
[1차] 제목: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 부활의 가능성, 나눌 수 있는 기회, 일시적 휴전
강사: 권미원(UCLA교수) 완료
[2차] 제목: 매체는 기억이다-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진정한 삶의 문제들'
강사: '정헌이(한성대교수) 완료
[3차] 제목: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비물질화된 미술오브제와 1980년대 뉴욕화단
강사: 정연심(홍익대교수) 일시: 8.18(土) 14:00-16:00
[4차] 제목: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와 창조적 현대성
강사: 임근준(미술평론가) 일시: 9. 8(土) 14:00-16:00
서울시 중구 태평로2가 150 삼성생명빌딩 1층 문의 1577-7595 www.plateau.or.kr
요금: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10:00~18:00(월요일 휴관, 17:30 입장 마감)
작품설명: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 3시, 4시, 5시



태그:#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로스 레이콕, #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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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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