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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직은 더 피어 있어야 할 꽃이 가뭄에 말라 떨어졌습니다.
▲ 장미 아직은 더 피어 있어야 할 꽃이 가뭄에 말라 떨어졌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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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뜨겁고, 마른 바람 불고, 비는 내린지 오랩니다.
축 늘어진 몸, 밤새 기운을 차렸더니만 아침 햇살만으로도 이미 온 몸이 축 처집니다.
'하늘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물 한 모금만 주었으면....'하는 바람이 간절했지만, 나는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떨어지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끝내 떨어지지 않으려 고집하며 그 물 함께 나눠먹자고 버틴다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안다는 것은 그냥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고, 그래야 삶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누구에게 강요하지 않고 떨어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며칠 더 이렇게 뜨거운 날이 이어진다면 나의 떨어짐이 의미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혹시 단비라도 내리면, 그들은 살아있을 것이므로 나는 내 삶을 놓습니다.

꽃송이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가뭄이 언제나 끝날런지 단비가 간절한 시간들입니다.
▲ 장미 꽃송이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가뭄이 언제나 끝날런지 단비가 간절한 시간들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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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햇살이 뜨겁습니다.
가뭄과 홍수를 모두 한 방에 통제하겠다던 야심찬 공사가 끝났지만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대지를 속수무책 바라보기만 해야 합니다. 모내기도 마치지 못한 논은 쩍쩍 갈라졌는데 야심찬 공사를 강행하셨던 분은 "홍수가 없었으니 성공"이라고 자화자찬 놀이에 빠져있습니다.

세상 참 야속합니다.
없는 사람, 힘 없는 사람들에게만 야속합니다.
조금이라도 권력의 끈이거나 물질의 끈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인가 봅니다.

조금만이라도 비가 와주었다면 그 절망의 벽을 푸르게 덮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담쟁이덩굴 조금만이라도 비가 와주었다면 그 절망의 벽을 푸르게 덮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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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벽이라도 소리없이 기어올라 마침내 절망의 벽을 덮어버리겠노라고 했는데, 그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물 한 모금 주지 않으면서 "절망하지 말라"고 하는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봅니다.
그들에겐 그 어떤 말보다 '물 한 모금'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물 한 모금' 나누는 일 없이, 대책만 세우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로만 위로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가뭄은 하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자기 맘대로 자기의 뜻을 펼치지 않습니다.
땅에 사는 인간이 한 만큼, 너무도 냉정하리만큼 처신하는 까닭에 인간이 원하지 않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자 다른 피조물들이 함께 아파하는 현실을 봅니다.
우리는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인간의 소비문화가 이런 황량한 현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자이거나 인간과 다른 종인 동식물입니다.

가뭄에 비썩 말라버린 장미, 그녀는 향기마져도 빼앗겨 버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장미 가뭄에 비썩 말라버린 장미, 그녀는 향기마져도 빼앗겨 버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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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억지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살이 돌아보면 약자들의 아우성이 마침내 절망이 되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무관심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에,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들의 삶을 심연까지 파괴합니다. 더는 꽃 피울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들만의 화수분,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권력과 재물을 끝내 놓지 않고 소유하려고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 가운데 말라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랜 가뭄에 말라비틀어지는 꽃들이 우리에게 주는 상징이 아닐까 싶어 두렵습니다.

시커멓게 타버린 깨, 아직은 살아있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 깨 시커멓게 타버린 깨, 아직은 살아있지만 열매를 맺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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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시들어 말라버리는 꽃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웃사랑'을 말하기 전에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 복 받겠다고 아우성치는 기도를 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말과 정의스러운 말들로 포장된 거짓 사설을 파기하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의 달콤한 말에 취해 자기의 형제자매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냉소하는 이들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들이 죽고나서야 깨닫는다면 너무 늦습니다.

단비가 흠뻑 내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이 마릅니다. 몸이 타들어 갑니다. 살아있는 듯하지만, 얼마나 더 인내하며 살아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숲은 잘난 나무들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잘난 사람이 아니면 모두 도태시키는 이 세상에 "아니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민수 목사의 들풀교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가뭄, #장미, #담쟁이덩굴,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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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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