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쓰레기 분리 수거장 주변에 세워진 천막에서 파업 노동자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밤을 지샌다고 했다.
▲ 천막농성현장 전경 쓰레기 분리 수거장 주변에 세워진 천막에서 파업 노동자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밤을 지샌다고 했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동국대학교 학내에 천막이 설치됐다. 그리고 그곳에는 학교 학생들이 아닌 청소노동자들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축구와 야구 등을 하는 학생들과 동호인들을 피해 그들은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하루하루 무더워지는 날씨에 그들은 왜 천막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인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4일부터 파업을 시작, 13일부터는 교내 쓰레기 분리수거장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쓰레기 농성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리고 왜 하필 온갖 오물이 모여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점거한 것일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작업량을 따라갈 수 없다"

야구를 즐기는 야구동호인을 뒤로 분리수거장의 진입로에 있는 천막이 보인다. 행여나 공이 천막으로 향할까 매우 위험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청소노동자 한 분이 야구공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 대운동장 한켠에 설치된 천막농성장 야구를 즐기는 야구동호인을 뒤로 분리수거장의 진입로에 있는 천막이 보인다. 행여나 공이 천막으로 향할까 매우 위험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청소노동자 한 분이 야구공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용역회사가 노동조합과 맺은 단체협약상의 신규인원에 대한 추천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며 "결원으로 발생한 노동자 임금은 용역업체 사장의 주머니에, 그리고 그 결원으로 생긴 업무는 고스란히 나머지 노동자들이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로서는 도저히 작업량을 따라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청소노동자들은 하청업체가 도급계약 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른 체하는 동국대 측을 비판했다. 그들은 '학교가 업체 사장을 비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학교가 하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7일, 천막에는 60~70대로 보이는 청소노동자 30여 명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분리수거장을 점거한 상황에서, 회사 측이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치워 업무공백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고 개탄하며 삼삼오오 교정을 순찰하고 있었다.

천막농성에 참여한 노동자 중 최기준(노동조합 대의원)씨를 만나봤다. 올해 만 67세인 최씨는 동국대에서 약 5년동안 근무를 했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작업장으로 학교에서 나온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일을 맡고 있단다. 그는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그는 "최저임금에 식대를 조금 더한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제 시간에 퇴근하려면 일찍부터 일해야"

인터뷰에 응한 최기준(왼쪽·동국대 시설노조 분리장 노조 대위원)씨와 이오복(노조 대의원)씨.
▲ 천막농성 중인 청소노동자 인터뷰에 응한 최기준(왼쪽·동국대 시설노조 분리장 노조 대위원)씨와 이오복(노조 대의원)씨.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 이번 파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임금이 체불돼 지급된 부분이나, 명절 때 보너스 한 푼은커녕 작은 선물조차 받지 못한 점 등 서운한 것들을 말하려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발단은 지난 5월 9명이 함께 일하던 중에 2명이 일을 그만두고, 발생한 결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결원이 발생하게 되면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가 추천한 인원을 신규 채용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업체 사장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추천한 자의 자격을 들며 사사건건 반려하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대학교에서 온 사람을 신규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는 명백한 협약 위반이다. 이에 대한 배경에는 우리 노동조합을 분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생각해 보라. 업체사장과 관련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가 속해 있는 노조에 가입하겠나. 며칠 뒤 그 사람들이 나가긴 했지만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면 이러한 경우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결국, 우리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쫓겨나게 되고 말것이다."

- 결원으로 생긴 공백은 어떻게 메웠나.
"무슨 수가 있겠나? 남아있는 우리가 다했다. 특히 동국대에는 올해 기숙사가 생겨 업무가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게다가 이번 업체는 기존에 '5가지'로 분류하던 쓰레기를 '9가지'로 분류하라고 지시해 업무 강도가 더 강해졌다. 9명이 하던 일을 7명이 나눠서 하고, 또 그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일로 휴가를 내면 일은 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퇴근시간을 맞추려면 더 일찍 출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결원된 인원에 대한 월급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는 묵묵부답, 집회하면 불쾌하다는 반응도"

열려 있어야 할 본관의 정문이 굳게 닫혀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본관 점거를 염려한 조치라고 일러주었다. 멀리 태극기와 함께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들이 흔들리고 있다.
▲ 굳게 닫힌 본관의 정문 열려 있어야 할 본관의 정문이 굳게 닫혀있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본관 점거를 염려한 조치라고 일러주었다. 멀리 태극기와 함께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들이 흔들리고 있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 지난 4일부터 파업에 돌입했고 학생들의 서명운동도 받았으며 급기야 천막농성까지 했다. 학교 측의 반응은 어떤가.
"달리 반응이랄 게 없었다. 되레 '업체와의 문제를 왜 학교에 얘기 하느냐'며 불편해 한다. 또한, 왜 학교 본관 앞에서 집회를 하느냐며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경비원들을 앞세워 우리를 막고 카메라로 마구 찍어대기도 하더라.

결국 이렇게 파업이 된 것은 현재의 업체가 하청업체로서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협약도 어겼다. 그런데도 학교가 이를 외면하는 것은 '원청'으로서 할 역할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때문에 우리는 학교가 업체 사장을 비호라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생긴다. 그들은 그저 말없이 묵묵히 참고 일하는 청소부들을 원하는 모양이다."

- 학교는 현재 기말고사 기간이다. 그럼 청소는 어떻게 하나.
"사측 및 학교 측과 가까운 사람들이 교내 청소를 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점거하고 있으니 쓰레기를 최종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교내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가 우리를 피해 쌓아 둔 쓰레기를 몰래 처리해 업무 공백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까 봐 우리는 두 개조를 꾸려 교내를 순찰하고 있다.

쓰레기들이 이런 식으로 자꾸 쌓이면 여름에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서둘러 학교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하는데 학교는 업체와의 문제라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 우리가 집회라도 하면 곧장 불쾌해하며 '셔터문'을 내려버린다."

"인재 길러내는 학교... 학생들이 뭘 배우겠나"

쓰레기 분리수거장 농성으로 쓰레기를 옮기지 못하여 교내에는 이런 광경이 많이 발견된다. 청소노동자들은 서둘러 이번 일이 해결돼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가 최소화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동국대 교정 내 학림관 앞에 쌓인 쓰레기 더미 쓰레기 분리수거장 농성으로 쓰레기를 옮기지 못하여 교내에는 이런 광경이 많이 발견된다. 청소노동자들은 서둘러 이번 일이 해결돼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가 최소화 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 파업이 장기화 될지도 모른다. 결국 학교가 나서야 서둘러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학교가 업체를 노골적으로 봐주면서 우리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서운한 것 참 많다. 한 학교 관계자는 청소 할머니들이 휴게실에 있는 냉장고에 물을 얼려 놓는 것도 불편하게 여겨 잔소리한다고 한다. 학교 전기세가 아깝다며...

학교가 이래서 되는가. 이러면서 인재를 길러 낸다고 하는데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게다가 학교 총장은 법조계에서 활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을 모시고 있는 학교 관계자들이 무슨 이유로 협약을 어기고 있는 업체를 좌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일반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다. 어려움은 없나.
"오전 6시부터 일하려면 오전 5시부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건강이 안 좋은 분들도 계신다. 내 나이가 올해 만 67인데, 나는 이미 정년이 지났지만 일전의 협약에서 정년을 2년간 유예하기로 돼 있어 올해까지는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내년에는 어찌될 지 모르겠다. 청소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민하는 지점이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인 것 같다. 노동부 장관이 이를 좀 알았으면 좋겠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노사 합의만 지켜진다면... 정상화 가능"

함께 파업에 동참한 청소노동자들이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은 집에서 마련해 온 밥과 반찬으로 모두 모여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 저녁 풍경 함께 파업에 동참한 청소노동자들이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은 집에서 마련해 온 밥과 반찬으로 모두 모여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분리수거장 한 쪽에 있는 수돗가에서 식기를 닦고 있다.
▲ 저녁식사 후의 풍경 분리수거장 한 쪽에 있는 수돗가에서 식기를 닦고 있다.
ⓒ 한길로

관련사진보기


-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 먹어서 이 천막에서 자고,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밤에는 은근히 추워 침낭도 가져왔다. 잠을 청해도 많은 생각이 오가서 잠도 잘 안 온다. 그래도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 학생들도 알게 모르고 많이 지지해주고 있어서 고맙다. 6월 넷째주부터 학생들 중간고사인데 피해를 주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는 노사간 합의만 지켜지면 그만이다. 서둘러 정상화되면 좋겠다."


태그:#청소노동자, #쓰레기분리수거장, #동국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