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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치민(옛 사이공)은 크기뿐 아니라 다양성에 있어서, 북부 하노이를 넘어서고 있다. 하노이가 실제 수도로서, 호치민보다는 최근 집중적인 투자를 많이 받고 있지만, 일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살기 편하고 무엇을 하기에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 호치민이다.

호치민 거리를 나가보면, 많은 노점상들을 볼 수 있다. 물과 음료수를 파는 사람들, 간이음식, 커피, 각종 잡화 등. 숯을 가지고 다니며 즉석조리도 한다. 작은 플라스틱 탁자와 간이의자만 있으면 장사를 벌일 수 있어, 일반 서민들에게 최소한의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안겨준다. 이런 간이매대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농촌지역에서 올라온 상경자다(베트남 농촌지역에 사는 일반서민들은 현금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어, 순수히 자급자족이 많은 실정이다).

하노이의 경우 경찰과 정부의 간섭이 많고 사람들 사는 게 각박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호치민은 분위기가 친근하고 심한 단속이 없어 농촌지역이나 북쪽 하노이 쪽에서도 이주를 하고 싶은 지역으로서 선호도가 높다. 호치민은 현금을 쥐고 싶어하는 돈 없는 서민들에게는 희망과 동경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른 아침 바나나를 한가득 싣고, 오토바이도 아닌 자전거에 리어카를 달고 시장으로 향하는 남자를 보았다. 아마도 도시와 가까운 농촌지역에서 왔을 것이고, 좋은 자리에 좌판을 펼치기 위해 새벽부터 달려왔을 것이다. 도매상에게 싸게 바나나를 넘기느니, 고생이 되더라도 직접 소비자에게 팔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이런 장사꾼들은 그날 가지고 온 과일들을 다 팔지 못하고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따라서 오후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떨이로 팔아야 한다. 영악한 도시사람들은 이들의 심리를 알기에 한바탕 땡볕이 지나간 후에 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간다. 어찌 됐든 빈수레가 되면 집으로 향하는 페달질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한국의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힘들게 키운 농작물을 가지고 시골장에 쭈그리고 앉아서 팔던 모습들. 베트남은 우리의 어릴적 고생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티브들이 많아서 때론 슬프다.

장미에 앉은 메뚜기를 길거리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
▲ 갈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 장미에 앉은 메뚜기를 길거리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
ⓒ 류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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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1군지역을 가다가 만난 호치민의 예술가다. 프랑스 파리의 낭만과 여유로움은 없지만, 손에서 나오는 정교함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오토바이와 차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따가운 햇빛에도 묵묵히 '장미에 앉은 메뚜기'란 작품을 만들고 있다.

액자는 없다. 버려진 스티로품 박스가 그의 전시장이다. 매연에 찌들은 도시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초록빛의 갈대가 만들어낸 작품에 홀려 가격을 물어본다. 4만 동(약 2500원)을 달라 한다. 하나를 사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꽤 훌륭하다. 이 사람은 장미에 달라붙은 메뚜기를 만들었지만, 자동차, 비행기, 시계, 사람, 집 등을 접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갈대를 접어서 만들어 파는 그의 행색에서 짐작할수 있듯이, 그도 시골에서 올라왔다. 필자의 짧은 베트남어 실력으로 물어본 결과, 호치민시에 살지는 않고, 롱안(호치민 서쪽 외곽지역) 쪽에서 새벽부터 갈대를 짊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몇 개를 팔았냐고 물으니, 3개를 팔았다고 한다. 그의 옆에 있는 검은 봉지 안에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가 있고 먹다 남은 찰밥이 보인다. 언제 집으로 갈 것이냐는 물음에 씽긋이 웃더니, 해가지기 전에는 갈 것이란다.

신기한 손놀림에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베트남인에게는 2만 동에 파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한번 씽긋 웃어준다. 그는 멋쩍은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작업을 계속한다. 마음씨 좋은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만나길 바라며, 필자는 집으로 향하였다.

장미와 메뚜기, 매치가 잘 안 돼지만, 솜씨 좋은 정교함이 이를 만회하고 있다.
▲ 장미에 앉은 메뚜기 장미와 메뚜기, 매치가 잘 안 돼지만, 솜씨 좋은 정교함이 이를 만회하고 있다.
ⓒ 류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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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과거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보릿고개를 겪어본 세대는 아니지만, 풍족했던 삶을 살지 못했고, 자식들 대학등록금 뒷바라지에 짜장면 하나에도 돈이 쉽게 나가지 못했던, 그런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삶의 질을 논함이 사치였던 그 시대 부모님들의 인생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베트남은 간접경험을 해주게 한다.

요즘은 웬일인지 길거리 예술가들을 만나기 힘들다.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도시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길거리 장사를 단속하는 정부의 노력(?) 때문이란다. 하지만 민초의 삶은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다시 도시에 나타날 것이며, 단속과의 숨바꼭질도 계속될 것이다.


태그:#베트남, #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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