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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동력보다 돈에 따라 직업 선택

고전평론가 고미숙 박사의 경력은 직업만큼이나 낯설다. 그는 제도권에 어떠한 적도 두지 않고 지식인 공동체 '수유+너머'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곳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같이 공부하며, 책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수유+너머'를 떠나 또 다른 공부 공동체 '감이당'을 실험 중이다.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그는 '자발적인 동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곳에 들어가는 것을 사실 더 좋아합니다. 정규직 못해 먹겠다고 하면서도 굉장히 오래하죠.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좋지만 그만큼 힘이 듭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곳에 가서도 자발성과 창조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죠."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돈을 얼마나 버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글을 쓰고 싶고 글을 통해 존경할 만한 유명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기자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고전문학으로 '독자와 소통하며 이를 통해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국문학 박사과정을 거쳐 고전평론가가 됐다.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 중인 고미숙 고전평론가.
 강연 중인 고미숙 고전평론가.
ⓒ 주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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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돈 액수 자체는 (직업선택의) 결정적인 것이라 하기는 좀 어렵죠. 지금 돈이 얼마인가가 중요하다면 이거는 진짜 병든 거예요. 돈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요?"

커피 심부름을 할지라도 달가운 일을 찾아라

"평생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할 때 돈이 제일 중요하다면, 장사를 하거나 처음부터 재물을 일구는 곳으로 가야 돼요. 대학에 올 필요가 없다고요. '부자가 되려면 대학에 가지 마라.' 그 말이 맞아요. 일찌감치 돈이 움직이는 현장의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죠. 대학가서 뭣 하러 경영학을 듣고 있어요? 그런다고 돈을 주무르는 부자가 될 수는 없어요."

진로를 결정할 때는 돈보다 '내가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가'를 우선적으로 따져보라는 뜻이다. 그는 전공선택만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젊은이들의 우매함도 꼬집었다. '자신의 소질, 좋아하는 것'을 모르니 적성에 안 맞는 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잘못 생각한다는 것이다.

"10대, 20대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몰라요. 적성에 맞는 과를 가라는 것도 사실 공염불이죠. 그때는 모르니까요. 최소한 10년은 수련기간으로 삼아 배우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해요. 커피 심부름이 더럽고 치사하다고요? 그것조차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해요."

쿵후를 배우러 소림사에 가서 대접 받기를 원하면 고수가 될 수 없는 법. 그는 "영화 '쿵푸 팬더' 주인공이 쿵후를 배우며 대접 받을 생각을 하면 언제 배우느냐"며 '정당하게 대우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일을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왜 기부를 할까

지금까지 즐거운 직업을 통해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쓰면서 행복한 법을 배울 차례다. 그는 증여를 하나의 모델로 제시했다.

"기부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면 그것을 모두가 공유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돈 버는 사람 맥 빠지게'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인 거니까 기부하는 사람을 비난해야죠. 그런데 왜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내 칭송할까요?"

그는 "사람들이 증여를 하는 이유가 인간 본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사람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화폐, 재물 등의 물질적 자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오랜 지혜를 가지고 현재에 이르렀는데, 증여가 받쳐주지 않으면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증여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부가 좋은 것임을 알아도 가난한 사람들은 '나는 나눠줄 것이 없다'며 기부를 꺼린다. '가난한 사람은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한 아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눈을 깜박이는 것밖에 못하는 아이가 온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봤어요. 눈으로 대화하며 가족에게 행복을 전하는 아이였죠. 여러분은 가족에게 이 아이보다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나요?"

기부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기부천사'를 훌륭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부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돈이 많아야 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탓에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 풍요'도 '정신적 풍요'도 누릴 수 없게 만든다고 그는 지적했다.

"사람들은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기 위해서도 부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면 부자가 물질적·정신적 고상함을 동시에 독점할 수 있게 되는, 가장 모순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죠.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증여(기부)해야 됩니다."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학생들.
 강연을 듣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학생들.
ⓒ 주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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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자가 기부를 통해 덕을 쌓았다면 하나(돈)를 주고 하나(덕)를 얻은 것이기에 칭송 받을 이유가 없다"며 기부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했다. 기부를 통해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증여"라고 말했다.

"인디언 속담에 '선물을 받을 만큼 부자도 없고 선물을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어요. 누구나 증여할 수 있어요. 남자친구가 꽃반지를 줬다고 욕한다면 당신은 자본의 논리에 빠진 거예요."

재물의 저장은 곧 죽음

아마존의 '조에족'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거리를 구한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날에도 하루치 이상은 잡지 않는다. 오늘 많이 잡으면 내일 잡을 물고기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내일을 생각하는 단기전략처럼 보이지만 후대까지 생각한 '초장기전략'이다. 그들은 저장보다는 매일 자연에서 얻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원시 부족은 '저장은 죽음'임을 알았지만 현대 사람들은 자본을 무한히 저장한다.

"허생전에서 최고의 부자 변씨는 죽을 때 재물을 전부 흩어버렸죠. 그 후 변씨 집안사람들은 부자는 아니지만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고 나와요. 변씨가 자식들을 위해 미리 대가를 치른 거죠. 하지만 현대인은 이 무한 저장 때문에 엄청난 병을 짊어지고 살죠."

돈의 저주 때문일까? 우리는 재벌가 2~3세의 자살소식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이 1조를 갖기 위해서는 수많은 파산이 있는 것"이라며 "1조 원 속에는 수백, 수천 명의 비탄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식에게 유산을 왕창 물려주는 것은 저주를 퍼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 지난해 12월 중순에 한 강의 내용입니다.
-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고미숙, #저널리즘특강, #저널리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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