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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대 나는 반미작가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반미를 휴업했다. 궁극적인 적은 그들이 아니라는 것과 이제는 중국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전쟁을 돌리는 방앗간이고 나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새였다.

 

2월 3일 저녁. 나는 LA 한인 식당에 있었다. 오래전 통일운동을 했던 청년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있을 때, ABC 저녁 뉴스가 시작됐다. 지명도가 높은 여성 엥커 다이언 소여가 전쟁리포터를 불러 이스라엘과 이란간의 긴장 상황을 물었다. 리포터의 말은 이러했다.

 

"이스라엘은 아직  이란에 대한 폭격을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달 안에 핵시설 장소를 폭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이스라엘에 동조할 것 같다."

"전쟁이 터질 것이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이란 손에 달려 있다."

 

한 청년이 2월 4일 반전 시위가 웨스턴 월셔 지하철 종점 앞에서 열린다고 일러줬다.

 

시위는 정오에 시작했다. 커다란 천에는 '이란 전쟁과 암살에 개입하지 말라' '경제제재를 하지 말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었고, 한 옆에서는 소름끼치는 장면이 퍼포먼스로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의 청년 고 김선일씨가 당했던 그 장면이었다. 시위대들이 원을 돌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똑같은 거짓말 똑같은 계획 이란 전쟁을 하지마라!"

"정의 없이 평화도 없다. 미국은 중동에서 물러나라!"

"이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인들이여 모두 일어나서 싸워라!"

"사람들이 뭉쳐 전쟁을 끝내자."

 

마침 보름이었다. UCLA 한국 학생들이 풍물을 치며 지신밟기를 하고 가자 원주민들이 전통복을 입고 나타나 원을 돌며 춤을 췄다. 지신밟기처럼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행위였다. 구호가 계속됐다.

 

"헤이, 오바마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이란도 주권 국가다!"

"새로운 전쟁 시작하지 마라."

"누가 진정한 적인가?"

"1퍼센트, 월 스트리트, 너희들이다!"

"오일전쟁, 인종전쟁 그만두라!"

 

이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엔서 LA'였고 리더는 젊은 백인이자 변호사였다. 그는 9.11 테러가 났을 때 반목의 악순환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단체를 결성했고, 연사로 등장한 연장자를 가리키며 수문장 변호사라고 말했다.

 

시위를 지능적으로 이끌기 위해, 다시 말해 잡혀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러 변호사를 현장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연단에 선 변호사의 말이 들려왔다.

 

"세계 60개국이 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너희들을 보고 있다!"

 

원주민들 향을 피우고 동서남북을 향해 축원을 시작했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자,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자, 마지막으로 하늘을 우러러 외쳤다.

 

"인간은 모두가 같다! 같은 곳에서 와서 같은 곳으로 간다.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일 이제 제발 스톱하라!"

 

원주민들 행사가 끝나고 노연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시위대에게 물었다.

 

"미국 국방부는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시민을 마음대로 구금하고 고문해도 좋다는 법조항이 그것이다. 시민들이 그 권한을 주었는가?"

 

시위대들이 "노!"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유엔헌정에는 합법인가?"

"노!"

"부시가 이락에 전쟁을 일으킬 때 핵무기가 있다고 했다. 정말 핵무기가 있었는가?"

"노!"

 

"그는 속죄를 했는가?"

"노!"

"국가의 돈은 누가 주인인가?"

"시민이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학교와 교육, 직업을 위해 써야한다."

"그렇다. 국가는 시민의 돈을 횡령해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그때 경찰차들이 달려와 주위에 진을 쳤고, 늙수그레한 보안관이 다가와 변호사에게 "여긴 개인장소다. 주인이 신고를 했으니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위대들이 받아쳤다.

 

"누구의 도시냐?"

"우리의 도시다!"

 

노 변호사는 매우 노련했다. 그는 공공장소인 도로 가쪽으로 옮겼고 시위대들도 구호를 외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움직이는 사람은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법이었다.

 

4,50대쯤 돼보이는 한국 남성이 내게 다가와 곱지 않게 물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오? 기자요?"

 

통역을 맡아주었던 청년이 얼른 아니라고 대답해줬다. 그가 내 수첩과 녹음기를 뺏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정보원은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태그:#반미작가,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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