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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지난해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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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이양 늦추는 군부... 청년세력, 대규모 시위 예고

25일은 이집트혁명 1주년이다. 딱 1년 전, 튀니지에서부터 불어 온 민주주의 혁명의 바람을 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고, 30년간 장기집권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하야했다.

그 이후 사회 곳곳에 새로운 이집트를 향한 희망이 퍼져나갔고 군 최고위원회가 임시정부의 역할을 맡아 정국을 장악하면서 지난 1년간 이집트를 이끌어왔다.

군 최고위원회는 25일을 기존의 '경찰의 날'이 아닌 '혁명기념일'로 지정하여 국가공휴일로 쉬는 동시에 시민혁명 1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민간 정부의 기능이 살아나는대로 권력을 이양하고 군으로 돌아가겠다는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권력이양을 늦추고 있는 군부를 향한 불만이 만만치 않아 이번 혁명기념일을 두고 군부와 청년세력 간에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

1.25 혁명 청년위원회는 타흐리르 광장, 밀리터리 하키 스타디움, 카이로 스타디움 등 세 곳에서 혁명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고, 4.6 청년운동 등 다른 단체들도 군 최고위원회의 권한을 얼마 전 총선에서 선출된 하원의장에게 이양하고 향후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타흐리르 광장에서 진행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군 최고위원회에서는 이미 약 2주일 전부터 혁명의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의 정부 청사 옆에 엄청난 크기의 돌들로 성벽을 쌓아 차량과 사람의 진입을 막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14일 엘 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군부의 집권 지향을 비판하고 청년들이 단결하여 다시 혁명의 목표를 되찾자고 밝힌 이후 이를 계기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시민혁명 1주년을 계기로 한 반군부시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통 10파운드 하던 LPG가스가 100파운드까지 치솟아"

지난 1년간 이집트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혁명이 성공하면 당장이라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았던 기대도 잠시,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과 치안 부재의 상황에 노출되어 불안해하고 있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샤크르(39, 남)는 "지난 혁명이 사람들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은 좋지만 깡패와 도둑은 더 많아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경찰이 사라지고 그나마 있는 경찰들도 예전과 같은 권위가 없으니 우리같은 서민들은 이제 각자의 안전까지 걱정해야 한다"며 "투표도 반드시 주소지로 되어있는 고향에 가서 해야 하는데 나같이 직장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사실 지난 번에 투표도 하지 못했다"고 지난 선거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경제적인 것은 어떠냐고 물으니 "물가가 너무 올라 정말 힘들다. 가스값도 너무 올랐고, 시장에 가도 오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법대생 사라(23, 여)는 "지난 혁명을 통해 이집트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도 많이 드러났다. 무조건 자기의 의견만 옳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며 "혁명이 끝나도 사실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있고,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집트 재무성 장관은 가스와 전기 사용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발표했으며, 지난 며칠간은 휘발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차들이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서 교통 체증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틈타 곳곳에서 불법으로 건물을 신축하는 일이 많은데 이를 겨냥한 것인지 정부에서는 철강, 시멘트의 가격을 최고 30% 이상 인상하겠다는 발표도 함께 내놓았다.

물가 폭등의 일례로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LPG 가스는 한 통에 10파운드 정도 하던 것이 가스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지난 주에는 한 통에 80~100파운드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20~30파운드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카이로 자하라 지역에서는 국가에서 가스를 관리하는 업체 앞에 각 집에서 가스통을 들고 나와 줄을 선 1백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가스를 충전해 돌아가기도 하였다.

범죄 발생률도 증가했다. 혁명 이후 오토바이가 크게 늘었는데 오토바이를 이용한 가방 날치기나 추행·폭행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집트 시민들도 해가 지면 외출을 삼가고 있다. 주로 외국인들이 생활하는 마애디 지역의 번화가인 로드 나인도 예전과는 달리 밤 9시가 넘으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다.

지난해 2월 11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다 희생된 이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다.
 지난해 2월 11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다 희생된 이들의 사진 앞에 앉아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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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 다수 차지한 무슬림, 상원까지?

군 최고위원회가 권력 이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치안관리도 소홀하고 물가도 잡지 못하자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1, 2월 중으로 진행될 상원의원 선거와 6월 쯤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몰려있다.

지난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와 정의당이 전체 의석의 47%를 차지했고, 강경 무슬림인 살라피의 누르('빛'이라는 뜻)당은 25%를 차지했다. 두 정당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하원의석의 72%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향후 정국 운영에 종교적인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정치에 끼치는 종교의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라는 "정치는 정치일 뿐인데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지금 선거에서 무슬림 형제단과 살라피가 압도적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와는 반대로 중장년층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고 그래도 살라피보다는 무슬림 형제단이 낫다는 의견이 많다. 엔지니어로 일하다 퇴직한 무함마드(82, 남)는 "이번 선거는 내가 본 선거 중에 가장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국회에 가면 좋겠지만 아직 뽑을 만한 인물이 무슬림 형제단이나 살라피 쪽 외에서는 찾기 힘들다"며 "그들도 종교와 정치 사이에서 현명하게 처신할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원의원 선거는 전체 100석으로 구성되고 상원의원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한번 헌법개정안 국민투표가 있을 예정이다. 이미 거리 곳곳에는 하원의원 선거 포스터가 붙어있던 곳에 상원의원 선거 포스터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상원의원 선거 역시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세력의 집권이 확실시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군부, 대선마저 양보할 순 없다?

헌법개정안 국민투표 후에는 대통령 후보 등록이 4월 15일로 예정되어 있고 6월 중에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는 군부의 영향을 눈여겨 보고 있다. 지난 1952년 나세르 혁명 이후 모든 대통령이 군 출신이었고 현재의 군 최고위원회도 권력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군부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혁명기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혁명을 기념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이 될 것인지, 다시 한번 이집트 사회가 혼란 속으로 들어갈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태그:#이집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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