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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항 풍경. 뒤로 보이는 다리가 고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삼호교다.
 거문도항 풍경. 뒤로 보이는 다리가 고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삼호교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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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끝자락 거문도 가는 길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1월 10일). 여수여객선터미널로 향한다. 섬으로 가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터미널로 들어서니 아침 일찍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거문도 가는 표를 사니 여유가 있다. 거문도 들어가는 교통편이 다양하지 못하다보니 배를 놓치면 섬에 들어가는 계획을 바꿔야 한다. 들어가서 하룻밤 잘 계획이 아니라면.

거문도. 첫 어감은 검은 섬? 아니면 클 거(巨)자가 들어 있으니 아주 큰 섬? 아니다. 거문도는 작은 섬이다. 옛날 이름은 세 개의 섬으로 되어 있어 삼도(三島)라 불렀다. 양쪽으로 동도와 서도가 있고, 가운데 작은 섬, 고도(古島)가 있어 삼도다.

거문도라는 이름은 구한말 러시아 남진을 견제하려는 영국군이 거문도를 무단 점령하면서부터 유래한다. 영국군에게는 동양의 작은 나라 작은 섬은 미개인들이나 살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을 테지. 하지만 생각과 달리 글자를 읽고 학문을 논하는 섬사람들을 보고 큰 학자가 있다고 했단다. 그래서 거문도(巨文島)라 했다나?

배는 고흥 나로도를 거쳤다가 다시 여수해역으로 들어와 손죽도를 지나고 초도를 지난다.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 위에 떠있는 모습이 색다르다. 큰 섬은 넉넉하고 작은 섬은 올망졸망 여유롭다. 배가 거문도로 들어서더니 서도 선착장에 닿는다. 여객선 종점은 고도다. 고도를 보통 거문도라 부른다.

사슴을 닮은 섬에 또 다른 등대

녹산등대를 가려고 거문도까지 가지 않고 서도 선착장에서 내렸다. 거문도는 거문도등대가 워낙 유명하지만 거문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녹산등대도 또 다른 볼거리다. 녹산(鹿山)은 말 그대로 사슴을 닮은 산이다.

거문도는 사슴 세 마리가 있는 모양이다. 서도는 사슴의 암컷, 동도는 사슴의 수컷, 고도는 사슴새끼 모양이란다. 서도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은 사슴의 머리 모양이래서 녹산이라고 부른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녹산 끝에 등대가 우뚝 섰다. 녹산등대는 1958년 처음 불을 밝힌 무인등대다.

녹문정에서 바라본 서도. 마을 풍경과 어울린 섬 풍경이 아름답다.
 녹문정에서 바라본 서도. 마을 풍경과 어울린 섬 풍경이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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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까지 걸어가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마을을 기웃거리면 화살표가 있는 작은 표지판을 만나고 녹산등대 가는 길을 만난다. 올라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보면서 걸어보려면 서도초등학교 앞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서도초등학교는 역사가 깊다. 100주년 기념탑이 섰는데 이것은 2005년에 세웠다고 쓰여 있다. 이런 외딴 섬마을에 100년 전에 학교를 세운 것을 보면 거문도라는 이름이 그냥 붙지는 않았나보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과 연결된 나무데크 길을 걸어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바다도 운다. 하연 속살을 뒤집으며 보챈다. 바람이 차다. 겨울 바닷바람이 싫지만은 않다.

수평선과 마주하며 걷는다. 거친 섬에서 살아야 했던 옛사람들은 밭에도 돌담을 쌓았다. 돌담에 둘러친 밭에는 그물망을 덮었고 그 아래는 거문도 쑥이 쑥쑥 자라고 있다. 남쪽의 포근함을 느낀다. 거문도는 강화도와 더불어 쑥이 유명하다. 거문도 사람들은 쑥을 정성들여 키운다.

녹산등대 가는 길. 오른쪽이 인어조형물이고, 왼쪽 끝이 녹산등대다.
 녹산등대 가는 길. 오른쪽이 인어조형물이고, 왼쪽 끝이 녹산등대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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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 가는 길에 만난 풍경. 건너편 섬이 동도다.
 녹산등대 가는 길에 만난 풍경. 건너편 섬이 동도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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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는 녹문정(鹿門亭)이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에는 이생진 시인의 <녹산등대로 가는 길>이란 시가 걸렸다.

바닷물에 주기[酒氣]가 있었나보다
나 술밭[酒田]에 누워 있을 테니
깨우지 말라
일으켜 세우지도 말고
묻[埋]지도 말라
주기가 있었나보다

거문도에 인어공주는 없다

전망대에서는 서도의 긴 섬이 늘어지게 보인다. 장쾌한 바다는 하늘을 빨아들이듯 깊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억새밭이다. 억새 줄기는 바람에 꺾어지고 없다. 잔잎들만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 잎들이 눕는다. 바다를 향해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갈대는 바다로 가고 싶은가 보다.

녹산등대 가는 길 풍경. 억새가 바람에 눕고, 파도는 흰 속살을 보여준다.
 녹산등대 가는 길 풍경. 억새가 바람에 눕고, 파도는 흰 속살을 보여준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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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 가는 길에서 만난 긴 의자. 앉고 싶다.
 녹산등대 가는 길에서 만난 긴 의자. 앉고 싶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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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스쳐간다. 산책로는 박석을 깐 길로 바뀌고 인어상이 있는 길로 이어진다. 웬 인어? 이곳도 짝퉁을? 달을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동화책에 나왔음직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짝퉁은 아니다. 인어는 아주 아리따운 우리네 처녀 모습이다.

신지끼? 그럼 안내판도 신지끼라고 하지. 꼭 '인어해양공원'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텐데. 인어라는 이름표를 다는 순간 아름다운 거문도 전설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인어해양공원에 있는 인어조형물
 인어해양공원에 있는 인어조형물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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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인어인 신지끼.
 거문도 인어인 신지끼.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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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끼'라 불리는 거문도 인어는 하얀 살결에 길고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다. 주로 달 밝은 밤이나 새벽에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내어 어부들을 태풍으로부터 구한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온다.

바다만 바라보는 외로운 등대

등대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걷는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외로운 길이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하얀 기둥을 보며 아무생각 없이 오른다. 양 편으로 키 작은 동백이 군데군데 피었다. 동백은 얼었다. 빨간 꽃잎 속에서 노란 수술이 추위에 떨고 있다.

녹산등대 가는 길에 피어있는 동백
 녹산등대 가는 길에 피어있는 동백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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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 가는 길
 녹산등대 가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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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는 하얀 기둥이다. 바다로 솟은 언덕 끝에 세워서 더욱 높게 보인다. 바다 끝에 서 있는 외로운 등대의 모습은 주변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등대에 서면 바다는 여전히 멀다. 긴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의자에 앉으면 걸어왔던 길이 보인다. 긴 의자가 바다를 향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파도는 여전히 하얀 속살을 보이며 등대로 달려온다. 파도는 등대에 미치지 못한다. 등대는 여전히 외롭다. 바다는 등대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가 없다. 그 외로움에 나 하나 더한다. 나도 외롭다. 등대를 찾아 섬 끝까지 왔는데. 이생진 시인은 <녹산등대로 가는 길>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민감한 피부
바다가 온몸에 두드러기를 일으킨다
고독은 일종의 알레르기성 질환인가

덧붙이는 글 | 거문도 가는 여객선은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7시40분에 출발한다.
요금은 편도 36,600원이다.
녹산등대를 가려면 서도에서 내려야 한다.
서도선착장에서 녹산등대를 돌아오기까지는 한시간 정도 걸린다.
섬내 이동은 도선이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태그:#거문도, #녹산등대, #신지끼, #등대, #녹산등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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