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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초기 작품들. 남관 '철야경자' 유채72×90cm 1953(오른쪽)
 50년대 초기 작품들. 남관 '철야경자' 유채72×90cm 1953(오른쪽)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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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에서 서양기법에 동양정신을 용해시킨 추상 1세대 한국미술의 선구자인 남관(南寬) 탄생 100년을 기리며 '念.像.幻想(념.상.환상)'전이 1월 15일까지 환기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에는 내면의 무한한 깊이가 느껴지는 유화 80여 점과 드로잉 70여 점 등이 전시된다.

그의 회고전이 환기미술관에서 열리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해방 후 1947년 남관과 김환기 선생은 당시 예술인들이 삼삼오오 단체와 모임을 만들 때부터 인연이 닿았다. 둘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화가로 함께 활동했다. 그 후에도 '도쿄 비엔날레'를 같이 둘러보고 귀국한다.

남관의 작품에는 3년간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폐허와 절망 속에서 본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토막 나서 뒹구는 팔다리, 주검 위로 쏟아지는 햇볕, 전란으로 우왕좌왕하는 군중의 모습이 주는 상흔(트라우마) 등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와중에도 남관은 피어나는 폐허의 미까지 놓치지 않았다.

1950년대, 한국미술에 모더니즘을 심다

남관 I '파리야경' 캔버스에 유채 100×18cm 1955
 남관 I '파리야경' 캔버스에 유채 100×18cm 1955
ⓒ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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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서양미술의 추세에 받아들이고 소화해낸 건 1950년대 중후반부터다. 남관은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는 토착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삼아 내밀한 정서가 풍부한 색감과 두터운 마티에르(재료, 재질감)로 현실적인 서정성을 표현했다.

1955년 그런 와중에 남관은 누구도 엄두를 못내는 파리 진출을 감행한다. 이런 결심이 선 것은 1954년 10월 도쿄 비엔날레 본 파리 '살롱 전'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는 기존의 화풍에 만족할 수 없었다. 추상과 구상을 넘어 정형적인 것보다는 비정형인 것, 의도적인 것보다는 우연적인 것을 추구하며 미술의 본질로 다가간다.

<파리야경>은 낯선 파리에서 그린 초기작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확 바꾸는 힘이 있다. 1950년대라 그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당시로는 심혈은 기울인 첨단의 그림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미술의 선각

환기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이주헌 미술평론가
 환기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이주헌 미술평론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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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장에서 이주헌 미술평론가를 우연히 만나 간단한 평을 부탁했다. 이주헌 평론가는 "그분은 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추상의 선각자"라며 "지금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지나 미술시장에 작품이 잘 나오지 않아 그렇지만, 우리나라 추상미술을 자리매김하는데 큰 공로를 세우신 대단한 분"이라고 설명한다.

이주헌 평론가는 문자추상을 하신 이응로 화백과 비교하면서 "이응로 선생과 남관 선생은 비슷한 문자추상을 했지만, 이 화백이 동양화에서 시작했다면 남 화백은 서양화에서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며 "남관은 서양의 현대추상과 동양의 정서를 융합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김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응로와 남관은 각각 일가를 이룬 분으로 요즘작가에게 그들의 미감이나 색조가 확 쏠리진 않아도 넘볼 수 없는 조형의 개척자"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두고두고 평가 받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태곳적 우주의 시원인 '천지인' 담다

남관 I '태고(太古)' 캔버스에 유채 195×130cm 1967
 남관 I '태고(太古)' 캔버스에 유채 195×130cm 196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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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남관의 첫 파리생활은 말할 수 없이 고단했지만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시적 분위기가 넘치는 문자추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추상에 몰입한 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구상으로만 다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반발심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또한 작가의 체질상 현실을 노골적으로 폭로하듯 드러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관은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권위 있는 '5월 살롱 전(Salon de Mai)'에 초대됐고 마침내 1966년 프랑스의 망통 비엔날레 회화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태고(太古)>는 망통 상을 받은 직후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지 화폭 안에 자신감이 넘친다. 한국인의 우주관인 '천·지·인'을 바탕으로 우주 탄생의 기원을 찾고 있다.

센 강변의 야경 속 미묘한 불빛

남관 I '센 강변' 캔버스에 유채 184×278cm 196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관 I '센 강변' 캔버스에 유채 184×278cm 196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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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남관은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파리야경을 가로질러 흐르는 센 강을 앞에 두고, 고난도 테크닉을 발휘해 야경 속의 센 강변의 불빛과 그림자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쪽빛으로 처리한다. 어찌 보면 서양의 조형과 동양의 마음이 만나는 것 같다.

'데생(그리기)'이 아니라 '콜라주(붙이기)'가 주가 되는 이 작품은 당시로 봐서는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칸딘스키처럼 음악적 선율이 느껴지고 보이지 않는 내재율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겪은 전쟁의 공포와 악몽이 무의식 중에 깔려 있다.

여기서 남관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그는 1968년 프랑스에서 귀국했다. 다음해인 1969년, 그는 제17회 국전 서양화심사위원장을 맡게 되는데, 입상작 선정 투표가 사전 담합에 의한 돌려먹기 식으로 흘러가자 심사도중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해 그의 예술가적 고집과 선비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격한 몸짓으로 강력한 개성과 색채 추구

남관 I '가을인상'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1970
 남관 I '가을인상'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197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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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은 한 주간지에서 한국 화단을 꼬집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남관의 작품 <가을인상>을 보면, 이 작품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무슨 주의, 무슨 파에 개의치 않고 양심적 자기 세계를 개척하고 구축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든 추상이든 간에 안일하게 남일 것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뚜렷한 개성 없으면 창작품이라 할 수 없다."

<가을인상> 속 세계는 전쟁의 상흔이 많이 아문 시기인가보다. 가을의 분위기는 우아하고, 찬란하고, 화려하고, 황홀하다. 액션 페인팅처럼 작가가 작품을 하면서 보여준 격한 몸짓이 감지된다. 어떻게 보면 웅비하는 기상을 잘 묘사한 고구려 벽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동서양 넘는 보편적이고 원시적 미 추구

남관 I '흑과 백의 율동' 캔버스에 유채 122×225cm 1981
 남관 I '흑과 백의 율동' 캔버스에 유채 122×225cm 198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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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관객의 눈길을 확 끌어 잡는 <흑과 백의 율동>을 보자. 남관은 "나는 '내가 한국인이니까 동양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한다"며 "나는 동양적인 것보다는 세계적인 것, 세계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는 남관이 말한 요소가 많다. 묵화 같으나 동양적이지 않다. 오히려 파울 클레가 연상되니 재미있다.

기호화된 천태만상의 얼굴은 천진난만하고 매우 해학적이다. 마치 세계 민속박물관에 들러 여러 나라의 탈, 부적, 유물을 보는 것만 같다. 보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세상에 대한 동경을 이렇게 생기 넘치는 선묘로 그린 것인가. 그는 70대에 들어서도 동서양의 구분 없는 보편적 세계를 추구한다.

추상도 아니고 구상도 아닌 나만의 '남관파'

남관 I '흑백상' 유채 265×720cm 1984
 남관 I '흑백상' 유채 265×720cm 1984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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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그의 대작인 <흑백상>을 보자. 남관이 화력 50년을 넘기고 그린 그림이어서 그런지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남관만의 독자성을 거침없이 발휘했다. 이 작품에는 그가 터득한 발묵(潑墨·엷은 먹그림에 짙은 먹을 더해 그리기)이나 드리핑(뿌리기), 콜라주(붙이기), 데 콜라주(떼내기) 등 동서양의 기법이 총동원됐다.

<흑백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동양화도, 서양화도, 추상도, 구상도 아니다. 다만 가장 원초적 형상을 독특한 조형기호로 변형시켰을 뿐이다. 옛 유물이나 고대 상형문자를 떠오르게 하고 인류가 남긴 발자취와 흔적과 유산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남관은 이 작품에 해설이나 붙이듯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이렇게 정의했다.

"난 정신세계에서 사실적인 방법을 추구한다. 때문에 내 그림은 추상적이고 편을 드는 것도 비구상으로 분류하는 것도 불만이다. 동양화, 서양화 구분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사실 나는 어느 파에서 속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남관파'다"

말년에 현란한 색채로 삶의 희비 노래

남관 I '봄날의 피에로'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89
 남관 I '봄날의 피에로' 캔버스에 유채 72×90cm 1989
ⓒ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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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봄날의 피에로>를 보자. 피에로는 작가 자신이고 봄날은 삶의 희망과 환희를 노래한 것이리라. 남관은 1984년 겨울 그의 일기장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하나의 마약"이라며 "몸이 아프고 배가 고파도 화실에만 들어가면 잊게 된다"고 적은 바 있다. 이어 "그림에 몰두하다보면 모든 것을 잊는다"고 고백한다. <봄날의 피에로>도 그런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그린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신라금관이나 소름 돋게 하는 해골 형상도 연상된다. 남관이 죽기 1년 전 작품이라 그런지 우여곡절 많은 삶의 희비극을 담으려 한 것 같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세계에 대한 강력한 염원이 현란한 색채에 담겨 온 화면을 채운다.

남관은 통속적인 미와는 거리가 먼 화풍 때문에 당시 국내화단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작가적 신념과 자존심으로 굽히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한다. 그러던 중 마침 그의 작품이 일본 동경 아트 엑스포가 전시되고 있었던 1990년 3월 30일, 세브란스병원에서 79세로 타계한다.

남관((南寬), 그의 생애와 그의 시기

전시장에 걸린 남관사진
 전시장에 걸린 남관사진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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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생애와 시기구분] 남관(1911-1990) 화백은 1911년 경북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경향을 네 시기로 나눈다.

<제1기> 1925년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5년 동경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후나오까상(船岡賞) 등을 수상했다. 일본에서 보낸 이때를 초기구상(1925-1945) 시기로 본다.

<제2기>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반추상(1945-1954) 경향을 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하다. 한국전쟁 중 종군화가로 참가하다 전쟁의 비참함에 큰 충격을 받는다.

<제3기> 1954년 10월 파리에 유학하여 망통(Menton) 회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일종의 시적이고 상징적인 문자추상(1955-1968) 시기라 할 수 있다

<제4기> 1968년 귀국 후 국전 서양화 심사위원장 맡고 홍대에서 교수도 역임하다. 유럽과 서울을 오가는 기호추상(1968-1990) 시기다. 1990년 3월 30일 별세, 같은 해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이 추서된다.

[개인전] 1948-1950년 동화백화점 화랑, 1954년 도불기념전(미도파화랑), 1966년 신세계미술관, 1972년 현대화랑, 1974년 신세계미술관, 1977년 진화랑, 1979년 현대화랑,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1983년 국제화랑, 1988년 갤러리현대 국내 초대전 참가 외 국내외 개인전 120여 회.

[소장처] 토리노국제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파리국립현대미술관, 룩셈부르크국립박물관, 프랑스문화성, 국립현대미술관 등.

덧붙이는 글 | 환기미술관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1길 23, 누리집(http://whankimuseum.org)
관람료: 성인 8000원 학생 5000원
문의 전화:02)391-7701,7702
남관 누리집 : http://namkwan.com



태그:#남관, #김환기, #추상화, #이주헌,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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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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