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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서의 70여 일, 성과를 설명하는 홍미영 부평구청장
 달동네에서의 70여 일, 성과를 설명하는 홍미영 부평구청장
ⓒ 홍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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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 산기슭에 만들어진 마을. 낡고 허물어져가고 있어 걱정 가득했던 십정2지구가 이제 작은 산을 하나 넘었습니다.

'십정동 달동네' 하면 인천 부평에 사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1970년대부터 이곳저곳에서 밀려온 철거민들이 야산에 흙벽돌 집을 짓고 모여 살아온 곳이니까 역사가 짧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근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싼 방값에 서로 어울려 살기 편하다고 들어와 살아서 한때는 동네가 북적북적 했다지요. 달동네 한복판에 있던 (구)시장은 특히 월급날에는 재미가 톡톡했습니다.

비만 오면 진흙탕길이 되던 동네 골목길이 포장되고, 하수도가 정비되고, 밤에만 나오던 수돗물이 낮에도 걱정 없이 나오게 되면서 제법 사람 사는 동네 모습을 갖추어가던 1990년대 초, 주민들의 고민은 10평 안팎의 집이 좁고 비가 새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자식 공부방 한 칸 내어도 어느새 구청공무원들이 무허가 건물이라고 때려부수고, 비샌 구석 수리하는 길에 마루 한 칸 넓혀도 역시 철거당했습니다.

애초 지어진 철거민들의 무허가 가옥은 양성화해주었지만 그 이상 건축하는 것은 정식 허가를 받고 해야 된다는 거지요. 거의 매일 골목마다 집 부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1천수백여 가구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불량주택들을 철거당하지 않고,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새 집으로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즈음 정부는 이런 무허가 불량주택개선 정책으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제시했고, 주민들은 많은 회의 끝에 1995년에 이 사업에 동의했습니다. LH공사(이하 LH)의 전신인 한국주택공사(이하 주공)가 시행사였는데 주공은 십정2지구는 사업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국공유지 30% 무상 제공과 기반시설비 수백억 원을 지원받는 주공이 이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느 업체가 나서겠습니까. 그럼에도 십정2지구 사업은 1999년 실효(효력을 잃음)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주민들은 다시 중앙정부에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요청하여 2003년에  절차를 처음부터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8년이 또 걸렸습니다. 그사이 집과 축대는 금 가고 주저앉고 하수도나 도로, 골목길 계단 또한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행정에서는 곧 철거될 지역이니 하수도나 도로 등 기반시설 보수에 더 이상 예산을 쓰지 않았고, 동네의 슬럼화가 가속화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LH의 발표 이후, 70여 일간 기거하던 인천 부평구 십정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내에 위치한 해님공부방을 나오는 홍미영 부평구청장. 마을 주민들이 짐을 함께 옮기고 있다.
 LH의 발표 이후, 70여 일간 기거하던 인천 부평구 십정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내에 위치한 해님공부방을 나오는 홍미영 부평구청장. 마을 주민들이 짐을 함께 옮기고 있다.
ⓒ 홍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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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집 무너지는데... 무력한 자신이 부끄러워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불량주택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철거예정지역에서 불안해하며 힘들게 사는 형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네에서 단 몇 달 만이라도 살아본 사람은 알 겁니다. 값싸고 편한 도시가스를 쓰고 싶어도 철거될 동네라 설치도 안 되니 몇 배나 비싼 석유를 쓰거나, 그 돈이 없으면 산비탈이라 배달도 잘 안 되는 연탄을 써야 하는 현실을 말입니다.

게다가 붕괴위험 가옥에 문제가 생기면 멀쩡한 옆집나 아랫집에도 피해가 가게 되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민들은 늘상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간절하게 정부와 LH의 주거환경개선사업 진행을 애타게 기다려왔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올해 8월 초 결국 집 한 채가 무너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당시 구청에서는 비상대책으로 예비비를 지출하며 대처했지만, 앞으로 유사한 재난이 계속될 수 있다는것이 문제였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LH는 사업성을 운운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대책이 내놓지 않았고, 결국 구청장인 제가 그 동네로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청장으로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미안했고 스스로도 무력감에 부끄러웠습니다.

8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70여 일간 살았면서, 막바지 여름과 가을의 밤들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하루종일 구청 일에 매진하다 밤 9시, 10시 이후에야 십정2지구 허름한 동네 공부방으로 퇴근했습니다. 샤워는커녕 발 씻을 공간도, 부엌도 없는 거처에서 "오늘 밤도 무사히…"를 기도하고 벌레에 물려가며 잠을 청했습니다.

서늘한 흙벽돌 집에서 기름이 아까워 보일러를 끄고 자다 새벽녘 외풍에 몸을 떨다가 찬물에 머리를 감고 출근하면 아침부터 감기 기운을 느낍니다. 약을 먹고 구청 집무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버텼습니다. 그런 와중에 혼수도 못 챙겨준 채 딸자식 혼사를 치르고, 남편 생일엔 집에서 저녁밥만 먹고 십정동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돌고 출근했습니다.

주민들도 같은 마음으로 불안해했는데 그래도 구청장이 밤마다 동네에 들어와 잠을 자면 한결 안심합니다. 또 구청장이 기거하는 덕분에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동네 사정들을 행정부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언론에도 보도되었다며 속 시원해 합니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십정동 달동네를 떠나는 날. 이사를 돕는 주민들.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십정동 달동네를 떠나는 날. 이사를 돕는 주민들.
ⓒ 홍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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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환경개선 약속한 LH...주민들의 따뜻한 배웅

10월 28일 LH는 11월 중 지장물조사 및 그 이후의 대략 일정을 공식회의를 통해 제안했고 그것은 바로 확정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마지막 날, 주민 추진위에서 구청장실로 찾아와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달라"는 인사를 했고, 그날 저는 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십정동에서 나왔습니다.

건넛집 행복이네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두 손을 꼭 잡고 수고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느 날 밤 술 마신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치던 때, 할아버지는 혼자 자던 내가 걱정되어서 공부방 문 밖에 앉아 그 사람이 떠날 때까지 지켰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붕괴위험 가옥으로 대피명령을 받아 이사한 은정 엄마는 챙겨주어 고맙다고 눈가를 적십니다. 외부 손님들 방문때마다 동네 사정을 설명하던 승아 아빠는 쌍화탕 한 박스를 가져와 손에 쥐어주고, (구)시장 남도방앗간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고 달려옵니다.

따스한 가을볕 아래 주민들의 정겨운 배웅을 받으며, 언제든 위험할 때 다시 달려오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렇게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낡은 집들의 파노라마 같은 동네이지만 열심히 살고 더불어 사는 흔적은 동네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고 정감 있는 길거리 벽화도 좋지만, 고무함지며 스티로폴 박스에 담겨 싱싱하게 자라는 상추, 파, 분꽃 등은 부지런한 삶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무너져가는 비탈길에 넘어질까 걱정해서 아랫집 아저씨들이 시멘트를 가져다 "더불어 함께" 보수해주었다고 고마워하는 윗집 할머니 말씀처럼, 십정동은 따뜻한 공동체 동네입니다.

동네 사는 이들 모두가 정부와 LH가 마련하는 안전하고 편안한 새 주거환경에서 지금처럼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홍미영 기자는 인천 부평구청장입니다.



태그:#부평, #홍미영, #십정동, #주거환경개선,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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