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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을 말리라'고 했다. 하지만 싸움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많고 많은 구경 가운데 싸움판 구경의 재미는 단연 으뜸이다. 하물며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싸움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똑같은 수의 공평한 싸움도 아니다. 13 대 133이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숫자의 싸움이다. 해보나 마나일 것 같다. 그러나 싸움의 결과는 누가 봐도 열세일 것 같은 13이 이겼다. 흥미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싸움이 펼쳐진 장소는 울돌목. 전라도 땅 해남과 진도를 가르는 바닷길이다. 물살이 세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도 물살을 가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곳이다. 열악한 조건에서 펼쳐지는 바다 위 싸움이다.

 

울돌목 위로 수상 오토바이가 물살을 가른다. 20여 대의 수상 오토바이가 물 위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볼거리를 선사한다. 포물선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스릴 만점의 묘기다. 싸움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이른바 본게임에 앞서 열리는 오픈 공연이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됐다. 왼편 저만치 바다에서 빨강색 깃발을 펄럭이는 한 무리가 나타난다. 언뜻 봐도 상당한 숫자다. 133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가운데 두 척의 배가 울돌목으로 나와 한 바퀴 돌고 간다. 싸움 전에 적의 동태를 살피는 정찰이었다.

 

정찰병이 돌아간 뒤 잠시 적막이 흐른다. 곧바로 함성이 울려 퍼진다. 133의 일제 공격이다. 펑-펑- 포탄이 하늘을 가른다.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13은 아직까지 고요하다. 겁을 먹은 걸까. 아니면 도망갈 궁리를 하는 걸까.

 

133의 진군에 거침이 없다. 금세 싸움판의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맞은편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13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고함소리 울려 퍼진다. 함성소리도 드높다.

 

"구루시마! 오늘 울돌목 바다가 너의 마지막이 되리라. 조선의 수병들이여! 진군하라! 진군하라!! 북을 울려라! 북을 울려라! 한 명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13의 공격이 시작됐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맞불 공격이 이뤄졌다. 판옥선에선 대포소리 요란하더니 133의 중심부를 파고든다. 나머지 병선은 육탄전을 벌인다. 13 대 133의 혼전이 한동안 계속된다.

 

그 순간 133의 두목이 쓰러진다. 두목의 패배를 안 133의 무리도 갈팡질팡한다. 한 둘씩 돌아서더니 무리지어 도망가기 시작한다. 줄행랑이다. 승리를 알리는 13의 북소리 드높다. 함성소리도 바다에 울려 퍼진다. 13의 승리였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14년 전, 1597년 정유년 9월 16일에 벌어진 싸움판의 재현이었다. 서해로 올라가려는 왜선 133척을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 13척이 무찌른 해상전투였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이른바 명량대첩이었다.

 

지난 1일 오후 펼쳐진 2011 명량대첩축제의 한 장면이다. 이 해상전투는 명량대첩축제의 메인프로그램으로 재현됐다. 2011 명량대첩축제는 지난 9월 30일 시작, 10월 2일까지 울돌목 일원에서 해상전투 재현과 약무호남 입성식, 만가행진, 씻김굿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펼쳐졌다.

 


태그:#명량대첩축제, #울돌목, #13대133, #강강술래, #해상전투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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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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