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 1-2층에서 10월 16일까지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의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 1950~)의 개인전이 열린다. 2004년 첫 내한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대형 발광조각(LED)과 대리석조각, 사진프린트 등 23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제니 홀저는 지난 30년간 과도한 정보홍수 속에서 개념이 없어진 현대인의 의사소통방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왔다. 70년대는 불법으로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면서 그의 '텍스트 아트(Text Art)'는 시작되었고 80년대부터 알려지면서 전광판에 그의 작품이 등장하게 되고 불특정 다수들에게 동시다발로 접근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80년대 광고언어 난무 속, 말의 힘 회복

 

80년대 그의 작품을 찾아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1985년 작품 하나가 있었다.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선보인 초대형전광판에 붙은 '사적 소유가 범죄를 낳는다'이다. 그때가 신자유주의가 무르익어가던 때인데 시대흐름과 무관하게 이런 작품이 나왔다니 놀랍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이런 구호가 정치인이 썼다면 공격을 받았겠지만 예술가의 발언은 역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그녀는 이렇게 뜻밖의 면모를 보이며 이념보단 사람들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호응 받는 공공미술이 된 것이 아닌가싶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제논 프로젝션'(1996-2011)

[제논 프로젝션]

 

21세기 정보의 홍수시대 그러나 시의 정신이나 진실보다는 현란한 광고로 거리를 점령하고 진위를 가리기 힘든 시대에 작가는 발상의 전환으로 오히려 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통해 텍스트의 힘을 되찾으려 한 의도이리라.

 

이걸 사람들은 흔히 제니 홀저의 '상투어(truism)'라 부르는데 그것은 때로 익숙한 것임에도 낯설게 느껴지고 구호처럼 보이면서도 신선한 시의 한 구절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한 중의적 해석도 가능해 그 진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홀저 상투어]

 

그녀가 즐겨 쓰는 글귀의 특징은 엉뚱함에 있다. "내 피부에서 당신의 냄새를 맡는다"나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날 지켜줘"는 다소 당황스럽지만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또한 그녀는 여성작가답게 "나는 여성이 죽은 곳에서 깨어난다(I am awake in the place where woman die)"와 같은 문구를 통해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폐해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전쟁을 고발하며 사회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짧은 텍스트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건축이라는 콘텍스트와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장소 특정적 미술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홀저를 대표하는 '제논 프로젝션'은 이렇게 1996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첨단전자기술의 발달로 그 기법도 다양화, 대형화된다.

 

1층, 작가의 글과 다른 시인의 글 차용

 

1층 전시장에는 피그먼트 사진프리트 13점과 대리석작품 6점이 배치되었다. 거기에 인용되는 글은 작가가 직접 쓴 글도 있고 다른 시인이나 작가의 글도 인용한 것도 있다. 처음엔 직접 글을 썼으나 나중엔 남의 글을 인용한다.

 

작가가 직접 쓴 '생존 시리즈(1983-85)'를 살펴보자. "문화 속에서/가장 지배적인 것을 이용하는 것이/가장 빠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의 힘이 사회를 가장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유로 문화가 정치보다 우월하나 소외되어 있음을 알린다.

 

남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는 노벨문학상수상자이기도 한 폴란드 여류시인 심보르스카(W. Szymborska) 등이 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파문을 일으키고/당신이 말하지 않는 것은/자명한 것이다/고로 어느 쪽이든/당신은 정치를 논하는 것이다" 여기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동물임을 말한다.

 

1층에서는 또한 대리석 작품도 선보인다. 발받침조각(footstools)에 텍스트를 새기는 방식이다. 대리석이란 이것 자체가 항구적 것을 상징하며 기념비적인 성격이 크다. 견고한 대리석과 삶의 덧없음을 대비시키는 극적인 효과도 낸다.

 

위 "다른 누군가의 육체는 당신의 정신을 위한 안식처이다"같은 문구는 단순하지만 육체와 정신을 대비시키는 비유를 통해 많을 걸 깨닫게 한다. 그런 면에서 선불교풍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를 과신하지 말라"나 "종교는 많은 걸 해결하나 또한 문제도 일으킨다"에서는 그녀의 문명 비판적 통찰력도 엿볼 수 있다.

 

2층, 발광조각(LED) 시리즈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발광조각(LED) 시리즈'를 볼 수 있다. 발광다이오드(LED)는 원래 뉴스나 선전에 쓰이는 도구인데 여기서는 현대미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위에 선보이는 작품은 2011년 신작으로 미니멀리즘의 우아하고 단순함 속에 짧은 경구가 반복적으로 보인다. 작가의 선택한 문구가 흘려 내려오면서 소통을 꾀하는 방식이다. 이런 작품은 결국 그가 30년간 해온 실험이 진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참여를 유도하며 때론 논쟁적인 그녀의 작품

 

그의 작품은 때로 관객의 논쟁을 일으킨다. 한국관객에게 그의 작품이 어떻게 감상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원하는 대로"라고 답했는데 이는 관객과 작가가 상호작용하면 작품의 의도가 더 확연하게 이해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끝으로 홀저는 시(詩)가 죽은 사회, 말의 힘과 언어의 위력을 상실한 시대, 영상언어로 그런 걸 되살리려 한 것이 아닌가싶다. 개념이란 자발적인 것이지 조작적인 것이 아닌데 오늘날 현대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제공받는 정보를 얼마나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지 작가는 관객에게 계속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 제니 홀저는 누구(?)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1950년 미국 오하이오 주 갈리폴리스에서 태어났다. 1972년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회화 및 판화 학사를 취득했으며, 1975년 같은 학교 대학원(회화전공)해 석사를 취득했다.

 

그가 작품에 텍스트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하이오 대학 시절부터라고 한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추상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공공 프로젝트 및 '장엄하고 인상적인'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홀저는 이 시절디자인 도널드 저드(D. Judd), 모리스 루이스(M. Louis) 같은 화가들이 보여준 명쾌하고 단순한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홀저는 1990년 그녀가 40살에 미국여성작가로는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여 유명해졌다. 그녀는 그 이후 '제논 프로젝션'으로 플로렌스, 로마, 베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슬로, 파리, 보르도, 베를린, 워싱턴, 뉴욕, 마이애미 등등 세계유명도시에서 다수 소개되었다. 1996년에는 세계경제포럼 크리스탈 상도 수상했다

 

이어 2002년에 독일 고슬라르 시로부터 카이저링 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미국의 비영리 예술단체인 '미국의 예술인'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공공예술 네트워크상을 수상하였다. 여러 대학에서 명예학위도 받았고 2011년에는 프랑스정부로부터 베르나르 훈장(L. Bernard Prize)도 받았다. 현재 뉴욕 후직크(Hoosick)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번지 www.kukjegallery.com 전화 02)733-8449 


태그:#제니 홀저, #JENNY HOLZER, #상투어(TRUISM), #제논 프로젝션, #개념미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