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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서 대하로 거래되고 있는 보리새우(오도리)
 재래시장에서 대하로 거래되고 있는 보리새우(오도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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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이게 무슨 새우래요?"
"대하쥬. 1kg에 1만 7천 원씩 파니께 가져가셔유. 몇 마리 더 얹혀 드리께···."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재래시장에 나갔다가 어물전 아주머니와 나누었던 대화이다. 예상했던 대로 '보리새우'(오도리)가 대하(大蝦)로 거래되고 있었다. 불경기에 시간까지 빼앗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말을 계속 이었다. 

"구경하기도 어렵게 되었다는 대하가 시장에 나왔네요. 값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아이, 아자씨도. 사실은 여그치 대하가 아니고, 수입 '오도리'예유. 보리새우라고 허는 그 오도리···."

처음에 대하라고 했다가 보리새우라고 실토한 아주머니에게 실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해수면 온도 상승과 서식지 환경 변화로 대하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보리새우와 흰다리새우, 홍다리새우 등이 대하로 둔갑하여 판매되고 있기 때문.

재래시장 어물전에서는 시원스러운 대하 이야기를 듣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해서, 수산물 공판장을 끼고 있으며 수족관을 갖추고 있는 해망동 '군산수산물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추석을 며칠 앞둔 수산물센터 역시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수산물 가게 홍 아주머니가 전하는 '대하' 소식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양식 흰다리새우, 언뜻 보기엔 대하와 흡사했지만, 짧은 수염과 뭉툭한 머리끝으로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양식 흰다리새우, 언뜻 보기엔 대하와 흡사했지만, 짧은 수염과 뭉툭한 머리끝으로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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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센터 진영수산 주인 홍명숙(46) 아주머니는 시원시원했다. 수족관의 새우를 가리키며 "이게 대하입니까?"하고 묻자 곧바로 "양식 흰다리새우예요"라며 "요즘엔 대하가 나오지 않아요"라고 잘라 말했다. 흰다리새우는 1kg에 3만 원으로 40마리 정도 올라간다고. 

생선가게 경력 12년째라는 홍 아주머니는 바닥에 널어놓은 백새우, 중하 새끼, 에콰도르 산 홍다리새우, 보리새우 등을 가리키며 원산지와 현 시세, 요리 방법 등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욱국 끓일 때 중하 새끼를 넣으면 맛이 '쥑여준다'나 어쩐다나. 어머니 손맛을 기억하는 필자와 죽이 맞았다.

원산지가 중남미로 알려진 흰다리새우는 생김새가 국내산 대하와 흡사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착각하기 쉽다고. 그러나 머리 위에 달린 뿔을 보면 현격히 차이가 난단다. 흰다리새우 뿔은 길이가 대하보다 뭉툭하고 짧아 쉽게 구별된다고.

"야가 바로 우리나라 자연산 '대하'예요!"

홍 아주머니는 10년 단골이라도 발견한 듯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더니 "잠깐만요!"라고 하고는 허리를 굽혀 전어가 담긴 통에서 뭔가를 집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올봄 산란기에 부화한 대하. 그래도 대하라고, 수염이 자기 몸통의 배 가까이 길었습니다.
 올봄 산란기에 부화한 대하. 그래도 대하라고, 수염이 자기 몸통의 배 가까이 길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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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 나온 보리새우. 보리새우는 수염 하나로 대하와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시장에 나온 보리새우. 보리새우는 수염 하나로 대하와 쉽게 구별되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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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가 바로 우리나라 자연산 대하예요. 올봄에 부화(孵化)한 대하가 가을 전어잡이 그물에 한두 마리씩 따라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새끼죠. 대하 수명은 1년이고, 산란기에 부화를 못 하고 2년을 사는 놈도 있어요. 웃기죠. 그래서 요즘(8월~9월)에 잡히는 대하는 '신대하'라고 부릅니다. 봄에 태어나서 4~5개월 성숙기를 거쳐 새롭게 나왔다고 해서 우리(상인들)가 구분하기 쉽게 이름을 그렇게 붙였어요."

홍 아주머니는 '신대하'는 상인들이 붙여준 애칭이기도 하다며 암수 구별은 '신대하' 때는 어렵고 완전히 성숙하면 암컷은 하얀색이 돋고, 수컷은 약간 붉은빛을 띤다고 했다. 또한, 암컷(25~30cm)이 수컷(15cm 안팎)보다 놀라울 정도로 크다고 부연했다.

새우는 연약한 꼬부랑 할머니로, 대하는 영감님으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 뼘 크기의 대하 한 마리에 2000원~2500원 하던 80년대 중반, 대하 애호가들이 식당에 가서 "오늘 영감님 있어요?"라고 하는 것은, 그날 잡은 싱싱한 대하를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말이었다.

자연산 대하는 양식에 비해 색깔이 진하고, 수염도 자신의 몸통보다 길었다. 크기도 양식은 고르고 일정하지만, 자연산은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게 특징이다.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 '대하탕'과 '대하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하(大蝦)는 조기, 아귀, 갈치 등 다른 생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 이상으로 대우받는 어종이었다. 어획량은 적었지만, 판매금액이 높았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군산 째보선창 어른들은 대하 수컷을 '봉선화'라 칭했다.

요즘엔 보리새우와 흰다리새우가 왕 노릇을 한다. 그나마 양식이 대부분. 그래서 싱싱한 대하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던 그때가 더욱 그립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선전문 음식점에 가면 '대하탕', '대하찜'이라 적힌 메뉴판이 걸려 있었는데 언제부턴지 사라져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해물전골에서 맛으로 왕 노릇 하는 보리새우. 어느 요리든 새우가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하지요.
 해물전골에서 맛으로 왕 노릇 하는 보리새우. 어느 요리든 새우가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하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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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탕은 속풀이 음식으로, 대하찜은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대하탕에 들어가는 대하는 고작 2~3마리 정도. 그러나 크기가 장난이 아니어서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껴졌으며 대하찜 역시 하나(大)만 주문해도 네 명이 소주와 함께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뚝배기에 한 그릇씩 끓여 내오는 대하탕은 시원한 국물이 속풀이에 으뜸으로 알려져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전날 밤 과음으로 쌓였던 숙취가 마시는 소리에 놀라 멀리 도망간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었을 정도.  

쑥갓향이 그윽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껍질을 벗겨 낸 오동통한 살코기는 초장에 찍어 묵은 김치와 함께 밥반찬으로 먹었는데, 알코올 성분을 분해하는 영양소 덩어리가 들어가니 간에 달라붙어 있던 숙취가 놀라서 달아날 수밖에.

싱싱할 때 초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에 단맛과 그윽한 향 감돌아

새만금방조제 착공(1991년) 전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오식도 비응도 등 군산 앞바다 섬주민들이 대하잡이에 나섰다. 수온이 섭씨 10℃ 이상으로 올라가는 3~4월(음력)에는 대하 산란기로 외역에서 회유하던 대하가 연안으로 모여들면서 어장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소금구이를 하려고 천일염 위에 올려놓은 보리새우. 익으면 붉은색으로 변하지요.
 소금구이를 하려고 천일염 위에 올려놓은 보리새우. 익으면 붉은색으로 변하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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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는 천일염을 바닥에 깔고 소금구이를 해먹어도 별미로, 최고의 요리가 된다. 그러나 대하의 진정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살아 움직일 때 껍질만 벗겨 내고 머리와 몸통을 초장에 찍어 먹어볼 것을 권한다. 소주 한 잔 곁들이면 더욱 깊은 맛과 흥취를 느낄 수 있다. 

해마다 봄이면 어민들에게 부탁해서 맛보곤 했는데, 3월~4월(음력)에 잡히는 대하는 세숫대야에 물을 떠놓고 손을 씻으면서 먹었다. 산란기여서 껍질이 미끈미끈했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쥘 정도로 씨알이 굵어 식욕이 왕성한 사람도 4~5마리 이상 먹지 못했다.  

꿈틀거리는 대하 머리를 떼어내면 이물질이 분비되는 몸통 끝이 바르르 떨면서 무지갯빛을 발하는데, 이는 싱싱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논하기도 했는데, 싱싱한 살코기와 씹을수록 고소한 머리부위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단맛이 났으며 그윽한 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아~그 맛!

'대하'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

중국 미술가협회 주석을 지낸 ‘제백석’(1863~1957)의 ‘대하도’에서.
 중국 미술가협회 주석을 지낸 ‘제백석’(1863~1957)의 ‘대하도’에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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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문인들은 '대하도'(大蝦圖)를 즐겨 그렸다. 부부 해로를 뜻하는 의미로 도자기에도 새우를 그려 넣었다. 등 굽은 새우를 '해로(海老)'라 했는데 음이 '해로(偕老)'와 같아 '백년해로'를 뜻했으며 자기 몸통보다 긴 수염만큼 오래 살라고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단다.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된 새우가 몸에 좋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총각은 새우를 삼가야 한다!'라는 말이 내려왔고, 중국에서는 '혼자 여행할 때는 새우를 너무 많이 먹지 말라!'라는 말이 의서를 통해 전해온다고 한다.

80년대 초로 기억한다. 대하 어획량은 줄고 소비가 늘자 양식업자들이 양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상품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몸길이가 25cm 이상은 돼야 하는데 그 길이만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그나마 수컷은 15cm 남짓에서 성장을 멈추었다.

새우의 왕으로 불리는 대하는 '왕새우'로도 불리는데 처음엔 갈색이었다가 익으면 빨갛게 변한다. 그 이유는 새우, 바닷가재, 게 등 갑각류 생선에는 여러 색소가 함유되어 있는데 열을 받으면 모두 사라지고 붉은색을 기본으로 하는 아스타크산틴 색소만 남기 때문이라고.

대하는 영양소만큼이나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특히 봄에 잡히는 오동통한 대하를 가마솥에 쪄서 살짝 말려 짚으로 조기처럼 엮어 통풍이 잘되는 대청이나 곳간에 걸어놓았다가 입이 심심할 때 꺼내 먹었는데, 겨울철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공부방으로 사용하던 문간방 벽에는 늦가을부터 짚으로 엮은 대하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군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만 꺼내 먹어도 금방 표시가 났기 때문. 어쩌다 어머니가 한 마리 주면 껍질째 먹었는데 특유의 향과 고소한 맛은 죽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아, 옛날이여!


태그:#자연산대하, #보리새우, #흰다리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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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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