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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개정면 전군도로 주변에 자리한 군산향토민속 박물관 입구.
 군산시 개정면 전군도로 주변에 자리한 군산향토민속 박물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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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6일)는 지역 어른들의 손때가 묻은 생활용구와 민속품이 전시된 '군산향토민속박물관'(이하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뒤로는 장항선 열차가 지나다니고, 앞으로는 들녘이 펼쳐지는 전북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정수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시설은 미미하지만, 고장의 향토문화 발전을 위해 어른도, 아이도 입장료 1000원씩을 요금함에 넣고 들어오시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입장권을 팔지 않고 방문객이 알아서 넣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어서였다.

반대했던 아내가 지금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며 수집품 모으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황세 박물관장.
 반대했던 아내가 지금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며 수집품 모으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황세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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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세(64세) 박물관장은 2년 전 정년퇴직한 초등학교 평교사 출신. 그는 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80년대 초. 사람들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버리는 오래된 세간을 학생들 학습 자료로 이용하려고 보관하는 마음으로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집품이 하나 둘 쌓이니까 정이 가고 더 모으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라는 것. 해서 사재를 털어 구매하게 되었고 기증하는 분도 나타나 더욱 용기를 얻게 되었단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1만 점이 넘어 박물관(2006년 개관)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계속 사서 모은 게 지금은 2만 점도 넘을 거라는 이 관장은 얼른 보기에 영락없는 농부. 정년퇴임 후 농사와 민속품 모으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만약 귀신이 있다면 그 귀신도 갖다놨을 겁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이 관장은 "사소한 것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차차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서민들의 아기자기한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소박하게 전시했다는 것.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야외 전시장

옛날 농가에서 사용하던 닭들의 보금자리 ‘장태’
 옛날 농가에서 사용하던 닭들의 보금자리 ‘장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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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사용하던 상여.
 선조들이 사용하던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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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전시장에는 우리 어머니들이 사용하던 국수 기계, 돌절구, 나무 절구, 보리나 고추를 갈아 먹던 확독(돌확), 초가집 처마에 걸어놓았던 장태, 마을의 공동우물, 옛날 교회 종탑에 걸려 있던 종, 사찰의 범종, 선조들이 사용하던 꽃상여 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대나무로 만든 '장태'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옛날 시골농가에서 낮에는 닭과 병아리를 마당에 내어놓았다가 밤에는 닭장으로 들여보냈는데, 장태는 더욱 안전한 닭들의 보금자리였다. 닭의 숙적인 삵이나 오소리 발길이 닿지 못하도록 공중에 매달아 놓았기 때문.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갈 때 타고 가는 가마로 일컫는 꽃상여는 어렸을 때 고향동네 신작로에서 봤던 상여행렬과 시골의 상여집을 떠오르게 했다. 옛날에는 귀신 붙었다며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꺼렸던 상여를 작업실 근처에 쌓아놓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산월리 고분'을 세상에 알려지게 했던 주인공

군산시 대야면 ‘산월리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들. 전혀 도굴이 되지 않았던 백제 분묘여서 더욱 가치가 높다고.
 군산시 대야면 ‘산월리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들. 전혀 도굴이 되지 않았던 백제 분묘여서 더욱 가치가 높다고.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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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은 교사 시절 대야면 산림관리 도로를 개설(1966년)하면서 생긴 절단 부분에서 옹관의 작은 파편조각을 발견하고 수습하여 관찰하다가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군산대학교 박물관에 알려 '산월리 고분'이 세상에 알려지게 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금강 하류에 자리한 군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그동안 발굴된 고분과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군산 지역은 곳곳에 수많은 산성과 돌칼, 쇠칼, 토기들이 발견되었으나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파손되거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관장은 황새골, 아래우니, 여우니, 동우니제, 지경(대야), 진메, 지제, 밝지, 지곡, 지산, 두레, 건두레, 옹두레, 만두레, 오질, 육질 등 구전으로 전해오던 박물관 주변 마을 이름과 개천 이름도 소개했다.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죽어 있었다는 것.

50년 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던 실내 전시관

60~70대 노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과 걸상.
 60~70대 노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과 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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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전시관에 들어서니 60~70대가 초등학교 시절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과 걸상, 풍금,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던 벨, 체육 행사를 앞두고 운동장에 석회로 하얀 선을 긋던 2m 정도의 나무 '라인기' 등이 초등학교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다.

자석식, 공전식, 다이얼식 전화기와 교환대도 눈길을 끌었다. 자석식은 전화기 옆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교환을 불렀고, 70년대까지 사용했던 공전식은 수화기를 드는 동시에 "예!" 하는 교환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도 사용하는 다이얼식은 상대 번호를 모르면 114를 이용해야 하지만, 자석식이나 공전식은 번호를 몰라도 통화가 가능했다. 교환수에게 전화기 주인 이름만 대도 연결해주었기 때문.

이 관장이 전쟁 때는 무기, 평화시에는 농기구였던 쇠스랑을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이 관장이 전쟁 때는 무기, 평화시에는 농기구였던 쇠스랑을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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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군사훈련 받을 때 사용했던 목총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군산정부 시절의 반공교육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 특히 평소에 농기구로 사용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무기가 되었던 쇠스랑은 동학혁명의 아픈 역사를 떠오르게 하기도.

여물통, 수차(물레방아), 가마니 틀, 풍구(바람개비), 탈곡기(호롱기) 등 농가에서 사용하던 농기구와 각종 질그릇, 물을 퍼 올리던 옹두레, 애기두레, 맞두레 두레박, 물지게, 다양한 저울과 바느질 용구를 보관하던 반짇고리와 오래된 가방도 정겹게 다가왔다.

콩나물시루(좌)와 가마솥에 올려놓은 떡시루(우).
 콩나물시루(좌)와 가마솥에 올려놓은 떡시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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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제 시룻번을 두른 '떡시루'와 콩나물을 기르던 '콩나물시루'는 며칠 남지 않은 추석명절을 생각나게 했고, '딴 솥'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바람난 남편이 딴살림 차릴 때를 비유하던 '딴 솥 걸었다!'라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굵은 뿔테 안경에 콧수염을 붙인 아저씨가 이 동네 저 동네 돌면서 치고 다녔던 '동동구르무 북', 짚으로 만든 축구공, 오래된 영사기, 엿장수가 사용하던 엿판과 엿가위, 단기 4287년(1954년)에 제작된 군산경로당 안내판, 50~60년대에 사용하던 밀가루 포대, 처음 출시된 TV도 시대의 변천 과정을 알리고 있었다.

박물관 이전에는 전통 생활도구 체험학습장으로 사용

정년퇴임 기념으로 <이황새 선생님의 학교 이야기>(군산대학교)를 발간했던 이 관장은 박물관 개관 전(2002년~2006년)에는 전통 생활도구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 목적과 학습 상대, 운영 프로그램 등에 대해 설명을 들어보았다. 

- 체험학습장을 개설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요?
"대한민국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우리의 문화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직 책이나 이야기로만 배웠을 뿐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교육활동이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어 전통생활문화 체험학습장을 개설했지요."

-초등학교 학생들만 참여했나요?
"아닙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학부모도 참여했어요.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것을 너무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우리 전통 도구에 대해서는 대단한 호기심을 보여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 전통 생활 도구 체험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체험을 했는지요?
"곡식 씨앗 뿌리기, 물 품어 올리는 두레질과 맞두레질, 물을 옮기기 위한 물지게 질, 머리에 이는 물동이 질 등을 했어요. 아이도 부모도 무척 재미있어 하더군요.

또 콩이나 알곡을 털어 내는 도리깨질,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맷돌질, 알곡을 터는 개상 질, 홀태 질, 지푸라기로 새끼 꼬기, 국수 틀로 국수 만들기, 메갱이로 쳐서 인절미 만들기, 다듬이질, 가마솥에 밥 해먹기, 장작불에 고구마나 밤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30여 종의 프로그램을 단계와 코스에 따라 자율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운영했다는 이 관장은 앞으로 외지 어린이는 물론 지역 주민들도 우리의 전통문화에 친근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체험 교육의 장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향토민속박물관, #군산, #이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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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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