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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거문도에 있는 녹단등대 가는 길.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여수 거문도에 있는 녹단등대 가는 길.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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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구릉이 넉넉하다. 풍경도 이국적이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 그림 속의 길을 따라 걷는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벼랑에선 푸른 파도가 일렁인다.

발걸음이 가볍다. 저만치 서 있는 인어상과 등대도 부드럽게 휘어진 길을 따라 뉘엿뉘엿 오라 한다. 혼자 걷기 너무나 아까운 길이다. 누군가 그리울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할 때 다시 찾고 싶은 길이다.

내년에 세계박람회가 열릴 여수에 딸린 섬, 거문도의 녹산등대로 가는 길이다.

거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뱃길이 다림질을 해놓은 것처럼 잔잔하다.
 거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뱃길이 다림질을 해놓은 것처럼 잔잔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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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항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행 쾌속선에 몸을 싣는다. 오전 7시40분 여수항을 빠져나온 쾌속선은 바로 속력을 내 크고 작은 섬들 사이를 미끄러져 나간다. 밤새 다림질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물결이 잔잔하다.

고흥 나로도 축정항에 들러 숨을 가다듬은 쾌속선은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여수에서부터 따라오던 섬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망망대해로 나선다.

손죽도, 초도를 거쳐 빨려 들어간 곳은 거문도. 여수항을 떠난 지 2시간 10분만이다.

거문도항. 여수 끝자락에 딸린 섬이다.
 거문도항. 여수 끝자락에 딸린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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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아낙이 항구에서 생선을 말리고 있다.
 거문도 아낙이 항구에서 생선을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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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도 중간쯤에 자리한 섬이다.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의 섬이 바다 위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커다란 배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천연의 항구다.

삼산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는 고도는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항구답지 않게 제법 번잡하다. 파출소, 우체국 등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여관과 식당, 슈퍼도 즐비하다.

영국군묘지는 거문도에서 만날 수 있는 서양인의 흔적이다.
 영국군묘지는 거문도에서 만날 수 있는 서양인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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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를 지나니 삼산면사무소 옆으로 '영국군묘지' 표지판이 보인다. 거문도에서 만나는 옛 서양문화의 흔적이다. 비석과 나무 십자가가 애틋하다.

파출소 옆으로 난 계단 위 해안가엔 푸른 잔디밭이 널찍하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신사터였다. 많이 훼손돼 보잘 것 없지만 일본인들에겐 좋은 관광자원이 되겠다.

고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삼호교를 건넌다. 거문도를 상징하는 연도교로 밤에 오색찬란한 경관조명이 푸른 바다의 빛과 어우러진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는 거문도등대, 오른쪽은 녹산등대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대교 사이로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대교 사이로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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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등대가 도시 색시, 녹산등대는 수줍은 시골 색시에 비유된다. 동백숲이 터널을 이루는 거문도등대로 방향을 잡는다. 유림해변을 지나 보로봉으로 오른다. 동도와 서도 풍경이 아늑하게 들어온다.

보로봉에서 해안까지는 경사가 심한 비탈이다. 그 내리막길에 돌로 쌓은 365계단이 있다. 중간중간 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서도와 거문도등대를 이어주는 갯바위지대가 펼쳐진다. '목넘어'다. 태풍 때 집채만한 파도가 갯바위를 넘어와 붙여진 이름이란다. 주민들은 물이 넘나든다고 '무넹이', '수월목'이라고도 부른다.

거문도등대는 목넘어를 지나 수월산 남쪽에 있다. 나무계단을 밟고 비탈을 오른다.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하다. 하늘도 없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상록수가 우거진 숲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평가를 받고 있는 동백숲길이다.

숲길은 자갈길과 흙길, 잔디밭길로 이어져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입안에서 '등대지기', '동백아가씨'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길은 산허리를 가쁘게 돌아가기도 하고 아득한 벼랑 위에 올라서기도 한다. 경쾌한 율동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성긴 숲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쪽빛 바다 풍광도 날아갈 듯 상쾌하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오래된 거문도등대.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나란히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오래된 거문도등대.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나란히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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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넘어에서 한 30분 걸었을까. 파란 하늘이 열리고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거문도등대가 나타난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다. '제국의 불빛'이다. 그 옆의 '젊은 등대'는 2006년에 세워졌다.

새 등대의 계단을 따라 팔각전망대에 오르니 끝도 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등대 아래 바닷가 벼랑엔 관백정이 서 있다. 백도가 보인다는 전망대다. 날씨 좋은 날엔 제주도 한라산과 백도가 육안으로 보인다고.

거문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백도는 거문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1시간 남짓 나가서 만난다. 명승지 백도의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직접 섬에 오르는 것은 금지돼 있다. 유람선 위에서 기암괴석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거문도등대에서 내려다 본 팔각전망대와 기암괴석이 아찔하다.
 거문도등대에서 내려다 본 팔각전망대와 기암괴석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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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등대에서 내려와 자동차를 타고 녹산등대로 향한다. 녹산등대 가는 길은 거문도뱃노래 전수관을 지나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에서 시작된다. 호수 같은 해안을 오른쪽으로 끼고 10여 분 달렸을까. 금세 서도분교 앞에 닿는다. 녹산등대 가는 길은 음달산 능선을 따라 푸른 풀밭 사이로 걷는다.

풀밭이 수채화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다. 벼랑 아래에선 푸른 파도가 넘실댄다. 거문도 풍경도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도, 지나온 길도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돌담 산책로도 예쁘다. 구절초, 털머위 등 야생화도 눈과 발길을 붙든다. 이생진 시인이 극찬하고, 명품 녹색길로 선정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걷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나무데크도 단정하게 설치돼 있다.

거문도의 인어전설을 테마로 조성된 인어해양공원도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등대 주변의 고사목도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그림 속 풍경 같은 녹산등대 가는 길. 흡사 그림 속을 걷는 느낌이다.
 그림 속 풍경 같은 녹산등대 가는 길. 흡사 그림 속을 걷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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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거문도를 오가는 오가고호의 뒷모습. 태극기가 강한 바람에 찢겨 나가 반토막이 났다.
 여수-거문도를 오가는 오가고호의 뒷모습. 태극기가 강한 바람에 찢겨 나가 반토막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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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여수항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를 오가는 쾌속선이 하루 두 번 있다. 여수항에서 오전 7시 40분과 오후 1시 40분. 거문도항에선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2시간 10분. 요금은 편도 3만 6600원. 거문도에는 버스가 없다. 섬 안에서 멀리 오갈 땐 승합차형 택시를 이용하거나 걸어 다녀야 한다.



태그:#거문도, #거문도등대, #녹산등대, #여수, #오가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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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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