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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아름다운 굽이풍경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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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며느리 보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 행주에 풀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잘한다 잘한다 하니 길에다 풀칠 하려는 것일까? 산자락을 허물고 자연을 파괴하고 육백년 된 옛길을 훼손하고 있다. 공사예정금액이 4억8900만 원인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 옆 도로 확포장공사'다.

문경새재는 조선조 세 번째 임금인 태종 14년(1414년)에 개척된 고갯길이다. 육백년 동안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 지켜왔고 옛 선비가 과거보러 갈 때 이 굽이를 돌아갔고 보부상이 괴나리봇짐을 메고 또한 이 굽이를 지나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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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잘려진 굽이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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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산자락 위에 바위 몇 개가 위험하다고 굽이를 들어내고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문경의 정체성을 한 말로 표현하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의 고장' 문경이 부끄럽고 우리나라에서 옛길을 테마로 한 유일한 '옛길박물관'이 있는 것이 무색하다. 이 고개를 넘었던 옛 선인들의 혼령들이 통탄할 일이다.

고개는 굽이가 묘미고 생명이다. 굽이가 없으면 고개가 아니다. 문경새재 열 두 굽이가 열한굽이가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라는 문경새재아리랑 사설 속에 그 아리랑 굽이가 없어져도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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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잘려진 굽이(근접)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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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넘으며 한 굽이 또한 굽이를 돌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전개되고 굽이마다 역사, 전설, 설화, 민요 등 숫한 이야기가 베여 있는 곳이 굽이이다. 그 굽이를 고속도로도 아닌데 차량이 다니는 길도 아닌데 바위 몇 개 핑계로 직선화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길 위에 바위가 있어 위험하다고 하나 그 바위는 육백년 동안 그대로 있었던 바위다. 새재 고갯길에 위험해 보이는 곳이 여기뿐이지 않다. 고갯길에는 그보다 더 위험스럽게 보이는 바위가 많다.

그럼, 그런 바위 모두를 없애야 하나? 모두 직선화하고 평지화해야 하는가? 중국에 있는 바위산 절경 장가계, 북한에 있는 금강산도 길 위의 수많은 바위가 위험하니 깨어버려야 하나? 정히 위험하다면 굽이는 살리고 위험요소인 바위만을 제거하고 토사유실을 방지하는 지지시설을 설치하면 될 것이 아닌가. 진정 관리들의 눈에는 위험성만 보이고 역사성이나 문화유산의 소중함은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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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편에서 본 굽이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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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예전에 관청에 기관장이 바뀌면 자기의 기호에 따라 청사 내에 있던 나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옮겨지다가 결국 뽑혀나가고 다른 나무가 심겨지는 것은 보았지만 보존해야할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자산인 옛길의 굽이를 허무는 이런 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문경새재는 도립공원이며 국가지정 문화재로 사적 제147호와 명승 32호로 지정 되어있고 관문과 주흘산 일원은 지방기념물 제18호로도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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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클레인인 굽이를 깎아내고 있다.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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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한을 가진 왕도 손대지 않은 고갯길, 역대 어느 관리(관찰사, 목사, 현감, 전직시장군수)도 훼손하지 않고 지켜온 문경새재, 육백년 전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우리세대가 잘 지켜 육백년 뒤 다음세대에게 넘겨 주어야할 우리의 보물을 잠시 동안 권한을 가졌다고 무슨 권리로 훼손한단 말인가?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옛길박물관 옆길은 문경새재 열두 굽이 중 첫 굽이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상가를 지나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문경새재 고갯길로 진입하는 사실상의 문경새재 초입이고 첫 굽이이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시원한 이곳 새재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굽이를 돌아서면 저 멀리 제1관문과 성벽이 아스라이 보이는 곳, 비로소 관광객은 타임머신을 타고 육백년 전 조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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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려진 나무1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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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중한 문경새재 첫 굽이, 연간 400만명이 찾아오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고개이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의 보고인 문경새재의 훼손을 어떻게 하더라도 꼭 막아야 하겠다. 규정상 지정문화재에 직접공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곽 500m 이내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에는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데 공사현장은 국가지정 문화재 구역 안이고 길을 포함 주변자연 자체가 문화재인데 어떻게 이런 문화재훼손이 허가되었는지도 엄격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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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려진 나무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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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 직선의 문화가 전통과 역사를 파괴한다. 초가의 곡선, 고개의 굽이, 이것들이 한국의 미를 표출하는 아름다운 선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일선행정을 추진하는 관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꿈일 뿐인가?

지금, 고개의 굽이는 깎이어 나가고 푸르름을 자랑하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아름드리나
무도 베어져나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관계공무원들에게 지금이라도 설계변경을 하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하든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굽이가 조금이라도 덜
훼손되게 해 달라고 원했으며 공사시공업체 관계자들에게도 소중한 문화재이므로 단 1cm라도 덜 깎아 내도록 사정하기도 하였으나 결과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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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오는 날의 아름다운 굽이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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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월 하순경 해당업무를 담당한 도시과 관계자는 "길옆 사면 바위가 있어 위험하기 때문에 박물관 끝나는 부분까지만 인도의 폭(3m정도)만큼 확장한다. 그리고 격자모양 철제구조물인 식생매트를 설치 후 초화류를 식재한다"고 했다. 또한, 7월 5일에도 도시과 해당업무담당자는 "길 옆 바위를 제거하고 그 경사면을 유지하기 위해 조경석으로 2-3단 쌓는다"면서 "공사목적은 위험요소제거 및 토사방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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