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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 상 수급자다. 약 8년 전(2003년)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을 하다가 시설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설을 탈출했다. 이후 서울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 체험홈에 들어가 자립생활을 시작했고 그때 수급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뒤 결혼을 했고 지금껏 아무탈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엊그제(20일)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날 기초생활수급 생계비가 나왔는데 30만 원이 덜 나왔다는 것이다. 주민센터에 알아보니 아버지가 일한 대가에 대한 소득이 잡혀서 그 소득 중 부양의무비로 책정된 30만 원이 깎여서 나온 것이란다, 그것도 아무 예고도 없이.

월 74만 원으로 부부가 한 달 살아라?

결국 기초법 의무부양 조건에 딱 걸린 것이다. 설마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 버렸다. 사실 내가 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랬다. 그 당시 나를 부양할 의무를 지닌 아버지가 빚에 쫓겨 숨어사시다시피 하신 덕분에 행불 처리되어 중증장애를 가진 나는 어렵지 않게 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초법은 직계부양의무자가 일정 소득이 있거나 일정기준 이상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하는 부양의무제를 적용하고 있다.

막상 나의 가정이 당하고 나니 참 어이없고 황당했다. 기초법은 우리와 같이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중증장애인들과 질병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소득을 보장 받을 수 없는 빈곤층들을 위해 국가가 그들의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소득이다. 이 안에는 주거비와 생계비가 각각 나오는데 우리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전부 1인 기준으로 30만원 안팎이다. 만약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연금 18만 원(서울 독거 기준)이 추가되어 나온다.

우리 가정의 경우는 2인 가족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급액으로 받는다. 주거비 14만 원, 생계비 58만 원, 각각의 몫에 장애인연금(이것도 부부라는 이유로 치사하게 2만 원 깎아서 준다) 그래서 도합 104만 원 정도(천 자리 이하는 뺐음)의 수급액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여기에서 30만 원이 빠진 돈이 들어왔다. 74만 원. 이 돈으로 우리는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아내는 이날 패닉 상태에 빠졌고 나 또한 화가 너무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우리 부부에게 30만 원은 매우 큰 돈이다. 월세만 35만 원이 나간다. 전세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 전화요금과 각종 공과금을 차례대로 내고 나면 약 20만 원이 남는다. 그런데 먹고 살 식비가 없다. 꼼짝없이 한 달간 손가락 빨게 생겼다. 다음날 한달음에 동대문구청 기초법 관련 주민생활지원 담당을 만났다.

담당자에게 문의한 바로는 아버지의 소득이 월 180만 원으로 잡혀서 수급액 30만 원이 삭감됐다고 한다(의무부양에 의해 삭감되는 수급액은 부양의무자의 소득에 따라 다르다). 그는 내게 지난번 보건복지부에서 기초법 수급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일제조사를 실시했고 부양의무자들의 소득을 좀 더 세밀하게 조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내가 살고 있는 청량리에서만 100가구가 수급권에서 탈락 되거나 감액되었다고 한다. 제도상 어쩔 수 없는 조치였고 자신들로서는 최대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경우는 전날 동생과 통화했고 아버지가 퇴서 증명서를 보내준다면 바로 원상 복구해 다음 달부터 적용해 주겠단다.

60넘은 아버지에게 부양비를 구걸해야 하나

하지만 왠지 찜찜했다. 근본적 원인은 기초법 상에 암적 존재인 부양의무제도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국가가 빈곤의 책임을 온전하게 지지 않고 그 가족에게 책임 지우려고 하고 있다. 빈곤에 처한 당사자의 가족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나 몰라라 돌아서 버리면 그 뿐이다. 그럼 그 수급액만으로 겨우 생활하는 빈곤의 당사자에게 부양의무를 가진 부모나 자식에게 찾아가 손 벌리란 얘기다.

우리가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하는가? 기초법에 부양의무제는 이렇게 빈곤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들을 더욱 비굴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많은 장애인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자립생활을 선택하려 하지만 이 부양의무제도로 인해 발목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또 부양의무제도는 빈곤한 사람들을 거르는 역할, 즉 기초법 수급자로 들어가는 문을 바늘구멍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미 가족에게 버려져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이 기초법 제도인데 이 안에 부양의무제도는 기초법의 본래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빈곤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수가 40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지만 국가의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그 어떤 국가기관도 그냥 강 건너 불구경만 하려 한다.

이렇기 때문에 기초법의 부양의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내 입장에서 간신히 빚을 청산하고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 때문에 수급액이 깎였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그만두게 하는 불효를 저질러야 할까? 아님 40이 넘은 나이에 60이 넘는 아버지에게 부양비를 구걸해야 할까? 이놈의 부양의무제도가 사람을 참 치사하고 더럽게 만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기초법, #부양의무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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