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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벌어진 훼불사태, 사찰방화사태, 단군상을 둘러싼 논쟁들, 그리고 2010년 불거진 봉은사나 동화사 땅 밟기와 같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사찰 정복적 행위들은 자기식의 초역사적 진리를 기준으로 역사를 균질화 하려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종교문화연구원에서 기획하고, 이찬수 외 9인이 발표한 <종교 근본주의>에 나오는 한 대목 글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종교 근본주의, 그 중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성찰과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명지대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인 박현도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한국 이슬람'에 대한 발제문도 있긴 하다.

 

사실 '근본'(根本)이란 꽤 괜찮은 말로 들린다. 그것은 곧 뿌리, 시원, 기원, 근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근원을 찾는다거나 나라와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도 좋은 뜻으로 비친다. 그만큼 근본을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명확한 근거 없이 독단에 의지하면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근본주의'가 무서운 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제하는 까닭이다.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정동제일교회 목사인 최대광은 그것이 20세기 초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발행된 팸플릿, 곧 '근본: 진리를 향한 증언'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과학의 발전, 현대주의의 등장과 다원적 문화의 확장, 자유주의 신학이 논의되던 상황에 그것의 반발심으로 다섯 가지 근본교리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이 팜플렛은 양보할 수 없는 다섯 가지의 기독교 교리 즉, 성서 무오설, 그리스도의 신성과 죄인을 위한 십자가의 죽으심, 예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심판을 위한 재림, 사탄과 비기독 교인들의 멸망, 예수를 믿는 자들의 부활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 교리들은 움직일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절대 진리라는 것이다."(56쪽)

 

이른바 그 다섯 가지 교리는 과학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자, 과학적 이성에 힘입은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은 새로운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서기도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근본주의는 과학과 이성과 문화의 폭발적인 흐름을 차단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단서를 찾고자 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19세기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계에 불어닥친 현상이었다면 가톨릭계는 어땠을까?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런 움직임을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극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소상한 서술이나 의견이 전혀 없다는 건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근본주의는 종교에만 국한된 건 아닐 것이다. 정치적 근본주의도 있고, 문화적 근본주도 있고, 각 종교마다 나름대로의 근본주의가 있을 것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를 맡고 있는 김대식 교수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구분을 하고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을 경전 혹은 전통이라고 할 것이고, 정치적 근본주의는 정치적 계보와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문화적 근본주의-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는 그 문화의 뿌리가 되는 지리, 역사, 사회, 언어 등을 물어야 할 것이다."(150쪽)

 

그렇다면 이슬람은 어떨까? 무슬림들에게도 근본주의가 있을까?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인 박현도는 특별한 명칭으로서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도 이슬람의 근본을 어긴다면, 그것이 곧 근본주의자를 칭하는 말이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이슬람주의자들이 전 세계에 이슬람을 건설하려고 하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여성과 비무슬림과 성적소수자들을 억압하고 박해하는 일들이 곧 이슬람이 근본주의자로 비친다는 것이다.

 

"역사상 위배된 적이 없는 이슬람의 근본 교리란 무엇일까? 순니와 시아 종파 간의 미묘한 차이점을 제외하면, 유일신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꾸란은 한 점 오류 없이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도 무함마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보내신 인류 최호의 예언자이며,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일에 모든 존재를 부활시켜 종말의 판결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을 지키려는 무슬림이라면 모두 근본주의자가 될 것이고,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무슬림을 근본주의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180쪽)

 

개신교의 '근본주의'가 우리사회에 문제되는 이유가 뭘까? 정치세력화는 것, 그리고 사학의 특혜에 있음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로 있는 김종명 교수는 지적한다. 이른바 개신교의 뉴라이트 활동, 사학의 재정결함보조금 가운데 개신교 사학이 68.9%를 지원받고 있는 점들이 그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차원의 종교간 갈등해소 방안을 찾고 있다.

 

"개신교는 불교계에 대하여 가해자적 입장에 서 있는 만큼, 개신교계와 불교계이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전자의 근본주의적 인식의 극복과 불교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종교법인법 등의 관련 법규 제정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247쪽)

 

이상과 같은 내용들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아는 데 충분할까? 그 기원과 흐름, 그리고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는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도 실은 미국의 근본주의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기복주의 신앙을 미국의 근본주의와 희석시켜 온 것은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한국 개신교는 근본주의적인 관점보다도 기독교의 근본 시각을 달리 해야 할 때이지 싶다. 이른바 예수 그리스도의 원론적인 관심사를 찾아 나서는 것 말이다.


종교 근본주의 - 우리 시대의 근본주의 비판과 대안

이찬수 외 지음, 모시는사람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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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종교 근본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자,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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