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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입구. 세실리 브라운전은 신관에서 열린다. 작가 세실리 브라운(아래)
 소격동 국제갤러리 본관입구. 세실리 브라운전은 신관에서 열린다. 작가 세실리 브라운(아래)
ⓒ Saatchi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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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구미술의 흐름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플랫폼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갤러리가 이번에는 아시아 최초로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1969~)의 개인전을 6월 24일까지 연다. 그의 회화 13점과 모노타입 판화 16점도 선보인다.

세실리 브라운은 영국출신의 여성작가로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엡섬과 런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구상과 추상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영국 테이트갤러리,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디모인아트센터를 포함한 주요 미술관과 기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국제갤러리 신관 1층 세실리 브라운전 전시관경
 국제갤러리 신관 1층 세실리 브라운전 전시관경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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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미국의 윌렘 드 쿠닝, 조안 미첼과 뿐만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근대미술의 시조인 니콜라스 푸생과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가장 선호하는 작가는 역시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둘의 화풍은 어딘지 닮았다.

그는 센세이션(sensation)전 등을 통해 세계미술을 주도한 'YBA(Young British Artists)'와 다른 길을 걷었다. 그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형상화하여 회화의 위기시대에 뉴페인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숭고'의 추상표현에서' 애욕'의 추상표현

'Lamb Goes Uncomplaining Forth' Oil on linen 124.5×210.8cm 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Lamb Goes Uncomplaining Forth' Oil on linen 124.5×210.8cm 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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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로스코 등 미국미술의 발판이 된 추상표현주의가 인간내면의 숭고함을 표현했다면 50년이 지난 2000-2010년대 세실리 브라운의 추상표현주의는 인간의 애욕을 그리고 있다. 위 작품은 남녀가 뒤섞여 섹스를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초기 그의 작업의 소재는 날개가 달린 남근의 형상을 비롯하여 포르노그래프 같은 집단적 성애장면을 도발적이고 노골적으로 그렸으나 지금은 그런 경향이 점차 파편화되고 서서히 추상화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반면 회화적 완숙도는 더 깊어졌다.

그가 생각하는 회화가 뭔지 그의 작업노트에서 엿볼 수 있다.

"회화는 일종의 연금술이다. 물감이 이미지로 전환되고, 또 서로 합쳐지면서 제3의 의미를 창출한다. […] 나는 이렇게 변화되는 찰나를 포착하기를 좋아하나 완벽한 형상으로 그리고자 하지 않는다. 사물을 완벽한 형태로 묘사하는 게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강렬한 붓질은 격렬한 남녀의 성행위 연상

'At the Round Earth's Imagined Corners' Oil on linen 63.5×55.9cm 2008-2009.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At the Round Earth's Imagined Corners' Oil on linen 63.5×55.9cm 2008-2009.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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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강렬한 붓질은 격렬한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킨다. 하긴 이 세상에서 남녀가 사랑하는 처절한 몸짓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다만 그런 걸 예술로 승화시키기가 어렵다. 그런데 세실리 브라운은 이런 걸 형상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베이컨처럼 쑥쑥 문지르는 붓 터치도 작품에 생명과 활기를 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율동감이나 리듬감은 관객에게 이상야릇한 설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가 가로세로 50cm정도의 소품도 억이 넘을 만큼 널리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나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그의 작품이 성애를 소재로 했기 때문인가.

작가는 그 시대의 금기를 깨는 사람

'Justify my Love' Oil on linen 198.1×228.6cm 2003 ⓒ Cecily Brown
 'Justify my Love' Oil on linen 198.1×228.6cm 2003 ⓒ Cecily Brown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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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그 시대의 금기를 깨는 사람이다. 이 작가 역시 여성으로서 색정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는 금기를 깨고 있다. 그의 옛 도록을 보면 사디즘의 원조인 사드(Sade)보다 더 기발 나다. 그만의 독창적 에로스의 상상력으로 화폭을 채운다. 이런 작품은 보기에 불편해도 전통적 선입견을 넘어 새로운 예술에 도전해야하는 작가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성애를 표현하는 데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유리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여성은 애를 낳는 산고의 고통만큼이나 성적 감각에서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과 비교가 안 되는 다차원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정신보다 몸, 전쟁보다 평화가 시대정신

'Untitled' Monotype with watercolor and colored pencils on Lanaquerelle paper 55.9×76.2cm 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Untitled' Monotype with watercolor and colored pencils on Lanaquerelle paper 55.9×76.2cm 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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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전쟁의 파편과 정신의 혼미 속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여자의 누드가 보인다.

이는 20세기의 시대정신 즉 정신보단 몸, 전쟁보단 평화, 남성보단 여성이 더 가치 있음을 암시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성중심의 19세기 서양과학과 합리주의가 결국은 20세기에 끔찍한 전쟁과 대학살로 끝났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이에 충격을 받고 기존가치를 일체를 거부하는 다다이즘 운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연실색한다. 그들은 결국 히틀러식의 정신주의를 거부하고 육신에 주목한다. "나는 나의 몸이다(메를로-퐁티)"라는 선언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행위예술도 그런 유산 중 하나이리라. 몸의 가치가 그렇게 자리매김 되면서 68혁명 이후 여성주의가 마침내 대두한다.

인류의 번영은 '음양'의 조화로움에서

'New Louboutin Pumps' Oil on linen 523.2×520.7cm 2005. Courtesy private collection, Courtesy Gagosian Gallery. Photo by Rob McKeever
 'New Louboutin Pumps' Oil on linen 523.2×520.7cm 2005. Courtesy private collection, Courtesy Gagosian Gallery. Photo by Rob McKeever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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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게 한 힘은 과연 뭔가? 그건 에로스의 힘이다. 우주만물과 인생의 원리이자 생명의 원류가 바로 여기서 나오고 동서양 모든 신화와 로망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태초에 인류가 누렸던 열락과 환희의 축제를 되찾는 길 말이다.

동양미의 핵심은 '음양의 조화'이다. 한중일은 이 주제를 산수화로 통해 그려왔다. 그런데 산수화는 조금만 달리 보면 남녀의 통정을 자연에 빗댄 그림일 뿐이다. 기암괴석이나 울퉁불퉁한 바위는 남근을 폭포나 계곡물은 여곡을 상징한다. 그렇게 보면 음양의 조화도 결국은 남녀의 조화로운 교합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동서양의 관점에는 차이가 없다.

성적 상징도 예술의 그릇에 담아야 아름답다

'Thanks, Roody Hooster' oil on linen 2004. Photograph: PR
 'Thanks, Roody Hooster' oil on linen 2004. Photograph: PR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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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Oil on linen 31.8×43.2cm 2008-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Untitled' Oil on linen 31.8×43.2cm 2008-2010. Courtesy of Cecily Brown and Kukje Gallery
ⓒ Cecil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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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작품도 역시 화폭에 애욕의 난장이 흐리게 보이고 성애의 기운이 넘친다. 예술이란 어찌 보면 에로스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런 면이 충실히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적 상징도 예술의 그릇에 담길 때 진정 아름다울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브라운은 이번 맥락에서 생명의 진동과 호흡으로서의 에로스를 그리고 있다. 돈과 권력과 경쟁사회에서 빼앗긴 성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되찾으려는 의도인지 모른다. 그는 "난 성적행위 자체를 묘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보다는 관객이 어떤 성적 긴장감을 감지하게 되기를 원한다"라는 했는데 이 말 속에 작가의 결론이 요약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신관 1층 종로구 소격동 59-1번지 www.kukjegallery.com 02-733-8449 입장무료
개관시간 월요일-토요일: 10am-6pm 일요일: 10am-5pm



태그:#CECILY BROWN, #세실리 브라운, #추상표현주의, #에로스의 미학,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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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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